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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페스티벌 공연이 진행되었던 서울혁신파크의 '피아노숲' 풍경
 비건 페스티벌 공연이 진행되었던 서울혁신파크의 '피아노숲' 풍경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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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비건 페스티벌(Vegan festival)'에 다녀왔다. 비건 페스티벌은 올해 벌써 10회차를 맞았다. 이름 그대로 비건들의 축제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만 알고 갔기에 축제가 열리는 정확한 장소는 알지 못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래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지도가 돼줬다. 소리를 따라가자 축제 장소가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그늘이 조성된 '피아노숲'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원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공연 소리 중간중간 사람들의 수다소리와 시끌벅쩍한 웃음 소리도 배경음악으로 들려왔다.

날씨가 화창하고 녹색으로 물든 나무와 잔디밭 때문인지 축제 분위기는 완벽했다. 우리 부부도 공연장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수다를 떨고 책을 보기도 했다. 우연히 비건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해 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
 서울혁신파크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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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도시 관련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걸 느끼고 돌아왔다. 서울혁신파크는 이미 주민들이 애정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나온 방문객도 많이 보였다. 어떤 어린이는 카메라를 켜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냈고, 또다른 어린이는 집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로봇 장난감과 흙을 번갈아 만지며 한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공연장에서는 어른과 어린이가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췄다.

적당한 밀도였다. 축제를 방문한 이들은 공원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연을 즐기거나 부스를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부부처럼 누워서 책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이는 공원이 자본 없이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이었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세월의 켜가 묻은 서울혁신파크

서울혁신파크는 은평구 불광역 바로 옆에 입지한 강북권 금싸라기 땅이다. 서울혁신파크는 서울시의 시유지 중 가장 큰 규모로 약 11만 제곱미터에 해당한다. 2009년 전에는 국립보건원, 식품의약안전청, 질병관리본부 등으로 사용되던 국유지를 서울시가 2009년 매입했다.

이후 2010년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는 이곳을 혁신을 실험하는 '서울혁신파크'로 구상하여 2015년 개소했다. 사용하던 기존 건물을 허물지 않고 재생했다. 덕분에 세월의 켜가 건물 내외부에 묻어 있다.
 
서울혁신파크 가이드맵
 서울혁신파크 가이드맵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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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참여동은 겉에서 보면 평범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중정이 있는 특이한 공간이 짠하고 나온다. 이곳에서는 비건 페스티벌 북토크가 열리기도 했다.

건축물에만 세월에 켜가 묻어 있는게 아니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도 묻어 있다.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 두 명은 거의 매일 혁신파크 산책을 한다고 했다.

비건 페스티벌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시민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산책하는 주민으로 보이는 어르신은 우리에게 "오늘 뭐하는 날이냐"라며 말을 걸기도 하셨다. 비건 페스티벌도 서울혁신파크에서만 10회 차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울혁신파크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겠는가. 비건 페스티벌뿐만이 아닐 테다.

서울혁신파크는 함께 관리되고 운영되는 '커먼즈'

서울혁신파크는 일종의 '커먼즈'다. 커먼즈(commons)는 생물학자 개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저널을 게재하면서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커먼즈는 경제학, 도시 운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면서 공유지, 공유 자원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데이비드 볼리어는 커먼즈를 자원, 공동체, 규약이 결합된 것으로 정의했다. 커먼즈의 핵심은 '함께 관리하고 운영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커먼즈는 자원, 공동체, 규약이 상호관계성을 보이는 것으로 공유지, 공유재, 공유자원, 공동자원 등으로 번역된다.
 커먼즈는 자원, 공동체, 규약이 상호관계성을 보이는 것으로 공유지, 공유재, 공유자원, 공동자원 등으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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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혁신을 실험했다.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손발을 움직여 도시 혁신 실험을 실행했다.

먹거리, 적정기술, 메이커 운동 등 시민 중심 활동의 거점시설이었다. 서울시에서 공공건축물을 관리하는 혁신적인 도시 만들기 방법으로서 커먼즈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사업을 시작했다. 브랜드명은 '커먼즈필드'. 이는 우연이 아니다. 서울혁신파크처럼 지역별 유휴공간을 시민, 민관산학 등이 연계해 지역사회 혁신을 위해 공간을 활용하고자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 강원 춘천,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대전, 제주가 개소했고 충남, 울산, 청도, 밀양이 개소를 앞두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앙부처에서 서울시의 혁신을 선진사례로 인정하고 벤치마킹한 것이다. 서울혁신파크는 그 이름처럼 공공건축물을 혁신적으로 관리되어왔다. 커먼즈필드도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 소유 구분으로 보면 국공유지이지만, 관리 주체로 보면 행정부처가 아닌 시민인 것이다.

서울혁신파크라는 금광을 캐겠다는 서울시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시는 서울혁신파크 부지를 개발하여 삼성동 코엑스(46만㎡)와 맞먹는 50만㎡ 규모의 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 거대한 규모의 부지에 직주락(職住樂, 일자리, 주거, 상업)의 기능을 하는 시설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대규모 녹지광장과 60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를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담겨 있다. 
 
서울혁신파크 부지 활용계획 중 공간배치구성(안)
 서울혁신파크 부지 활용계획 중 공간배치구성(안)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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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놓은 개발의 근거는 서울혁신파크가 "당초 목적과 달리 일부 단체에 의해 저밀도로 이용되면서 부지의 잠재력에 걸맞은 거점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2 서울혁신파크 임팩트 보고서'를 보면 다방면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매일 평균 1000여 명이 공원을 이용했고, 입주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약 1200억 원이다. 팹랩(제작 실험실, Fabrication Laboratory)'의 약자로 디지털 기기, 소프트웨어, 3D 프린터 등을 갖춘 창작 지원 공간) 사업을 통해 연 550kg의 탄소배출량을 감축시켰다. 

서울시는 2030년 준공을 목표로 2025년 하반기에 착공을 계획하고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서울혁신파크 개발을 위해 오는 2024년 1월이면 모든 입주기업과 직원들은 퇴거된다. 주택 재개발 그리고 상가 세입자 퇴거 조치 현장과 매우 닮아있지 않은가. 

민선 8기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임기에 이런 서울이 계획이 발표된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사실 민선 4기 시절에도 현재 서울혁신파크 부지 개발안을 발표한 바 있었기 때문인지 서울시가 내세운 개발의 근거가 납득되지 않는다.

이뿐인가. 용산정비창, 한강 서울링, 상암 DMC, 노들섬까지 랜드마크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개발 타당성을 떠나 몇 개 남지 않은 금싸라기땅에 기념비를 세우겠다는 계획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서울시가 개발과 랜드마크에 중독된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러다 도시 전체가 체할지도 모르겠다.

개발방식은 민관협력이다. 공공자산과 도시계획이 창출하는 수익을 개발기업에게 주겠다는 셈법이 아닌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이곳저곳 고층빌딩을 건설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여만 할까. 필자 눈에는 금싸라기 땅들은 전부 뒤집어엎어 금을 캐내겠다는 야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층 개발화에 반대한다

서울혁신파크의 고층 개발화에 반대한다. 건축기본법 상 '공공공간(公共空間)'이란 가로·공원·광장 등의 공간과 그 안에 부속되어 공중(公衆)이 이용하는 시설물을 말한다. 공공공간은 영어로 퍼블릭 스페이스(public space)다. 쉽게 말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혁신파크에 걸려 있는 현수막
 서울혁신파크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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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현재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각 청마다 관리 주체와 운영 프로그램이 있고 신청 절차가 필요하지만 문턱이 높지 않다. 반면 서울혁신파크가 고층빌딩화되어 복합쇼핑몰과 업무단지가 들어선다면 그곳에는 흔히 말하는 '돈 좀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서울에 웬만한 고층빌딩을 떠올려 보라. 일반 시민이 마음 편히 들려 즐길 수 있는 고층빌딩이 있는가. 누구나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공간 내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63빌딩, 잠실롯데타워, 남산타워도 대표적인 예다. 도시 공간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자본이 있는 일부만이 누리게 된다.

은평구 주민도 아닌 필자가 커먼즈 관점으로 참견 한 숟가락 얹어본다. 개발이 마치 도시 최고의 가치인 듯 여기저기 개발하려고 안달 난 서울시 모습을 보면 개탄스럽다. 국공유지라고 해 국가 혹은 지자체 그리고 전문가 집단의 입맛대로 도시를 주물러서는 안 된다.

도시계획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지금은 시민 참여 주도의 도시계획 시대 아닌가. 구시대적인 도시계획 발상을 잠시 접어두고 현장으로 나와 시민 그리고 입주 기업과 함께 도시계획을 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태그:#서울혁신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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