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멀리 어답산을 바라보고 있는 횡성호는 그 경관이 빼어나 횡성을 찾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명소로 거듭났다.
▲ 횡성호 멀리 어답산을 바라보고 있는 횡성호는 그 경관이 빼어나 횡성을 찾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명소로 거듭났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원주를 지나 동으로 향할수록 우락부락한 산세는 깊이를 더해 비로소 강원도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횡성을 지나 평창 진부에 이르게 되면 어느새 해발고도가 높아져 날씨와 기후가 온전히 달라진다. 한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이 이곳을 지나가며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하나의 축이 되는 것이다.

옛적에는 백두대간을 따라 백두산의 호랑이가 영남으로 내려오기도 했고, 수많은 야생동물의 통로가 되었다. 그러나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이 통로를 따라 생을 건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기도 했다. 백두대간으로 가는 초입에 자리한 횡성의 태기산에는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횡성의 또 다른 별칭인 화성의 이름을 딴 정자 역사 수몰지구에서 욺겨와 호수를 바라보는 자리에 세워졌다.
▲ 화성정 횡성의 또 다른 별칭인 화성의 이름을 딴 정자 역사 수몰지구에서 욺겨와 호수를 바라보는 자리에 세워졌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고대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정립하기 이전에 한반도 남부는 삼한이란 명칭으로 불렀다. 마한, 진한, 변한이라 불리던 조그마한 국가의 연합체는 각기 백제, 신라, 가야의 성장으로 인해 조금씩 잠식되어 갔다. 태기왕 역시 밀양의 삼랑진 인근을 다스리던 군주였을 것이다.

그러나 서라벌의 박혁거세를 공세를 당해낼 순 없었던 듯싶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나라도 잃은 태기왕은 1000리도 넘는 거리를 쫓겨난 끝에 멀고도 먼 횡성땅 깊숙한 곳에 정착한다. 하지만 신라의 집념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그와 군사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횡성땅 곳곳에 설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태기왕이 쌓았다는 태기산성과 갑천면 신대리의 성골마을에는 대궐터가 남아있다. 태기산 건너편의 산은 태기왕이 답사를 왔다고 해서 어답산이라는 명칭이 붙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갑천은 갑옷을 씻은 후에 그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그 갑천의 물길을 막아 현재는 거대한 호수가 되었으니 그 이름은 횡성호다.  
 
횡성호로 인해 잠기게 된 수몰지에서 욺겨온 중금리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하대시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 중금리삼층석탑 횡성호로 인해 잠기게 된 수몰지에서 욺겨온 중금리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하대시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횡성의 첫 방문지인 횡성호를 가기 위해 영동고속도로 새말IC를 나와 횡성읍을 가기 직전 북으로 방향을 틀면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다고 믿기 힘든 거대한 호수가 나온다. 횡성호는 2000년에 횡성댐을 막아 형성된 저수지다. 그러나 근래에 조성된 호수길 덕분에 한우, 찐빵 등 일부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이 고장에서 여행을 위해 찾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중 호수 한가운데 톡 튀어나온 반도에 조성된 5구간 길이 특히 인기다. 그 초입인 망향의 동산에는 횡성댐 건설로 수몰되었던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과 호수와 어답산의 풍경을 아우를 수 있는 화성정 그리고 두 기의 석탑이 자리해 있다.

횡성은 본래 하천이 동, 서 횡으로 흐른다고 하여 횡천이라 불렸으며, 화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망향의 탑 뒤편에 수몰지구에서 이전해 온 중금리 삼층석탑이 우리를 반겨준다. 곳곳에 상처를 입었지만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팔부중상은 신라말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 그대로다. 아마도 횡성 지역도 호족을 중심으로 이 고장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횡성호의 5구간을 따라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횡성호 조형물 횡성호의 5구간을 따라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망향을 동산을 지나 횡성호수 트레킹 코스를 향해 본격적으로 진입해 보기로 하자. 입장료 이천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 돈만큼 지역화폐로 제공하기에 근처의 카페나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다. 

5구간길은 크게 4.5km의 A코스와 안쪽으로 4.5km를 더 둘러볼 수 있는 B코스로 구성되었다. 어느 고장이든지 수변공원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지만 횡성호수는 웅장한 산세가 진하게 다가오는 덕분에 비치는 물그림자가 낯선 선경을 연출한다.

호수를 조용히 응시하며 다시 한번 재기를 노렸을 태기왕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본다. 길은 구불구불 우리의 앞날처럼 한 치 앞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반도형상의 트레킹 코스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수의 경관이 수차례 바뀌며 다양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횡성은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특한 축제를 열고 있다. 바로 장례문화를 주제로 한 것이다. 얼마 전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회다지소리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회다지는 죽은 사람의 무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흙에 석회를 부어 발로 단단히 밟아 다져가며 부르는 노래라 한다. 노래에 맞춰 상여꾼들이 막대를 들고 소리에 맞춰 동작을 취한다. 그 광경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횡성만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겠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회다지소리축제를 보기 힘든 경우에는 우천면에 위치한 회다지소리문화체험관에서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 회다지소리의 구성은 상여의 행진과 하관 후의 소리로 양분된다.

처음에 상여가 행진하면서 망자의 액을 달래는 방상씨를 선두로 깃발이 나오고 요요, 상여, 백가마를 따라 상주가 상여소리를 내며 외나무다리를 건너 입장한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회다지 과정에서 나오는 율동과 소리인데 마냥 구슬프게 들리기보다 남겨진 이들에 대한 강한 생명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상여꾼들은 회다지를 하며 죽은 자를 위해 신명을 끌어내며 마지막 축제의 장으로 도달하고 있었다. 현재 횡성 우천면 정금마을을 중심으로 이런 회다지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고, 전횡성군수의 장례를 치렀던 사진과 영상자료가 생생히 남아있다. 우리가 한우, 찐빵 등 몇몇의 이미지로 만 알았던 횡성의 매력은 이제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경기별곡 시리즈 마지막 3권인 <여기 새롭게 경기도>가 출판되었습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태그:#강원, #강원별곡, #횡성, #횡성여행, #운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