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5 11:52최종 업데이트 23.05.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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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픽사베이


개인적으로 기자와 정치인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다. 언론을 감시견에 비유하는 말이 생긴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정치인이라고 늘 비리와 실수만 저지르는 건 아니다. 성과가 있다면 잘한 일에는 칭찬을 해주는 게 맞다. 하지만 늘 경계해야 한다. 칭찬이 일이 아닌 사람을 향하는 순간 판단력은 흐려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편향된 태도를 가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인이 정치인과 거리를 유지하고 지나친 친밀감이 형성될 여지를 차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이들에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도 언론인들에게 그다지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 때문에 정치인이 언론인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다소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해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들도 사람인데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캐내거나 불편한 질문을 하는 이에게 어떻게 늘 친절할 수만 있겠는가.

하지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에도 선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이 인터뷰나 취재를 방해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당혹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정치인 두 사람이 있다. 바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언론에 대한 정치인의 문제적 태도
 

지난 1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하태경(오른쪽) 국민의힘 의원이 진행자인 최경영 기자와 설전을 벌이고 있다. ⓒ KBS


먼저 하태경 의원이다. 지난 1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하 의원은 인터뷰 도중 최 기자와 언쟁을 벌였다. 물론 기자와 정치인이 언쟁을 벌일 수 있고 그게 생산적인 논쟁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이 벌인 언쟁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고 오히려 감정적인 소모전에 가까웠다.

상황은 이렇다.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사실상 쉬운 해고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하태경 의원 발언에 최경영 기자가 '노동자의 시간당 수당을 문제 삼지만 국회의원들도 이런 건 더 많이 받으려 하지 않느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하 의원이 '한국 국회의원들이 한국 노동자들 복지를 경시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된다'며 발끈했고 이어서 사과를 요구하거나 앵커가 사람 불러 놓고 싸움을 거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최 기자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 의원이 보인 분노나 항의는 적절성이나 필요성이 결여된 매우 민망한 것이었다.

하태경 의원이 화를 내고 싸움을 걸며 소위 '급발진'을 하기에 앞서 그보다 약 한 달 전, 같은 당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의 인터뷰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월 10일 홍준표 시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 도중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시 김현정 앵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홍 시장은 '총선은 총력전이라 특정인을 지목할 건 아니다'라는 요지의 답을 했다. 사실상 질문을 우회한 셈인데 이에 비슷한 질문을 이어가던 김 앵커가 '한동훈 장관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다'고 인터뷰를 정리하자 홍 시장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통화를 종료해 버린 것이다.

정치인이 언론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지난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 중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질문을 문제삼아 전화를 끊고 있다. ⓒ CBS


이해는 한다. 의도치 않게 이율배반적인 사람으로 몰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홍준표 시장의 경우 이미 의견이 없다고 밝힌 사안에 대해 계속 질문받는 것이 짜증 날 수 있다. 하지만 두 정치인 모두 정상적인 인터뷰 진행이 불가능한 태도를 보인 건 문제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뽑힌 국민의 대표자다. 선출된 권력은 아니지만 언론인들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직업이 아니고서야 정치인들을 쫓아다니며 궁금한 것을 묻고 의혹을 캐고 비판하는 일을 매일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정치인이 자신의 직무에 성실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니기에 이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물어볼 수만 없을 뿐 특정 사건이나 의제에 대해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입장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지지 여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언론인은 단순한 직업인을 넘어 민주주의 작동에 필요한 톱니바퀴 중 하나이다. 언론인들에게 높은 직업적 소명이 요구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비판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 때문에 정치인이 언론인을 대할 때, 단순히 앞에 있는 사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취자, 독자, 시청자로서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시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치인이 충분한 존중과 품위 없이 인터뷰 도중 무례를 범한다면 그런 행동이 시민을 향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태경 의원과 홍준표 시장의 태도는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미덕 아닌 정치인의 소통 능력

국회에는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고 의원들은 소속이 다른 동료 정치인과 협상하거나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는 일을 한다. 이건 시장도 마찬가지여서 자신과 뜻이 다른 시의원이나 부처의 공무원들 그리고 주민들과 대화와 조정을 거치는 것이 늘상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정치인에게 소통 능력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기본적인 자격 요건이다. 소통을 잘하지 못한다면 협상도 설득도 조정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할 줄 알아서 되는 게 아니다. 정말 유능하게 잘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언론인이 불편한 발언과 질문을 하는 와중에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고 소통을 잘할 수 있겠냐고.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 현장을 생각해 보라. 국회든 시의회든 어디든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입장은 사방팔방 갈리기를 반복하고 대립은 기본이며 충돌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마디로 정치와 관련해 평정을 유지하기 쉬운 환경이란 애초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니 정치를 하겠다면 아무리 불편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아도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시민들이 그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당장의 화풀이를 위해 상대를 무시하는 선택보다 낫지 않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하태경 의원과 홍준표 시장이 보여준 태도는 이 모든 생각의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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