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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축하연주 모습
 결혼식 축하연주 모습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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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은 회원들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 여러 방향에 따라 음향장비가 설치되고, 연주장면을 촬영할 촬영기사도 대기하고 있다. 모두 긴장하고 앉아 색소폰을 만지작거리는 연습실, 16명의 회원이 연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곡은 베사메무초(besame mucho)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ST(He's a Pirate), 두 곡이다.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에 보낼 영상자료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 1차 예선은 영상으로 심사를 한 후, 실제 연주로 결선을 겨루는 대회다. 몇 달 전부터 곡을 선정하고 전 회원이 틈틈이 연습을 했다. 색소폰이 좋아 모인 동호회원들의 연주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부터 꾸려온 색소폰 동호회 회원은 16명이다. 삶이 다른 회원들이 모여 연주를 하고, 연말 연주회를 위한 연습을 매주 일요일에 한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절절한 사연들을 안고 있는 회원들이다.

음악이 좋아 허기를 참고 연습실로 달려온다. 휴일도 반납하며 연습을 하고, 연말의 뿌듯한 연주회로 일 년을 보상받는다. 매년 하는 연례행사가 벌써 15년이 되었다. 색소폰 경연대회에 출연도 하고, 지인들의 결혼식 축하연주에 나서기도 한다.

언제나 열심히 연습하는 회원들이지만 1년의 연주회 연습을 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고 한다. 어떻게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까? 야외 수련회를 할까 아니면 경연대회 참석할까 고민하던 중, 경연대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삶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회원 16명이 알토 색소폰 1·2부 5명씩, 테너 색소폰 1·2부 3명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이 좋아 모든 것을 제쳐두고 모여든 회원들은 음악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4월 경연대회 참여가 확정되고 연주할 두 곡을 선정했다. 두 곡 중에서 잘 연주된 곡을 예선곡으로 하고, 나머지를 결선 곡으로 하기 위해서다. 순수한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제목이 주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지도자의 지도를 받고 부족한 부분은 각자 연습을 해야 했다. 시간이 나면 음악실을 찾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할 일이 없는 듯하지만 짬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도 할 일이 있지만, 또 내일은 무슨 일인지 할 일이 있다. 오래전부터 해 오던 취미 생활도 있고,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은퇴 후에 많은 것을 벌려놓았기 때문이다.

요일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체육관 가는 일을 빼놓을 수 없지만, 친구들과의 산행과 자전거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중독자처럼 빠져들고 만다.

일주일에 두 번 화실에 가야 하고, 수시로 색소폰 연주실로 가야 한다. 음악과 미술에 관련도 소질도 없는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더욱 바쁘게 된 것은 두 개의 대회가 겹쳐있기 때문이다.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와 도단위 미술대전이다.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하니 몸과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우선은 색소폰 경연대회가 임박했기에 색소폰 예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소리들, 역시 연습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두 곡을 녹취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음향장비와 조명이 설치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지휘자의 지도에 따라 주의점을 상기하며 연주준비를 마치고 있는 것이다. 곳곳의 마이크를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우선 베사메무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촬영기사의 발걸음이 바쁘다.

긴장감 속에 베사메무초의 연주가 끝났지만, 지휘자의 표정이 밝지 않다. 가끔 튀어나온 소리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긴장 속에 연주는 진행되었고 촬영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조금은 안도하는 지도자의 표정이지만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연주해 보기로 했다. 기어이 성공적인 연주와 촬영으로 첫곡이 마무리되었고, 두 번째 곡이 기다리고 있다.

가끔 결혼식 축가 중, 신랑 입장곡으로 연주했던 <캐리비안의 해적> OST다. 빠른 템포로 긴장감과 두근거림을 함께 주는 곡이다. 늘 신이 났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이 쉽지 않은 곡이다. 젊음이 지나간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음에 늘 불만이었다. 오늘도 긴장을 하며 손가락을 움직여보지만 쉽지 않아 불안하다.

수시로 연습을 해도 늙음에 골을 부리는 손가락이다. 서서히 준비를 마치고 빠른 템포로 연주했다. 언제나 걱정이었던 이 곡이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다시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이어진 연주도 경쾌한 리듬 속에 마무리되어 모든 과정이 촬영되었다. 무사히 연주와 촬영이 마무리되자 안도의 숨소리가 들린다.

긴장 속에 실시된 연주는 회원들의 열정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순수한 아마추어,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실력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두어 시간의 연주와 촬영이 끝이 났고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연습을 하니 이런 음을 낼 수가 있구나! 두 달여간 연습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연주곡을 편집하여 두 곡 중 한 곡을 경연대회 사이트에 올려야 한다.

여러 사람의 상의 끝에 첫 번째 곡을 예선곡으로 하기로 했다. 긴장 속에 마무리된 연주는 조금 더 연습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모든 회원들이 고마울 뿐이다. 말없이 연습에 전념하며 모든 일에 적극 협조해 주었기 때문이다.

긴장 속에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간단한 뒤풀이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회원들, 좋아하는 음악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감이 행복하기만 하다. 간단한 술자리에서도 마음은 늘 즐겁다. 모자라면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경연대회 결과를 기다리며 연말 연주회를 준비해야 한다.

긴장 속에 살아왔던 색소폰 경연대회 예선이 끝났으니 이젠, 다가오는 수채화 공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없는 듯하지만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있어 늘, 살아볼 만한 오늘이고 내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하나의 악기를 연주해 보고 싶은 심정,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소질도 관련도 없지만 무능한듯 도전한 색소폰연주가 주는 즐거움은 삶을 향기롭게 한다.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삶의 이야기다.


태그:#색소폰연주, #동호회,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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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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