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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화요일부터 금요일엔 오후 6시. 토요일엔 오후 5시. 일요일엔 오후 2시. 우리집 TV가 어김없이 켜지는 이 시간은 바로 야구가 시작하는 시간이다. 비록 집에 없어도 핸드폰 화면으로 어김없이 야구를 틀어 둔다.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이 내 열렬한 응원을 받아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이런 열심이 무색하게도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일평생 내가 응원하는 팀의 우승을 본 적이 없다(야구팬이라면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굳이 밝히자면 LG트윈스다).

야구의 매력은 '사람'
 
나에게 야구를 소개해 준 아빠는, 야구의 매력이 공이 아닌 '사람'에 있다고 하셨다.
 나에게 야구를 소개해 준 아빠는, 야구의 매력이 공이 아닌 '사람'에 있다고 하셨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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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보는 취미를 갖게 된 건 10살 때 쯤. 아빠를 따라 처음 갔던 잠실야구장에서 쿵쿵 울리는 북소리와 사방에서 울리는 응원가에 혼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자리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응원을 시작하는 어른들 틈에서 어리둥절 했었던 기억도.

응원가와 응원 동작을 전부 외우는 사람들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자니 금세 그 흥겨운 분위기에 빠져버린 초등학생 꼬맹이는 그렇게 야구에 입덕(어떤 분야에 푹 빠져 마니아가 됨)한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올해는 다르다!'는 희망과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조가 얽히고 설킨 애증이 대물림 된 것이.

응원 말고도 스포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징크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들이 가진 징크스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야구팬이라면 알 것이다. 선수들 만큼이나 팬들도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야구를 볼 때 절대 홀수번으로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무조건 두 번, 아니면 네 번 연속으로 깜빡인다. 홀수번씩 깜빡이면 흐름을 빼앗기면서 꼭 상대팀에게 점수를 뺏긴다(진짜다). 우리 아빠는 결정적 승부처가 되면 방으로 들어간다. 당신이 보면 팀이 지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것도 진짜다.

우리는 야구가 뭐라고 이렇게 힘들게 응원하고 마음을 졸일까.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승을 간절히 기다리고 선수들의 상태와 전력을 열심히 확인하는 이유는, 아마 야구가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야구를 소개해 준 아빠는, 야구의 매력이 공이 아닌 '사람'에 있다고 하셨다. 공을 사용하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사람'이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를 얻는 스포츠라고. 그렇다. 농구, 테니스, 볼링, 그 외 어떤 구기종목에서도 '사람'이 점수가 되는 경우는 없다.

야구만이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의 수로 점수가 결정된다. 아무리 공이 빠르고, 멀리 날아가도 승패를 결정짓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팀은 홈으로 주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수비팀은 주자를 막기 위해 결국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야구의 특별함은 내 삶에서 힘든 시기마다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마음의 심지가 단단해지도록 도와주었다. 재수를 시작했을 때, 말만 들어도 오싹한 그 시기 가장 힘들었던 건 시험에 대한 압박도, 주변의 기대도 아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

재수 학원에 등록하고도 자꾸만 감기는 눈과 헛헛한 마음을 핑계로 오후 5시 즈음이면 귀가하곤 했던 그때 나는 집과 학원 그 어느 쪽에서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다. 후회와 미련이 남는 어제와 모든 일을 미뤄둔 내일 사이에서 붕 뜬 오늘을 사는 내가 한심했다.

그 주말에도 어김없이 야구경기가 시작됐다. 분명히 전날과 다를 것 없는 경기장, 선수들이었는데 유독 그날따라 홈에 들어오기 위해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조금이라도 베이스에 먼저 닿기 위해 쭉 뻗어낸 손, 수비팀의 글러브에 닿지 않기 위해 몸을 옆으로 비트는 모습, 상 하의 할 것 없이 덕지덕지 묻은 필드의 모래.

문득, '그래, 적어도 홈에 들어오려면 저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가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야구에서는 1루, 2루, 3루를 거쳐 홈으로 돌아오면 득점할 수 있다. 이때 안타가 나왔을 때는 안전하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지만, 어떻게든 홈으로 더 빨리 돌아오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있다. 안타를 치지 않았는데도 다음 목적지로 뛸 수 있는 것, 도루다. 도루는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카드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일종의 생사를 건 도박이랄까.

도루에 실패한 주자는 머쓱하게 홈으로 돌아온다. 모든 루(base)를 거치지 않았기에 당연히 점수는 없다. 후회로 가득한 '미완의 귀환'. 그것이 7월달의 내 모습이었다. 급한 마음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속도만 높였다가 갈 길을 잃은 주자. 결국 힘이 빠져 최후의 순간에는 모든 기량을 쏟아내지 못하는 미숙한 주자.

그날 경기는 나에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홈'이라는 방향임을, 앞에 놓인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내는 것이 진정한 귀환임을 알려 주었다. 그 뒤로 어정쩡하게 5시, 6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적어졌다. 치열하고 꼼꼼하게, 그리하여 충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그해, 나와 내 팀은 근사한 성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경험 때문일까, 내 인생은 응원하는 야구팀의 굴곡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우리 팀이 우승 전력으로 꼽혔던 작년, 결승엔 가보지도 못하고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던 것처럼 합격한 것만 같았던 나도 면접엔 가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때 위로가 되어 준 어느 야구 에세이의 문장.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서효인, 다산책방

투수가 던진 공을 치긴 쳤으나 안타로 이어지지 못한 타구를 파울이라고 한다. 파울로 아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타를 치든 아웃이 되든 승부가 날 때까지 타석에 서서 공을 받아내야만 한다. 분명 노력은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고, 숨 고를 시간 없이 바로 다음 공을 연달아 받아야 하는 형벌과 같은 상황. 작년 2차 시험 결과를 받아든 나의 상황이었다. 

그때 "할 수 있어", "다음엔 더 잘 할 거야"라는 무한긍정보다 "'아직' 죽지 않았어"라는 현실적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힘들 때마다 야구가 내어주는 삶의 교훈을 생각하면 신이 나를 위해 야구란 것을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사정이 이러니 나에게 야구는 그냥 공놀이일 수가 없다. 

마지막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하루 끝에 보는 역전승, 연장전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힘을 얻는다. '우리 여기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으니, 그대 거기서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라'고 격려하는 것만 같아서. 패배한 날에도 '이런 날이 있지' 하며 내일은 다르게 살아내자는 결의를 함께 다지는 것 같아서.

2023년 시즌이 시작된 지 두 달,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우리 팀의 우승을 볼 수 있을지 나도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린 꽤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목표를 향한 과정이 나쁘지 않다. 어라? 어쩌면 지금이 이 말을 꺼낼 타이밍.

"올해는 다르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나의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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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랑이 이긴다고 믿는 낭만파 현실주의자입니다. 반건조 복숭아처럼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구석이 있는 반전있는 삶을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모순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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