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던 날은? 2020년 1월 20일! 이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이 나의 분만 예정일이자 아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예정일에 딱 맞추어 아이를 낳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어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택시를 잡아 정기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다. 택시 안에서 배가 주기적으로 아프기 시작했지만 통증은 참을 만했기에 설마 오늘이 '그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들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 간이침대에 눕자 배의 조임과 풀어짐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게 아닌가. 검진을 마친 선생님은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곧 분만실에 들어갈 것이니 준비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날리셨다. 네? (아이가 언제 나오겠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만삭의 몸이었지만) 이렇게나 갑자기요? 남편은 부랴부랴 짐을 챙기러 집으로 향했고 나는 그로부터 2시간이 흐른 뒤 아이를 낳고 말았다.
폭풍 같은 오전 시간을 보낸 후 묘한 승리감과 근거 있는 자신감에 도취된 상태로 TV가 틀어져 있는 병실에 앉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 감염환자가 나왔다는 속보가 뜨고 있었다. 3일간의 병원생활과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집안의 나날들을 보냈으니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그대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뉴스 속 풍경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집에서만 시간을 보낸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예상 외로 육아가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아기와 함께 있는 집에서의 시간은 행복했다. 그렇지만 육아라는 개인적인 사정과 코로나라는 시국이 만나 반강제적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게 되자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깐씩 집 밖으로 나가는 시간은 정말이지 꿀 같았다.
누가 공기에 뭔가를 풀어놓은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건 육아라는 처음 맛보는 기쁨에 잠시 가리워졌던 나의 본성이었다. 만삭인 엄마를 데리고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아빠의 피가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아기띠에 안고 다녀도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되자 아이와 함께 동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셀 수 없이 한 산책이지만 아이와 함께 하니 모든 게 새로웠다.
때마침 나들이 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었고, 동네에서의 몇 차례 워밍업으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보온병과 분유가 담긴 젖병, 기저귀와 물수건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매고 가슴에는 아기를 매달고, 이동의 반경을 조금씩 넓히기 시작했다.
버스도 몇 번 탔다. 24개월 미만의 아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선택사항이었다. 호흡기가 좋지 않아 마스크를 쓸 때마다 호흡곤란에 시달렸던 나는 본인의 호흡이 괜찮은지 아닌지 의사를 표시할 수조차 없는 작은 아기에게 마스크를 차마 씌울 수가 없었다. 대신 사람이 많은 버스는 패스하고 자리에 앉아서는 꼭 창문을 열었다. 어른들이 제대로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스크 쓰지 않은 아기와 버스 탑승기
그 기간 동안 내 기억에 각인된 두 명의 버스 기사가 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 가는 나에게 빨리 아기 마스크를 씌우라며 호통을 치던 아저씨. 기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러다 아기가 코로나 걸리면 어쩔 거냐고 모두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 소리를 높였다. 본능적으로 부당함을 느꼈지만 24개월 미만이라는 말 외에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혼자 식식거리며 삭여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만났던 또 다른 기사는 나와 아기를 포함해 승객이 셋뿐이던 버스 안에서 우리의 하차를 종용했다. 24개월 미만은 마스크 착용 안 해도 된다고 항변했지만 기사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전화하더니 재차 내리라고 했다. 아기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소리를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더 이상의 갑론을박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버스를 내리고 말았다. 처음도 아니고 비슷한 일을 또 당하고 나니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여전히 영유아들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검열 하듯 눈치를 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우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려 진땀을 빼고 있는 나에게 오히려 아기들은 안 씌워도 된다며 만류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조언을 구하고자 맘카페에서 관련 사례들을 검색하다가 나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즈음 맘카페에서는 아이에게 마스크 안 씌우는 보호자(엄마)에 대한 비난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행위 자체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글에는 어김없이 성난 댓글들이 달렸다.
비난의 표면적인 근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이의 건강에 대한 우려, 마스크 쓰지 않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줄 피해에 대한 불안. 여기에 '나는 하는데, 너는 왜?'에서 파생된 억울함이 더해졌다(이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비난의 가장 큰 촉발원인이라고 느껴졌다). 감정적인 비난에 반박 댓글 역시 감정적으로 달렸다. 다음부터는 그냥 마음 편하게 택시나 자차를 이용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다.
배려는 상상으로부터
먼저 두 가지 사실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첫째, 어린 아이에 대해서는 마스크 착용을 강제함으로써 예상되는 위험과, 마스크를 착용시키지 않음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위험 사이에서 선택의 여지를 열어둔 것이 정부의 기본지침이었고, 24개월 미만은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의학계의 소견이 그 근거였다.
둘째, 일본을 비롯한 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마스크 의무 착용에 있어 완화된 연령기준을 채택하고 있었고,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마스크 미착용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분위기였다.
즉 모두가 차등없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명제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영유아를 비롯한 일부 환자에 대해서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는 정책적인 문제임에 틀림이 없었다.
절대적인 해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애초에 영유아의 마스크 미착용을 둘러싼 논란은 필연적이었다. 전례없는 펜데믹 속에서 공동체가 어떤 선택을 받아들이기 위해 거쳤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선택들 간에 예의를 갖추어 상대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목격한 것은 관용이 사라진 사회였다. 여유와 상상력의 부재였다. 물론 그렇게 된 배경은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규모와 강도의 전염병에 우리 모두 얼마나 놀라고 긴장하고 지쳐있었던가. 그런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이 도리어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영유아(의 보호자)와 그 밖의 사람들은 배려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2022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마스크 착용이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장애인에 대해 일률적으로 병원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고, 타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중증장애인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 그것을 계속 착용하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의료진이 강화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다른 환자들과 분리된 병실에서 진료를 하는 등 출입 거부가 아닌 다른 방안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호흡이 어려워 마스크 안에서 입을 계속 벌리고 있을 수 있고, 호흡이 곤란해도 스스로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을 수 있으며, 치아가 돋아나기 시작해 턱이 마를 틈 없는 아이의 마스크 내부가 흠뻑 젖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아이를 양육하는 같은 처지의 보호자가 다른 보호자를 비난하는 그 처절한 난투극의 풍경은 내 안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인류가 자초한 생태계의 파괴와 그에 따른 각종 환경문제들이 부메랑처럼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기에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몇 번이나 더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분명히 모두가 할 말이 많을 이 문제에 대해 지금이라도 소리내어 말하고 싶었다. 비난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한번만 상상해보자고. 각자의 그럴만한 사정에 대해.
덧붙이는 글 | 향후 브런치에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