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2 04:29최종 업데이트 23.05.22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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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법 입양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아담 신씨. ⓒ 아담 신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미국 입국심사는 아주 간단히 이뤄진다. 사진 촬영과 지문인식 절차를 거치며 입국심사관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심사 후에는 '집에 잘 왔어요'라는 환영의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아담 신(Adam Shin, 48)씨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국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는 친어머니가 있는 그를 서류상 고아로 만들어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1979년 당시 그의 나이 세 살이었다.


양부모의 나라가 된 미국에서 그는 학대와 함께 두 번의 파양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권 신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영주권 재발급이 무산되면서 37년 만인 지난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되었고 자식들과도 이별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그에게 어머니의 나라는 정착하기 어려운 낯선 땅이었다. 2019년 그는 대한민국과 홀트를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제3국인 멕시코로 떠났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8부는 일부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4년 만에 홀트를 상대로 일부 승소했으나 국가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반쪽짜리'였다.

'불법 해외 입양 첫 판결' 또는 '첫 책임 인정'으로 보도된 뉴스에 등장한 이름은 원고 신송혁. 본래 이름은 신성혁이었고 미국 이름은 아담 크랩서였다. 지난한 입양의 아픔이 담긴 다섯 개의 이름을 거쳐 그는 이제 아담 신으로 멕시코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지난 18일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스스로 면죄부 주기 위해 책임 떠넘기는 것"
 

아담 신씨와 그의 아내 애나 미령 시몬스씨 ⓒ 아담 신


- 이름이 5개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이름이 '아담 신'이 된 이유는?
"한국 밖에서는 사람들이 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 아담 신으로 쓰고 있다. '아담'이란 이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나와 함께 해왔고 '신'은 법적인 내 성이다."

- 현재 근황을 독자들에게 알린다면.
- 아이들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아들은 지금 미 해군에 복무 중인데 다음 달이면 스물두 살이 된다. 딸은 올해 여덟 살이 되었고 미국 오리건주에 산다. 아이 엄마와 나는 각각 재혼한 상태다. 지금 내 아내 역시 입양아였으며 디자인 회사에서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멕시코의 산티아고 데 퀘레타로인데 여기도 한국인들이 조금 살고 있다.

대체로 여기서 난 잘 지낸다. 수제신발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팔고 있다. 아내와 나는 임시영주권을 가진 상태로 2년 반이 지나면 멕시코 영주권을 가질 수 있지만 캐나다에 망명을 신청하려 한다.

한국어보다는 스페인어가 훨씬 편하기에 이곳에서 무엇이든 헤쳐 나가기 더 수월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곳 사람들이 더 친근감 있고 선입견이 덜하며 인종 차별적인 면도 심하지 않다.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때 만났던 사람들은 상당히 자기 민족 중심적이었다."

-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홀트가 1억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기각되었는데.
"법정 소송을 몇 년이나 끌어오면서 판사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나 군사독재시절 한국 정부 하에서 해외입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해외입양에 참여했고 입양기관과 결탁했다는 것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기 위해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한국의 오래된 관습 같은 방식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입양기관들이 빈곤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까지 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잔학한 행위"
 

추방된 입양아들을 돕는 모임 ⓒ 아담 신

 
- 입양기관인 홀트는 법원 결정에 아직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 들었다. 홀트에 대한 생각은?
"홀트의 입장은 처음부터 거짓이었고 책임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으며 묵인했다. 이런 짓을 수없이 반복했다. 김현수라는 세 살짜리 입양아가 살해된 사건만 봐도 그렇다. 홀트는 이 아이를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줬고 그 결과 이 아이는 학대당하고 폭행당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홀트의 고위 관계자들(어린이 밀거래자들)은 처음 빼고는 여러 차례 청문회에 오지 않았다. 홀트는 한국인 입양아였다가 추방당한 후 자살한 필립 클레이에게 그랬듯, 나에 대해서도 똑같이 애증이 엇갈리는 입장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 홀트의 수장이었던 말리 홀트가 필립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그에 대해 아주 무례하게 말하는 자료가 나에게 있다.

홀트가 어떤 언급을 했는지 읽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2016년 내가 돌아갔을 때 그들이 나를 200달러로 매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완강히 거부했다. 한국 정부와 홀트는 60년 이상 응집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오래되었고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이들이 자신의 책임은 부인하고 입양된 내 누이의 뒤까지 쫓았던 것을 생각하면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 항소할 생각인가?
"아직 변호사들에게 판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원래 금액보다 크고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기간과 관련한 조건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소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 재판은 어떻게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인가?
"국제입양문제 전문가 이경은 박사를 만난 이후 소송이 시작되었고 내 삶과 추방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경은 박사를 통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회원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이고 조금 지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김수정 변호사가 참여했다. 모든 이들이 다 참여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진실의 편에 있으므로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믿는다."

- 재판을 거치면서 가장 힘들거나 힘이 되었던 순간은?
"나는 홀트를 지지하는 다른 입양아들에게 위협을 당했었다. 나를 계속 견디게 해 주고 있는 것은 10년의 입국 금지가 끝나고 나면 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12개월 이상 허가 없이 체류하다가 미국을 떠난 사람은 10년간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 기자 말).

- 한국 정부와 홀트가 입양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보나?
"결론적으로 그렇다. 난 한국 정부와 홀트가 모든 입양아에게 사과해야 할 채무가 있고 배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시민들에게, 그것도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잔학한 행위를 해 놓고는 어떻게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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