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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 앞에 가까이 가서 필기하는 장○○ 학생
 칠판 앞에 가까이 가서 필기하는 장○○ 학생
ⓒ 이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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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학생이 눈이 안 보인다고 마지막 숙제를 주고 간 지 4주째 되는 날이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 학생이 벌떡 일어섰다. 나는 깜짝 놀라 토끼눈을 한 채 이삼초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빨간색 조끼에 꽃무늬 바지가 어르신들이 색칠한 그림과 닮았다.

"선생님, 나 다시 학교 댕길라구 왔슈. 엄마가 학교 다니더니 아들이 저(자기)보다 낫대유. 삼일절날 태극기도 달구, 그것도 바르게 달았다고 칭찬했슈. 공부하더니 우리 엄마 똑똑해졌는데 왜 학교 안 다니냐고 아들이 학교 댕기래유. 눈 안 보여 쓰는 것 뭇해도 다니래유. 딸도 학교 가서 듣기만 하더라도 댕기래유."

다시 공부를 시작한 장○○ 학생이 반갑다

이제는 글 읽을 수 있어 그동안 일일이 챙겨야 했던 우편물과 세금 고지서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 없어 자식들이 보기에도 좋았다고. 엄마 심심하지 않게 학교 다니라고 애들이 날마다 성화를 해댄단다. 잠 못 드는 밤 숙제하느라 잠도 잘 주무시죠, 외로움도 줄일 수 있지요, 무엇보다 공부하러 다니면 치매 예방이 되는데 엄마 치매 걸리면 요양원 밖에 갈 데가 없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 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공부를 위해서만 마을 학교에 다니길 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커다란 집에 연로한 어머니가 혼자 외롭고 쓸쓸할까 봐 권했을 터이다.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동네 사람과 어울리며 공부하고, 그림도 그리니까 자식들은 안심되고 좋을 것이다. 모시고 살지 못하고 외딴 집에 혼자 사는 어머니가 늘 걱정일 테니까.

언젠가 태극기 수업을 했다. 태극기 도안을 만들어 색을 칠해 태극기를 완성하고 바르게 다는 방법도 가르쳐드렸다. "건, 곤, 감, 리"의 설명도 해드렸다. 기억이 안 나면 괘의 숫자 '3, 4, 5, 6'의 순서를 기억해 '3'을 위로 가게 태극기를 달면 바르게 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걸 기억해서 태극기를 바르게 달았다니 기뻤다. 배운 것을 실천한 것도 장하고 흐뭇했다.

자식들 권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장○○ 학생이 간절하게 마을 학교에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얼른 생각을 떨치고, 마치 친정어머니가 오신 듯 펄쩍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했다.

"오! 잘 생각하셨어요. 안 계신 동안 교실이 텅 빈 것 같았어요. 환영합니다. 눈이 잘 안 보이시니 듣기만 하셔요. 그렇게 하셔도 배워 가실 게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친구들 만나니 외롭지 않아 좋잖아요. 참 잘 오셨어요."
 
이렇게 장○○ 학생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맨 앞자리에 앉게 했다. 칠판에 판서하면 쓰지 말라고 말해도 부득부득 노트에 적는다. 앞자리에서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자, 노트를 들고 칠판 앞에 와 선 채로 한 손에 노트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또박또박 글씨를 쓴다. 얼마나 불편하랴.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배우려는 그 정신, 감탄스럽다. 쳐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짠하다.

순간 중학교에서 웰라이프 수업할 때 생각이 났다. 그 학생들이 이 모습을 보았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들은 수업할 때 한 반에 열 명 안팎이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잔다. 그들이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가끔 중학교에서 청소년 웰라이프 수업이나 시 낭송 수업을 한다. 어느 반엘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열 명 정도는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잔다. 앉아서 조는 학생도 있다. 나는 궁금해서 몇 시에 자느냐고 중학생에게 물었다. 학교 끝나면 학원에 가서 오후 10시~11시에 끝난다고 했다. 집에 오면 간식 먹고 게임하고 새벽 늦게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니 수업 시간에 졸린 것은 당연하다. 중학생들에게 장○○ 학생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맞춤법 좀 틀리면 어떤가요

장○○ 학생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나는 시내에 있는 단골 안경원에 갔다. 대형 돋보기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했다. 나는 혹시? 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검색 결과 스탠드형도 있고, 크기도 다양한 돋보기들이 있었다. 장○○ 학생에게 데스크 탑형 스탠드가 딱 편리할 것 같은데 가격이 꽤 나갔다. 10만 원대다. 한 분만 사드릴 수는 없다. 나는 도리질을 했다.

장○○ 학생처럼 눈이 심하게 나쁘지 않지만, 학습자 모두 시력이 좋지 않다. 한 분만 사드리면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르신 학생들은 아주 사소한 것도 마음에 담아 서운해 하신다. 아마도 평소 살면서 글 몰라 받은 상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 끝에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돋보기 종류가 다양하게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각자의 쓰임에 맞는 돋보기를 자녀분에게 말해서 구입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음 수업에 가니 장○○ 학생이 교과서 크기랑 비슷한 돋보기를 가져와 책을 읽었다. 엄마 말을 듣자마자 따님이 돋보기를 구입해 줬단다. '오! 역시, 엄마를 세심하게 챙기는 건 딸이구나.' 딸 없는 나는 괜스레 서운함이 번개처럼 번쩍하고 사라졌다.

"와! 역시 따님이 최고네요!"

숙제할 때도 돋보기를 사용하니 좋다고 했다. 그래도 숙제는 하루 중 눈이 가장 잘 보이는 새벽에 한다고 했다. 이 학생은 그 뒤로 한 번도 결석을 안 한다. 눈을 쉬게 해주라고 숙제는 가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숙제를 해왔다.
 
칠판에 숙제를 자석으로 붙였다. 동그란 원형 의자에 여자아이가 앉아 있는 그림이다. 여자아이가 무릎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책을 읽으며 과일을 먹고 있는 모습이다. 글자가 없는 책 그림에 글씨도 써넣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그림을 거꾸로 놓고 글자를 써넣은 것이다.

대개는 내 쪽에서 쓴다. 그러면 아이는 책을 거꾸로 들고 읽는 모양새가 된다. 이 부분을 학생들에게 어필하며 칭찬드렸다. 게다가 그림과 대화하는 글짓기는 칭찬을 해도해도 모자라다. 장○○ 학생 글짓기는 단 세 문장이다.

"우리 공준임, 공부하고 있서? 나도 공부하고 십은되 눈이 잘 보이지 안 해서 울 때도 마아. 눈 점 잘 보여스면 좋겟서."

맞춤법을 다 맞게 쓸 때도 가끔 있다. 오늘 많이 틀린 것을 보니 눈이 더 안 보인 날이다. 맞춤법이 좀 틀렸으면 어떤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느라 외로움 느낄 시간이 줄어든 게 어딘가. 치매도 더디 올 터이고. 이로움이 많으니 좋은 일이지. 하지만 울 때도 많다는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짠해지는 마음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답글을 썼다.

"공주님 공부하는 것 보니 속상하시군요. 난 공부하고 싶은데 눈이 안 보이니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시겠어요. 그렇지만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하고 계시잖아요? 칭찬드려요."

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마을한글학교, #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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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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