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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벨리댄스협회LBA 신미경 대표 .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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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우리네 인생을 가을에 비유한다면 몇 살부터가 가을일까. 최근에는 의술의 발달과 함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어쩌면 예순부터 그 후 20년을 가을이라고 비유해도 되지 않을까.

여기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인생의 봄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서산에서 라인벨리댄스LBA 협회를 운영하며 LBA알라공연단 단장을 맡고 있는 신미경 대표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녀는 10여 년 전부터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벨리댄스를 배웠고, 나아가 코로나 때 취미로 드럼까지 섭렵했다는 그녀는 "너무 바빠서 요즘은 나이들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미즈실버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댄싱퀸 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녀의 스케줄에는 올 한해도 틈 없는 시간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 에너지가 소진될 만도 한 대 대단하십니다. 먼저 올해 계획부터 들어봐도 될까요?
"올해부터는 공연단과 함께 한국적인 역사와 문화가 담긴 K벨리댄스를 가지고 해외공연 겸 연수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보다 먼저는 오는 6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벨리댄스를 무대에 올려요. 요즘 한창 공연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낸답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도 찾으면서 문화도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벨리댄스를 만들어 확신시키고 싶은 게 제 욕심이에요. 이제는 많이 대중화됐다고는 보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한참 멀었잖아요.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 벨리댄스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어요. 이것만 성공하면 국제 벨리댄스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구요.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림없잖아요. 현재 대학원 석사과정 교수님들과 함께 머리를 모으고 있답니다. 나아가 벨리댄스 뮤지컬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문화예술인과 악기로 협업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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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경 대표의 벨리댄스 공연 .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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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벨리댄스협회LBA 대표면서 현재 문화예술경영 MICE석사 과정에 있는데 늦은 공부를 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세요?
"왜요. 나이도 있고, 아직 초등학생 늦둥이 아이가 있어 어렵죠.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투자하지 않고선 그 어떤 성공도 이룰 수 없잖아요. 저도 그런 차원이에요.

현재 저는 벨리댄스의 외연확장을 위해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 MICE' 등 공연기획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벨리댄스) 우리 공연은 8분에서 10분 정도로 세 곡 정도하고 무대에서 내려오잖아요. 늘 고민이었죠 그것이. 그러면서 기획에 대한 학업의 필요성을 감지했다고나 할까요.

지난 3월에는 라인벨리댄스 LBA알라공연단 간판도 내걸었답니다. 우리 지역의 특성을 살려 보다 폭넓고 다양한 문화예술로 '같이 & 가치'라는 이름 아래 최선을 다하려고요. 벨리댄스 하면 서산이 떠올려질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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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실버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댄싱퀸 상’을 수상한 신미경 대표 .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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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대단하십니다. 혹시 고향이 서산인지요.
"아녜요. 제 고향은 전북 군산이에요. 우리 집은 일하시는 분들을 두고 농사를 지을 만큼 대농이었죠. 저는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5~6학년 때는 영어와 수학을 과외받았어요. 저희 부모님의 공부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죠. 그리고 늘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시골에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어요. 몸이 약해서 매일 멀미를 했죠. 학교만 가면 엎드려 있는 게 일과였답니다. 그냥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도 부모님은 딸이라고 자취를 안 시켜주는 거예요.

어느날 선생님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더니 그길로 우리 아버지께 '매일 (학교)와서 엎드려 있느니 차라리 학교 가까운 곳에 훌륭한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 어떠냐'며 '그런 자리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설득해 주셨죠. 그러면서 저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약국집에서 초등학생 둘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 건설회사에 근무했고요."   -  서울에서 승승장구하던 분이 서산으로 내려와 밸리댄스를 하면서  3개월 만에 대회에서 입상을 하셨다 들었습니다.
"남편 사업때문에 서산으로 오게 됐고 그 무렵 근육을 잡고 움직이는 거라서 라인도 예뻐진다는 말에 혹해서 벨리댄스를 배우게 됐어요. 벨리댄스 시작한 지 3개월 됐을 무렵 발목 부상임에도 대회에 참가하여 입상을 했습니다. 꼰지발을 많이 사용해야 해서 통증이 와도 꾹꾹 눌러 참아 장려상을 받았지 뭐예요. 이보다 더 획기적일 수는 없잖아요. 대회 끝나고 한방치료를 하면서도 연속으로 출전했어요. 2년을 묶어야 했던 시절, 고질병이 될까 봐 정말 겁이 났었는데 다행히도 잘 관리해서 이제는 건강하답니다. 그래도 방심은 절대 금물이에요(웃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느날 아들이 "엄마는 대상도 받고 맨날 1등 하고 그러는데 선생님은 왜 안 해? 나는 엄마가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힘 받아 바로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고, 코로나 때 사무실 접으려하자 남편이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하라며 격려해주었죠. 가족의 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 덕에 많은 대회에 출전하게 됐고 최고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프로공연단에 들어가서 공연도 하고, 또 봉사활동도 하면서 지냈죠.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벨리댄스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시겠어요? 여성들의 영원한 워너비 벨리댄스는 곡선미는 물론 유연성을 키워주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답니다."

벨리댄스 예찬론자 신미경 대표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항상 자신을 가꿔나가면서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사시기 바란다"며 "구구팔팔이란 말도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뜻인데 함께 벨리댄스를 하면서 행복한 청춘을 사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여리지만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강인한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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