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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시어머니가 계속되는 무릎 통증으로 입원을 하신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얼굴도 뵙고, 일도 도와드리러 시댁에 들렀더니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편물을 주섬주섬 가지고 오셨다.

"얘, 이것 좀 신청해 봐라."

5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인데
 
ARS로 전화를 걸어 처리하는 이 일이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다.
 ARS로 전화를 걸어 처리하는 이 일이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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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장려금 신청서였다.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도 있고, ARS로 전화를 걸어 신청할 수도 있었다. 안내되어 있는 ARS로 전화를 걸어 한 단계 한 단계 신청을 했다. 주민 등록번호와 은행 계좌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민감한 정보들이라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도 없고 해서 작년에는 깜빡 놓치셨다고 했다.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은 일이었는데, ARS로 전화를 걸어 처리하는 이 일이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번호를 누르라고 하는데 화면에 번호 누르는 게 안 보여. 내가 그걸 못 찾아가지고 못 누르겠더라고."
"어머니 그건 여기 키 패드를 누르시면 나와요."


설명을 해드렸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어휴, 난 못하겠다."

주민등록번호도 계좌번호도 가물가물해서 찾아서 천천히 누르다 에러가 나기를 반복하고 결국은 포기를 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분명히 스마트폰을 쓰신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오로지 전화의 용도로만 사용하신다. 문자도 잘 못 보신다. 그 흔한 앱 하나 깔린 것이 없다. 전화기에 카톡조차 없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간혹 사진이나 동영상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사용할 줄 모르신다고 하시고 가르쳐드린다고 해도 괜찮다고만 하셨다.
 
QR코드 찍는 사람
▲ QR코드 QR코드 찍는 사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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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댁에는 와이파이가 없다. 요즘 세상에 와이파이가 없는 집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다. 와이파이 없이는 1분도 못 견디는 아이는 시댁에 갈 때마다 아빠에게 핫스폿을 켜달라고 한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하나도 이용할 수 없다. 돈을 송금하려고 해도 은행에 갈 수밖에 없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사러 나가야 한다. 어머니의 세상은 그런 곳이다.

비슷한 연령의 우리 엄마만 해도 카톡도 보내시고, 사진이나 동영상도 수시로 보내시고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찾아보시기도 하던데, 시부모님들은 아무래도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그런지 영 관심도, 필요도 없으신가 보다.

요즘은 주민센터나 지역사회에서 스마트폰 사용법 강좌도 있다. 권해드려볼까 하다가도 날이 더워지니 농사일이 바쁘시고, 또 시골이라 그런 강좌를 들으러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될 것이 뻔한 노릇이라 생각에 늘 그치고 만다.

입원을 하려면 코로나 음성 증명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들렀다. QR코드를 찍어서 검사 신청서를 내고서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걸 혼자서 하실 수가 없었다.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의 안내에 따라 내가 카메라로 QR코드를 찍고 찬찬히 설문에 응답을 하고 신청을 완료했다. 찬찬히 하시면 될 텐데, 어머니에게는 스스로 해내려는 마음도, 배우려는 마음도 닫혀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결과를 통보받을 연락처에도 입원을 도와주러 오는 시누이의 번호를 넣어달라고 하셨다.

QR코드를 찍고 개인정보를 넣고 단순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니. 이런 일들은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게다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서 누리는 편리함이 이렇게도 많은데, 접근 자체가 힘든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어머니 코로나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땐 어딜 가든 QR을 다 찍었잖아요."
"그냥 집에 들어앉아 있었지."


40대인 나도 쉽지 않구나

그렇게 어머니 입원 준비를 도와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났다. 평소에 쓰는 포털 사이트의 PC 화면이 바뀌었다.

"아~이거 영 적응 안 되네."

평소에 익숙한 것들이라 생각해서 능수능란하게 쓰던 화면이었는데, 개편하고 나니 어색하고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한강 공원에 놀러 갔다가 AR 필터를 사용해서 인스타 릴스 올리는 이벤트에 참여하면 커피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릴스를 만들어 올렸는데, 아이가 옆에 없었다면 혼자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스타 쓴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런 사건들을 겪고 나니 어머님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이 점점 바뀌면 나도 어느 순간 세상의 변화에 잘 따라가지 못하게 되겠구나. 그래서 '나도 과거형으로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가 힘든 것은 어르신들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은 매일같이 예측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고, 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들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워지는 경험을 해 보니 앞으로의 변화가 두렵기까지 하다.

이건 비단 어머님만의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나이가 들테고, 예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쫓아가지 못할 것이 당연지사이니 말이다. '어머니가 뭐 가르쳐 달라고 하시면 잘 가르쳐드리고 해드려야지' 하고 절로 다짐하게 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70대의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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