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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어린 딸을,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를, 어린 아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앗아갔다. 음주운전은 ‘살인을 예비한 범죄’다. <오마이뉴스>는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2018년 9월 25일부터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있었던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재판 판결문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렇게 마주한 63명의 가해자들은 다양한 감경사유를 내세워 수갑을 벗었다. 이미 음주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 음주 살인자들의 운전대, 지금 멈춰야 한다.[편집자말]
혈중 알코올농도 0.108% 만취 상태의 음주운전자가 2023년 4월 8일 대전 서구 둔산동 한 중학교와 초등학교 주변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걸어가던 배승아 학생을 덮쳐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와 오빠가 12일 대전 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건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 있다는 행위이다”며 “음주운전 가해자는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혈중 알코올농도 0.108% 만취 상태의 음주운전자가 2023년 4월 8일 대전 서구 둔산동 한 중학교와 초등학교 주변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걸어가던 배승아 학생을 덮쳐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와 오빠가 12일 대전 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건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 있다는 행위이다”며 “음주운전 가해자는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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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1일, 승아가 태어났다. 4kg을 훌쩍 넘겨 우량아 소리를 들었다. '승아라는 이름 참 예쁘네, 딸 낳으면 이름으로 지어야지'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SBS 드라마 <온에어> 속 톱스타 역할의 여주인공 이름을 미리 마음에 담아두었다. 딸을 낳으면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예쁘게 키우겠다'고 아이와 자신에게 약속했다. 오빠와 15살 터울의 사랑둥이 승아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2023년 4월 9일, 승아는 세상을 떠났다. 사고 발생 시각은 4월 8일 오후 2시 20분께, 화창한 대낮이었다.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중학교와 초등학교 주변의 인도를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던 승아. 일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1, 2시간 간격으로 '나 어디에 있어' 문자 보내는 습관이 생겼던 아이는 그날도 엄마에게 사고 10여 분 전 '잘 놀고 있어' 문자를 보냈다. 가해자는 전직 공무원 방아무개씨(66). 방씨는 혈중 알코올농도 0.108%의 만취 상태로 핸들을 잡았다.

CCTV 속 그의 차는 거침없었다. 주행방향 오른편 인도 경계석을 들이받자마자 핸들을 급격히 틀어 중앙선으로 달려갔다. 반대편 차선으로 가해자의 차량이 넘어갔고, 다른 차량이 진입하고 있던 상황이다. 그의 차는 그대로 인도로 돌진했다. 그곳에 승아가 있었다. 그렇게 스쿨존, 심지어 인도에서 열 살 아이가 사망했다. 유가족과의 인터뷰 시점인 5월 12일까지도 가해자는 피해자 측에 사과나 입장을 전달한 바 없다고 했다. 가해자가 5월 11일부터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해 온 것이 확인될 뿐이다.
 
교통사고분석 전문가인 한문철 변호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배승아양 사고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통사고분석 전문가인 한문철 변호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배승아양 사고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문철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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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열 살 승아

"미리 생일 축하해! 비록 너를 잘 모르지만, 내가 너 다치게 한 사람 벌 받게 해줄게!"
"승아야, 어른들이 미안해.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해야 해. 사랑해 승아야."


지난 12일. 승아가 세상을 떠난 인도 위 학교 바로 앞 화단에는 시민들이 하나둘 놓고 간 꽃과 편지, 머리끈과 사탕, 승아의 애착인형 '꿀꿀이'를 닮은 장난감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사고 이후 약 한 달가량, 가족들에게 전달된 시민들의 엄벌 진정서만 6000여 건에 달했다. 공분이었다.

사고 현장에는 바로 옆, 맞은편 도로까지 사방에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승아야 미안하다'래... 곧 생일인가 봐" 사고 현장 앞을 지나던 교복 차림의 여중생들이 편지를 읽으며 한마디씩 사고를 언급했다. 승아와 같은 학교 5학년 언니부터 이웃 어른들까지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추모 편지에 남겼다. 승아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설치됐다는 방호 울타리에는 '차도로 넘어가면 위험하오니 조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펄럭였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놓고 간 꽃과 편지 등이 놓여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놓고 간 꽃과 편지 등이 놓여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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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놓고 간 꽃과 편지 등이 놓여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놓고 간 꽃과 편지 등이 놓여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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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사고현장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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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승아양은 사고 현장에서 도보로 6, 7분이면 도착하는 초등학교 인근 주택가에 살았다. 사고 현장에서 승아양이 다니던 학교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아스팔트 위에는 '어린이보호구역'과 시속 속도제한을 30km를 뜻하는 표식이 군데군데 그려져 있었다.

"학교는 걸어서 3, 4분이었어요. 승아는 되게 조심성이 많은 아이예요. 차가 오면 먼저 피하는 스타일이었지요. 저보고도 (멀리서 차가 오면) 엄마, 차온다고 빨리 피하라고..."

"A형이라서일까" 엄마(49)는 생전 규칙 지키기에 빈틈없었던 딸 성격의 이유를 혈액형에서 찾았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10살 승아의 지론이었다. 엄마가 이야기하면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던 딸이었다.

외출 문제로 속 썩여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승아는 자신의 동선이 바뀔 때마다 '놀이터에 있어', '나 여기 어디쯤 있어' 먼저 연락하며 엄마에게 안심을 안기던 딸이었다. 합기도 검은 띠 1단도 금세 따고, 마라탕처럼 매운 음식도 곧잘 먹었다. 감기 말고는 병치레 없던 건강한 아이였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 승아가 ‘뽀뽀해 달라’고 할 때 찍은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해 놓고 사진에 입맞춤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 승아가 ‘뽀뽀해 달라’고 할 때 찍은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해 놓고 사진에 입맞춤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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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휴대전화를 켜면, 배경 화면에 입술을 쭉 내밀고 '뽀뽀해 달라'는 표정의 승아가 등장한다. 생전 '엄마 이거 배경화면 해'라고 보내온 사진이었다. 엄마는 아침마다 휴대전화를 켜고 액정 속 딸의 입술에 쪽 뽀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승아의 책상 위에는 사고 당시 아이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가 놓여있다. 액정은 깨졌지만, 딸의 통화음성이 자동으로 녹음된 파일이 남아있어 엄마는 그 목소리로 하루하루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했다.

홀로 육아와 일을 병행해온 엄마에게 승아는 "단짝친구이자 나의 보호자"였다. 그리기와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딸. 아이돌을 꿈꾸다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다시 선생님으로... 꿈도 많았다. 엄마는 화장을 할 때마다 눈물이 솟구친다고 했다. 화장을 하고 나면 꼭 딸에게 '엄마 어때?' 물었다. "음... 눈썹이 짝짝이야", "오늘은 잘 됐어!" 귀여운 평가가 따라왔다. 흰머리가 눈에 띄면 '엄마 할머니 되는 거 싫다'며 뽑아내던 아이. 엄마는 승아의 부재가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사고 후 한 달, 엄마는 집 바로 앞에 있는 사고 현장에 가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차로 이동할 때 '남 일처럼' 곁눈질해 본 것이 전부다. "도저히 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추모공원에 있는 딸을 보러 가거나, 아이의 책상에 올려둘 간식을 사러 가는 때 외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했다.

승아의 책상은 마치 방금 치운 것처럼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의자에는 애착인형 꿀꿀이가 승아 대신 앉아 있었다. 모두 사고 나기 사나흘 전부터 승아가 정리한 흔적들이다. 작은 손으로 책을 꽂고, 장난감을 줄 세우고, 일기장들을 정리했다.

"제가 저녁 아르바이트도 시작하면서 힘들어하니까... 엄마 기쁘게 해준다고. 그러고 갔잖아요."

딸의 체취가 날아갈까봐 엄마는 지금도 책상 서랍을 다시 열어보지 못한다.

"숨만 쉬게라도..." 의식 없이 누워있던 딸,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
 
유치원 때 꽃단장 하고 찍은 사진은 고 배승아 학생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유치원 때 꽃단장 하고 찍은 사진은 고 배승아 학생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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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승아에게 사고가 났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다친 줄로만 생각했어요." 급히 나서는 와중에, 경찰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어느 정도 다쳤나' 물어보니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확인하셔야 한다'는 말. 불안이 밀려왔다. 달려간 응급실, 얼굴 확인을 위해 겨우 승아를 만났다. 그날을 떠올리며 엄마는 앓듯이 울었다.

"숨만 쉬게라도 해주세요."

약으로 겨우겨우 승아의 심장을 뛰게 하는 상황이었다. 성인 기준 2배가량 되는 약을 투여했음에도 딸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점점 심장이 멎어간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무너졌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오빠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대전으로 달려왔다. 기차 안에서 뉴스를 통해 동생의 사고 정황을 파악했다. 한 사람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 갔다는 기사. 오빠는 열차 칸 안에서 눈을 감고 명상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딸처럼 키운 동생이었다. 동네 슈퍼를 가면 할머니들이 '아빠랑 산책 나왔냐'고 할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 대전 집에 오면, 제 방에 있던 짐을 바리바리 싸 오빠 방에 가서 종일 붙어 있던 동생. 승아가 죽음 직전에 다다른 모습을 맞닥뜨렸을 때 오빠는 의사에게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주시면 안 되냐'고 간청했다. 잠깐은 살 수 있어도 아이가 더 힘들 것이라는 애석한 대답이 돌아왔다. "더는 살릴 수 없겠더라고요..." 인터뷰 동안 눈물을 참아온 오빠는 이 말끝에 얼굴을 떨며 오열했다.

사고 직후 11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던 승아양이 그렇게 엄마와 오빠를 떠났다. 마지막 인사도 못 했다. 의식 없이 누워있어 눈 한 번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직 보내지 못해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못했다"고 했다. 승아의 장례식에는 동네 친구부터 선생님들뿐 아니라 처음 보는 시민들도 '같은 동네에 산다'며 찾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위로를 받을 수가 없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가해자가 (죗값을 치르고) 나오면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게 될까 봐" 끔찍하다고 했다. "승아와의 추억이 담긴 동네를 걷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음주살인 아니라는 사회...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사는데"
 
▲ 고 배승아 유가족 “음주살인 아니라는 사회...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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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사망진단서를 보여주며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가해자로 인해 딸이 사망했는데 사고의 종류가 ‘비의도적 사고(붉은색 표시 부분)'라고 적혀 있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사망진단서를 보여주며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가해자로 인해 딸이 사망했는데 사고의 종류가 ‘비의도적 사고(붉은색 표시 부분)'라고 적혀 있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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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온 승아의 사망진단서를 보고 가족들은 다시 충격을 받았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가해자로 인해 사망한 딸의 사인이 '비고의성 사망'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교통사고로 분류돼 '고의'로 적시되지 않는다는 설명에 할 말을 잃었다. 오빠는 음주운전 살인의 형량들이 가벼운 이유도 이 죄를 '비고의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엄마는 "대상을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았을 뿐,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건)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 있다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아무 짓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는) 아무 짓을 한 겁니다. 자기 살려고 (차오는 거) 부딪히는 거 피하려고 그렇게 핸들을 꺾어서... 남의 새끼를 죽였어요"라고 분노했다. 사과도 이미 늦었다고 했다. 엄마는 "합의 의사도 없고,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승아가 떠난 뒤, 음주운전으로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들의 판결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다. 이내 서러움이 밀려왔다.

"형량이 정말 얼마 안 되더라고요? 저는 평생 고통 속에 살 거고, 우리 딸은 이미 갔는데... 솔직히 저는 재판만 기다리고 있어요."

가족들이 원하는 건 음주운전과 음주운전 살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다. 오빠는 "음주운전 살인 자체가 살인죄 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 또한 "사고 유무를 떠나서 음주운전 자체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술 먹고 운전대를 안 잡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승아양을 사망케 만든 가해자의 첫 재판은 오는 31일 대전지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오빠는 승아양 사고 이후에도 계속 터져 나오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와 스쿨존 사망사고 뉴스들을 보며, 유족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함께 힘을 모으고, 위로도 해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지난달 16일에는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기자회견에 목소리를 더했다.
  
오빠는 "패가망신보다 더한 법안을 원하지만, 그래도 사소한 것 하나라도 바꾸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나서서 돕고 싶다"고 했다. 엄마도 같은 말을 했다.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법 후) 시행착오로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우선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지 말고, 하나씩 고쳐 가면 되잖아요. 시작도 전에 탁상공론에 그칠까 봐 무서워요. 말만 이렇게 나왔다가 쑥 들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거고. 다시 이런 유가족이 생길 거고..."

엄마는 친구들을 유난히 좋아했던 딸을 위해서라도, 음주운전 살인을 막기 위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승아의 사고를 "옆집 아이의 불행으로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생일선물로 약속했던 침대...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가 뽀뽀 백 번 해줄게"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승아의 애착 인형 ‘꿀꿀이’를 올려놓았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배승아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승아의 애착 인형 ‘꿀꿀이’를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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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1일은 고 배승아양의 생일이다. 아이가 생전 "노래 부르던" 생일 선물은 침대였다. '어린이날도 있으니 사주마' 약속했었다. 침대가 들어올 생각에 책상도 정리하고, 방을 대청소하던 딸. 엄마와 오빠는 침대 대신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승아를 만나러 갈 거라고 했다. 오빠는 "좀 정리가 되면 이사를 가서, 승아 방을 꾸민 다음 침대를 놓아주고 싶다"고 했다. 아래는 승아양의 어머니가 승아의 생일을 맞아 딸에게 쓴 편지를 옮긴 것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이쁜아. 내 딸. 널 부를 때마다 '엄마' 하고 달려오는 네 모습이 보이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않니? 엄마는 계속 기다리는데... 

승아야, 너는 내게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고 함께한 모든 것들이 행복이었어. 

지친 엄마한테 와서 웃음과 기쁨을 선사하고 늘 감사함을 알게 한 엄마 인생에 선물처럼 온 이쁜아!

네 모습, 네 목소리 아직도 선명한데 안을 수가 없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건 아마도 돌아오지 못하는 걸 알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쁜아, 네 생일인데 이번에도 침대는 어려울 것 같네. 엄마 혼자 쓰기가 힘들 것 같아서... 다른 선물 사줄게. 다시 말해주면 물론 엄마는 답정너지만... 이번엔 네가 원하는 다른 거 사줄게. 꿈 속에서 살짝 알려줘. 엄마 약속 잘지키는거 알지?

살찐 햄스터, 이쁜아!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 딸! 엄마 요즘 눈물이 많아져서 승아가 따라 울까 봐 참아 봐도 계속 눈물이나. 승아는 이해심이 많으니까 쪼금만 봐줘. 알찌?

담에도 엄마 딸로 와주면 그때는 같이 오래오래 살자. 승아가 예쁜 사랑도 하고 승아 닮은 예쁜 딸 낳으면 엄마가 키워준다는 약속 지킬게. 낙지볶음도 자주 해주고 멋진 곳에 가서 외식도 많이 하자. 가성비 안 따지고 장난감도 많이 많이 사줄게.

그러니까, 엄마 딸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엄마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엄마는 지금도 승아 냄새가 그립다. 우리 애기 승아. 엄마랑 다시 만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아프지 말고, 울지 말고 잠시만 안녕하고 있자.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가 뽀뽀 백번 해줄게. 사랑해 이쁜아!

츤데레 엄마가.

태그:#배승아양, #음주살인, #처벌, #살인, #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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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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