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30 08:46최종 업데이트 23.05.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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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의 뜯겨진 반지하 창틀에 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숨진 3명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 권우성


"도시연구자 경신원의 '집'이야기" 연재는 우리 사회에서 '집'은 어떤 의미이며, 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되고 발전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연재를 준비하던 2022년 여름,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엄청난 재해를 목격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사건은 밀려 들어오는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탈출하지 못한 취약계층의 죽음이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한강의 기적'과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를 딛고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에서도 가장 빠르고 강한 경제 반등을 이룬 모범국가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에서 취약계층의 '주거권' 문제는 여전히 간과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주거권이란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헌법 제35조 제1항에서 주거권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제3항의 규정에 근거하여 주거권에 대한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거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 말 국가부도의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1950년대부터 외환위기 전까지 평균 경제 성장률 7%를 이룩하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주거의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경제발전을 통해 국민 개개인은 자연스럽게 주택을 소유하게 되고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주된 관심은 자가 보유 확대에 있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 수혜 계층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강남에 대한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

6.25 전쟁 이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특히 서울로 밀려들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대비 주택재고량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전세라는 독특한 주택임대차 유형이 보편화된 이유도 턱없이 부족했던 주택재고량과 발달되지 못한 주택 금융시스템 때문이었다.

대출을 받으려 해도 은행 문턱이 한없이 높기만 했던 시절,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내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으로 이용했다.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셋방살이의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주택 마련에 더 집착했다.

주택가격은 1990년대 초반 주택 200만 호 건설, 1990년대 말 국가부도사태, 2000년대 말 세계경제위기,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올랐다.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의 여파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나 하락 폭은 과거의 상승 폭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시기만 지나면 주택가격은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최근 '강남불패'의 신화마저 흔들린다고 난리지만, 강남의 브랜드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바로 성공적인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말해주는 시대가 되어 버린 오늘날 강남에 대한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3%가 사는 강남이라는 지역이 갖고 있는 부동산 가치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소득 수준, 가구주의 학력, 주거환경 만족도, 건강 수준 등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지역 간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과 관련한 책을 쓰는 동안 <강남에 집 사고 싶어요>라는 다소 자극적(?)이지만, 솔직한 제목의 책을 읽었다. 80만 부동산 스터디 카페가 열광했다는 이 책의 표지에는 '강남 거주 30년, 워킹맘의 아파트, 교육, 투자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살기 좋은 동네란 자녀의 교육환경이 뛰어난 동시에 주택이 지닌 자산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곳이다. 자녀의 입시를 위해서라면 전세 23억 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인 강남구 대치동은 바로 이런 학벌주의와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나는 교차점인 것이다.

집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일대 아파트. ⓒ 연합뉴스


해방둥이와 베이부부머 세대에게 집은 자신과 가족의 주거 안정과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는 곳'과 '사는 것'으로서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내 집 마련'은 삶의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40~50대가 된 X세대와 30대 밀레니얼에게는 나의 '어떤' 집이 '어디'에 위치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가파른 경제성장의 시기를 보낸 해방둥이 세대의 전폭적인 관심과 보호 속에서 성장한 X세대와 어떤 세대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질 높은 교육을 받은 밀레니얼은 우리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냈지만,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고용환경 속에서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꿈을 잃어버린 첫 세대가 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가능했던 시기를 보낸 그들의 부모 세대와 달리, X세대와 밀레니얼은 경제가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경제성장'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은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도저히 모을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인 아파트 가격을 보며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꼭 사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동을 통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회,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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