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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참석자들이 삽으로 땅을 파는 개토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5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참석자들이 삽으로 땅을 파는 개토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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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과 예비검속자들이 1950년 7월 이곳 가창골에 끌려왔습니다. 적법한 절차도 없이 군경은 이들을 발포해 묻어버렸습니다. 70여 년이 지나서도 가창골은 억울하게 희생된 한 맺힌 님들의 아우성을 생생한 기억으로 들려줍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한 개토제가 24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거행됐다.

이곳은 1950년 7월 초순과 중순경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이 경산 코발트, 가창골, 칠곡 신동재, 본리동, 빨래터 등지에서 집단 학살되고. 이들 중 일부를 암매장한 곳으로 추정된다.

개토제에는 최영희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을 비롯해 임나혁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문위원, 유해발굴 조사단장인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대구시 관계자 및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묵념과 제례, 추도사, 유족대표 인사, 유해발굴 조사과정 설명, 개토행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하석 유족회 이사(시인)은 추도사에서 "유족들이 애타게 찾는 건 님들의 뼈와 자취뿐만 아니라 그 진상을 밝히고 제대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부디 밝은 세상으로 나오셔서 산 자들과 함께 원한을 푸소서"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임나혁 진화위 전문위원은 "이곳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서 최소 두 차례 이상의 집단학살이 자행됐다"며 "적법한 절차 없이 재소자들이 희생된 곳으로 추정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이자 화해와 미래를 위한 토대가 돼야 할 장소"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경북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최영희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이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4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경북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최영희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이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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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이사장은 "뼈 한 조각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최 이사장은 "내 평생 이런 날이 올까 싶었다"며 "이번에는 정말로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아버지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50년 함께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들이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시신을) 지금까지 한 번도 수습할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며 "부디 우리들의 불효를 용서하시고 제발 세상 밖으로 나오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해발굴은 오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다음 달 20일 이전에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화위와 10월항쟁유족회 등에 따르면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가창면 용계리 산89-6번지 일원으로 약 150제곱미터 정도이다.

이곳은 1950년대 가창댐 공사 당시 발견된 유해를 1차 이장했고 이후 가창댐을 확장하면서 1980년 추가로 발굴된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단은 유해가 나오면 전문가에 의해 감식 절차를 거쳐 성별과 나이, 신장 등을 파악하고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발굴된 유해는 세종시에 있는 추모의 집에 우선 안치하게 된다.
 
25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추모하고 있다.
 25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0월항쟁위령탑 앞에서 열린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추모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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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진화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댐을 건설할 당시 인부들이 가마니에 유해를 담아서 공사 현장 인근에 매장했는데 이곳이 현재 가창댐 바로 아래 빈 밭(유해매장 추정지)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최소 30여 명 이상의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단은 유해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산비탈면이고 밭으로 경작되던 곳이어서 발굴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당시 희생자들이 입었던 옷이나 단추 등이 발굴될 경우 암매장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종윤 조사단장은 "불가피하게 타인에 의해서 자기 삶을 마감하고 땅속에 묻힐 때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오랜 세월 묻혀 있다"며 "이제는 우리가 이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시게 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라고 말했다.

태그:#10월항쟁유족회,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진실화해위원회, #개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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