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2 04:26최종 업데이트 23.05.22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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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주최로 ’윤석열 정권 1년 여성시국선언 - 여성 인권 후퇴 1년,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 열렸다. ⓒ 권우성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에서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모으는 추모행동이 있었다. 7년 전 5월 17일 일어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여성혐오와 여성살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도 정부와 경찰청장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 '묻지마살인'이라며 애써 여성혐오 범죄를 지우려 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우리들'이 연결된 힘으로 가부장 사회의 여성폭력과 젠더폭력을 드러냈다. 그 힘은 2018년 미투운동으로 이어지다가 광범위한 백래시에 부딪혔다.


여성혐오는 차별적 공정 담론으로 발호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여성혐오세력을 규합해 당선되고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온라인공간에 올렸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차별의 현실조차 부정했다. 성범죄와 구조적 성차별은 다른 것이라며 궤변을 펼쳤다. 여성 인권은 이미 충분히 보장됐으며 성범죄는 별도의 문제이니 엄중 처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성폭력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고 차별하기에 발생한다. 성차별을 부정하는데 성폭력이 근절되겠는가! 한국여성의전화가 2022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6명이다.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작년 신당역에서 근무하던 여성노동자가 근무 중 스토킹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했을 때,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했고,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은 "'여성에 대한 폭력' 아니고 성폭력 사건"이라며 부인했다. 성차별과 젠더폭력을 부인하기 바빴다.

지방정부며 국가기관은 '여성'이 들어가는 각종 정책을 축소하거나 없앴다. 여가부가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의 성평등 6대 핵심 과제에서도 '여성'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언급됐으며, '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성평등은 양성평등으로, 젠더폭력이나 여성폭력은 폭력으로 바꾸는 등 여성과 젠더지우기에 몰두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여성이자 인권운동가인 나는 윤석열 정부에 반대한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책을 축소시키고 후퇴시키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여러 혐오세력들이 활개 치도록 조장한 정부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여성혐오세력은 여성만을 혐오하지 않는다. 얼마 전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돌아가신 양회동 열사와 관련한 집회 주변에서 노동자를 조롱하고 노조를 비난하는 신남성연대를 볼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을 괴롭히던 자들, 신자유연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활동가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여성혐오세력과 노조혐오, 성소수자혐오세력은 겹쳐친다. 그들은 소수자를 비난하고 기득권세력을 옹호하며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번다. 혐오세력 키우기에 여념이 없는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관심이 없다.

성폭력 근절하겠다면서 강간죄 구성요건 반대한 정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출입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여성가족부


지난 2월 국회에서 의결된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여가부 폐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성평등추진체계를 강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어긋나는 정부의 여가부 폐지안에 국회도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가부 폐지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았다. 여가부 폐지를 위해 장관이 되었다는 김현숙 장관도 사퇴하지 않았다.

윤 정부의 성평등 정책의 문제는 여가부 폐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여가부가 종합한 2019년 성폭력안전실태조사에서도 여성 10명 중 4명 가까이(38.6%)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전혀 없다.

구조적 성차별을 부인하는 정권이 있는데 성폭력이 사라지기 어렵다. 윤 정부가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형법 297조 강간죄 규정을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비동의 간음죄는 남성을 잠재적으로 성범죄자로 내몰고 허위 미투를 장려하여 수많은 무고죄를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한 악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윤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있다.

현행 형법상 강간죄에 대한 판례는 여전히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에까지 폭행‧협박이 이르러야 강간죄로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위력 관계, 친밀한 관계, 친족-가족 내 성폭력 피해자 등 다양한 위계 폭력으로 저항이 어려운 상황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음에도 강간을 강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폭행이 없어도 동의가 없으면 강간이므로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 동의란 개인이 상대방과 성관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일 때에 선택 가능한 것이다.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만큼 동의가 없으면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 영국, 스웨덴, 독일 등도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형법 개정안을 잇달아 통과시킨 상황이다.

성폭력을 다룬 형법의 강간과 추행의 죄라는 32장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침해한 폭력인지 분명해진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의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성적 수치심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현행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심지어 성폭력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무고죄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갈수록 고령화가 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인구문제 대책은 결혼·출산·양육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가임기 여성의 이성애적 결합 가족계획 수립'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바라본 채,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 책임 완화, 성평등한 일터 조성, 성·재생산권 보장 등 4차 고령화 계획에 담겨 있던 성평등 내용이 사라졌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돌봄 공공성 강화도 없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유산 유도제 도입, 건강보험 적용은 여전히 유예되고 있으며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생학적 접근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모두에게 임신중지권을 포함한 성재생산권 보장은 아직 멀다.

여성노동자에게도 평등한 노동권을!
 

여가부폐지저지 공동행동이 윤석열 정권 1년 동안 후퇴된 여성인권과 관련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여가부폐지저지 공동행동


여성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이며,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27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1위다. 여성들은 채용부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직종에 관계 없이 승진, 임금차별을 겪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약 36%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으며, 최저임금 미만 여성노동자 비율은 21.1%나 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여성이 겪는 노동재해는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폐암 발발률이 36%나 높은 급식실 노동환경에서 보듯, 여성이 일하는 직종을 고려한 산재 기준과 노동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인지적 접근과 교차적 차별에 대한 접근을 고려한 내용으로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산안법 5조 사업주 등의 의무와 36조 위험성평가의 실시에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여부 등에 따른 차이를 고려하도록 한 개정안을 정춘숙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나 외면하고 있다.

반노동적이고 반여성적인 정부는 노동시간마저 69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과로사 판정 기준인 주 55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과로사와 산재 사망이 높은 나라에서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여성들의 돌봄가사노동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남성 중심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의 구조 속에서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윤석열의 정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이유는 많다. 지난 11일 여가부폐지저지 공동행동이 14개의 의제를 발표했다.

▲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한 여가부 장관부터 교체하고 성평등전담부처 강화하라!
▲ 성폭력 대책, 형법 및 성폭력처벌법 개정부터 하라!
▲ 젠더폭력 근절하고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터 보장하라!
▲ 결혼·출산·육아 장려 중심의 저츨생 정책 철회하고 돌봄 공공성 확보하라! 
▲ 낙태죄 폐지 판결 4년, 모두에게 평등하고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하라!
▲ 여성노동자에게 평등한 노동권을! 최저임금 인상하고 산재에 젠더 기준을!
▲ 성차별적인 2022교육과정 개정안 폐기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대일 역사문제에 대해 반인권적, 반헌법적으로접근하는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 주69시간 노동시간 개악 중단하고 노조법 2,3조 개정하라! 
▲ 재난참사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 전세사기 해결하고 주거공공성 확대하라! 
▲ 맹목적인 친미 정책과 전쟁 위기를 심화시키는 행태를 당장 중단하라!  
▲공안탄압 중단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 국제기준에 맞게 기후 위기에 대한 환경정책을 재수립하라! 


이렇듯 광범위한 백래시 물결에서 우리는 숨쉬기조차 벅차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으며 반드시 퇴행을 거슬러 전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명숙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로 여가부폐지 저지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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