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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2 1층 입구 'LEE UFAN'
 국제갤러리 K2 1층 입구 'LEE UFAN'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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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하'의 창시자로 세계적 거장이 된 이우환(Lee Ufan) 전이 국제갤러리에서 5월 28일까지 12년 만에 다시 열린다. 그는 60년대 후반, 일본 니혼대에서 하이데거를 전공, 동서의 존재론과 자연주의를 접목했다. 80년대부터 근작까지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만남'은 무한을 열어주고, '대화'는 예술을 탄생시키는 미학에서 이우환은 1968년부터 '관계항(Relatum)'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우주를 압축시킨 공간 같은 전시장에서 자아는 최소화하고, 우주는 최대화하는 자세로 동시대의 정신에 조응하는 점과 선의 예술을 해왔다.

이우환은 자연과 인위, 정신과 물질, 직관과 논리의 구분하는 서구의 이항대립사고를 반대했다. 또 인간은 우월하고 자연은 열등하고, 사람은 고귀하고 사물을 하찮다는 관점도 거부했다. 오히려 사람과 사물과 자연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천지인처럼 통합된 일체로 봤다.

서구 근대주의 비판
 
이우환 I '대화(Dialogue)' acrylic and charcoal on paper 57.5×77cm 2023. 관객이 공간에 들어와 마음대로 놀고 상상하라고 여백을 많이 준 것 같다.
 이우환 I '대화(Dialogue)' acrylic and charcoal on paper 57.5×77cm 2023. 관객이 공간에 들어와 마음대로 놀고 상상하라고 여백을 많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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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은 일본에서 근대를 거부하는 '68혁명'을 경험했다. 그는 '모던'을 근대와 현대로 구분한다. 이걸 미술에 적용하면, 어폐가 있지만, 작가가 "혼자 다 그리겠다"고 하면 그건 '근대미술'이 되고, 이우환은 이걸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작가가 "작업에 거의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건 '현대미술'이 된다. 모든 걸 관객에게 맡겨 둔다는 의미다.

그는 단절과 불통을 낳은 근대적 사고를 해소해야 인간과 자연 사이에 대화가 열리고, 공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 현대미술은 관객과 작가의 구분이 없고, 관객이 작가의 작업에 들어와 함께 놀아줄 때 시공간을 초월해 작업이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그의 이런 발상은 프랑스 인류학자 B. 라투르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책을 떠올리게 한다. 라투르는 '자연'만 따로 떼놓고 고정불변의 단일한 실체로 본다거나 사람과 사물, 사회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본다면 그건 근대주의에 갇힌 오류라고 말한다. 이중적 모순에 빠진 현 문명을 하이브리드 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우환 I '관계항-씸(Relatum-Seem)' 자연석(218×291cm), 흰 캔버스(77×60×38cm) 2009. 이 작품은 선사 시대나 고인돌 시대를 연상시킨다. 레비-스트로스는 오히려 그때가 지금 못지않게 문명적이라고 본다.
 이우환 I '관계항-씸(Relatum-Seem)' 자연석(218×291cm), 흰 캔버스(77×60×38cm) 2009. 이 작품은 선사 시대나 고인돌 시대를 연상시킨다. 레비-스트로스는 오히려 그때가 지금 못지않게 문명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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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우환은 문명의 우월감에 빠진 서구를 비판하면서 '문화상대주의' 주장한 레비-스트로스에 공감했다. "난 그의 <야생의 사고>를 읽으면서 종적인 것만이 아니라 횡적인 것도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암시를 받았다"라고 그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작가는 근대적 역사주의의 허위를 비판한 미셸 푸코에 동의한다.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는 "사회를 찌르고 전복시키는 사람이 있는 곳이 감옥인데 이를 기록했다면 그 자체가 테러리즘이다. 역사가 될 수 없는 걸 주제를 끌어내 그들의 위선을 고발했다"라고 풀이했다.

더 덧붙여 말하길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섹슈얼리티'를 언급한 건 욕망이나 충동 같은 건 누가 막거나 감독할 수 없고, 인간의 신체까지 간섭하는 건 억지 논리"라며 "그런 권력자는 위선이고, 그런 근대주의는 쳐부숴야 한다"라고 푸코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이렇게 이우환은 근대와 현대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걸 구분 못 하면 현대작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연과 문명의 교류
 
이우환 I '관계항-대화(Relatum-Dialogue)' wood floor, natural stone, light bulb and charcoal drawing natural stone 왼쪽 오른쪽 2021/2023. 서로 감싸는 돌과 철판이 형제처럼 보인다 ⓒ 국제갤러리 제공
 이우환 I '관계항-대화(Relatum-Dialogue)' wood floor, natural stone, light bulb and charcoal drawing natural stone 왼쪽 오른쪽 2021/2023. 서로 감싸는 돌과 철판이 형제처럼 보인다 ⓒ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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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은 평생 자연을 대변하는 '돌'과 문명을 상징하는 '철판'을 같이 놓는 연작을 해왔다. 위 작품은 좀 색다르다. 그는 이에 대해 "내 작품의 발상은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작품은 우주 만물과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원리를 축약한 풍경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는 어떤 이는 이를 '즐거운 대화'로 보고 어떤 이는 '서로 등 돌린 모습'으로 보는데 이건 다 관객에 달렸다고 본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야 예술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숨 쉴 여백도 없이 빡빡한 서구의 미술이 겉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보일 수 있지만, 이우환은 거기에 맹점이 많다며 관객이 틈을 비집고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상응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돌과 철판 사이의 상관성은 더욱 깊어진다고 봤다.

울림 있는 '사운드 실린더'
 
이우환 I '관계항-사운드 실린더(Relatum The Sounder Cylinder)' 사운드: 5'54" 1996/2023. 철판이 울림통 모양이라 악기 같다.
 이우환 I '관계항-사운드 실린더(Relatum The Sounder Cylinder)' 사운드: 5'54" 1996/2023. 철판이 울림통 모양이라 악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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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속이 텅 빈 강철 원통에 기대어 놓인 돌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사운드아트다. 원통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런데, 밖으로 숲속 새들, 비와 천둥, 산속의 개울이 만드는 자연의 소리와 공명하는 에밀레종 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이우환은 자연석과 인공물과 공간에 뒤섞어 놓아 거기서 발생하는 파장을 관조하게끔 한다. 공간 사이로 떨리는 진동을 통해 발생하는 소리의 호흡과 음파의 울림을 들어보게 한다. 이렇게 공백과 공명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기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이건 다 관객의 몫이다.

돌, 연인 되어 키스
 
이우환 I '관계항-키스(Relatum-The Kiss)' 2023 ⓒ Ufan Lee. ADAGP, Paris-SACK, Seoul, 2023. 두 돌덩어리가 참 정겹다.
 이우환 I '관계항-키스(Relatum-The Kiss)' 2023 ⓒ Ufan Lee. ADAGP, Paris-SACK, Seoul, 2023. 두 돌덩어리가 참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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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올 신작이다. 돌이 연인으로 의인화되었다. 부제 '키스'다.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로댕, 피카소, 브랑쿠시' 키스 장면보다 더 숨 막힌다. 요즘 젊은이 사랑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위 사랑은 서서히 달아오르지만 쉽게 식지 않을 것 같다. 둘이 틈 사이로 교집합 양상을 띤다. 사랑이 수직적이라기보다는 수평적으로 보여 그지없이 아름답다.

이우환은 누구인가?
 
이우환 작가. 사진: Claire Dorn, Courtesy of Studio Lee Ufan
 이우환 작가. 사진: Claire Dorn, Courtesy of Studio Lee Ufan
ⓒ Claire D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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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은 화가, 조각가, 철학자, 문명비평가로 활동한다. 그는 백남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60년대 후반의 일본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하면서 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근대문명의 그의 예리한 비판이 서구에서 먹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을 떠돌며 살았다. 그는 자신을 '자발적 망명객'이라고 말한다. 동경, '다마' 미대 교수 파리, 국립미술대학(보자르) 초빙교수도 역임한다. 전시로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2011), 파리 베르사유 궁전(2014) 등이 있고, 유네스코 미술상(2000)과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2007) 그리고 '금관문화훈장(2013)'을 받았다.

[2부] '알렉산더 칼더' 전
 
알렉산더 칼더 I '구아바(Guava 나무열매)' Sheet metal rod wire and point 181×372×118cm 1955
 알렉산더 칼더 I '구아바(Guava 나무열매)' Sheet metal rod wire and point 181×372×118cm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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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추상조각의 거장인 '알렉산더 칼더' 전이 이우환 전과 함께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칼더는 20세기 '움직이는 조각(키네틱아트)'의 창시자로 현대조각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였다. 이 갤러리에서만 4번째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 앞에 가보면 그의 작품이 거의 다 설치되어 있다. 그만큼 독보적이다. 1940년~1970년대 철사 조각과 페인팅(과슈)을 선보인다.

칼더 조각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건 역시 그 '유동성(Mobile)' 때문이다. 칼더 이전의 조각은 좌대에 고정된 것이었다. 칼더는 반면 무거운 철재 대신 가벼운 양철을 사용해서 공중에 설치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유쾌하다. 유희성과 조각의 엄밀함을 잘 조합시켰다. 거기에 추상적 형태로 시적 분위기까지 더해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알렉산더 스터링 칼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
 
칼더 외손자인 "알렉산더 스터링 칼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
 칼더 외손자인 "알렉산더 스터링 칼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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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상 길게는 설명하지 못하고 칼더 외손자인 알렉산더 스터링 칼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과 나눈 인터뷰를 본문을 대신한다. 여기에 칼더 예술의 요약된 핵심이 다 녹아있다.

- 오감을 다 충족시키는 예술을 '미디어아트'라 하는데, 칼더의 조각도 모바일, 사운드, 기계공학, 건축공학뿐만 아니라 시간, 공간, 진동, 반응 등을 포함해서 기존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한 조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칼더의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칼더 재단에서 일하면서 할아버지 전시를 위해 세계 117곳을 다녔지만, 특히 서울에서 전시를 공유할 수 있어 기쁩니다. 게다가 고차원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더의 조각 작품은 3차원도 아니고 4차원도 아니고 5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4차원이라고 한 것은 시간 장소를 넘어서는 것이잖아요. 5차원 혹은 고차원이라고 한 것은 그런 것은 인간만이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직관(intuition)도 포함돼 있어요.

작품의 요소를 보면 조각의 또 다른 단계 즉 가시적인 것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잖아요. 그런 것까지 조각에 녹이기를 원했어요. 그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어떻게 무한한 상상과 다차원 연상을 자극하는 아주 난해한 작품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를 조각에 담았어요. 다시 말해서 시공간과 신체와 영혼뿐만 아니라 울림과 제스처까지 포함해 그런 요소를 연결고리(connection)로 만든 작품이지요."

덧붙이는 글 | 이우환 과거전시: http://bit.ly/RgVC1 // A.칼더 과거전시: http://bit.ly/MAs4C0


태그:#이우환, #칼더, #관계항, #모빌조각, #키네틱(움직이는)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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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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