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6 21:20최종 업데이트 23.05.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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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자전거도로 풍경. ⓒ 성낙선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때를 맞춰 식사를 하는 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한적한 시골 길에서는 식당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 설사 식당을 찾았다고 해도 문을 닫아걸고 장사를 하지 않는 곳이 꽤 있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구멍가게라도 찾게 되는데, 그것도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면이나 읍 단위 주거지를 찾아가야 한다.

자전거를 타다가 허기가 느껴지면, 이미 몸 안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러면 자전거를 타는 게 몹시 힘들어진다. 그 전에 밥을 먹든 간식을 먹든, 미리 에너지를 충전해 두는 게 바람직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내 가방에는 항상 양갱이나 초코바 같은 비상식량이 들어 있다. 길을 가다가 편의점 같은 걸 보게 되면 이런 비상식량들부터 보충한다.
 

수풀이 우거진 영산강 둔치. ⓒ 성낙선

 
영산강 자전거도로에서는 식당이나 매점 같은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가조차 드물다. 이런 곳에서 끼니를 때우려면, 할 수 없이 자전거 길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까운 곳에서 바로 식당을 찾으라는 법도 없다. 오늘, 산 속이나 다름이 없는 느러지고개 위에서 점심때를 맞고 보니, 목포를 떠나기 전에 미리 도시락 같은 걸 챙기지 않은 게 후회막심이다.

예전에 누군가 내 자전거여행기에 이런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먹는 게 너무 부실해요." 그 댓글을 읽고 나서,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여행을 했어야 했는지 깨달았다. 특히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지 못해, 빵이나 바나나 같은 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았다. 그로 인해 점심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 댓글을 보고 난 이후로는 그래도 때마다 끼니를 잘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산강 자전거도로 구간별 안내판. ⓒ 성낙선

 
갈 길은 멀고, 배는 고프고

느러지고개를 내려와서는 다시 자전거도로 위로 올라선다. 고개 밑에서 보니, 강물 위로 데크를 까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 길이 산책로가 될지 자전거도로가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느러지고개를 넘지 않고 수변 데크를 이용해 여행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느러지전망대 이후로 살짝 조바심이 일기 시작한다. 아직 오늘 일정의 절반도 소화를 하지 못했다. 오늘 안으로 광주까지 가려면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갈 길은 멀고 배는 고프고 마음이 급하다. 조금 속도를 높여 보지만, 그 속도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몸이 서서히 지쳐 가는 게 느껴진다. 할 수 없이 금강정 푯말이 서 있는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금관정 오르는 계단 길. ⓒ 성낙선

 
금강정은 강변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이 정자는 19세기경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김시중의 아들 김상수가 부친의 노년 휴식을 위하여 영산강변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정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어떨지 궁금해 계단을 오르려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계단 끝에 출입금지 줄이 쳐 있는 게 보인다. 아쉽다. 금강정 강 건너편으로는 석관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는 건 이곳의 풍경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걸 의미한다.
 

죽산보. ⓒ 성낙선

 

죽산보 쉼터, 풀이 우거진 자전거 거치대. ⓒ 성낙선

 
금강정에서 얼마 안 가, 죽산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죽산보는 이명박 4대강 사업이 남긴 상징물 중에 하나다. 죽산보에도 여느 보와 마찬가지로, 강변에 각종 4대강 사업 관련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 전시 효과를 노리고 만든 물건들이다. 그런데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망대를 오르는 건물 계단에 잡초가 자라고 있다. 자전거 거치대마저 잡초로 덮여 있다.

영산강에는 죽산보 외에도 승촌보가 하나 더 있다. 승촌보는 죽산보에서 자전거도로로 약 22km 떨어져 있다. 승촌보는 나주시와 광주시 사이에 위치해 그나마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오는 것으로 보인다. 승촌보에 닿기 전에, 겨우 나주시 영산포에서 한참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영산포는 홍어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 도로 위에 홍어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생각 같아선 오늘은 그냥 이곳에 눌러앉고 싶은 기분이다.
 

승촌보. ⓒ 성낙선

 
점점 가중되는 엉덩이 통증

영산포를 지난 뒤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적절한 시점에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 실패한 데다, 오후가 되면서 엉덩이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탓이다. 자전거 바퀴가 돌을 밟거나 구덩이에 빠졌다 튕겨 올라올 때마다 통증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쭈뼛거리는 느낌이다. 그 바람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서 길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제부터는 지구전이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은 엉덩이 통증을 피하기 어렵다. 엉덩이 통증만큼 자전거여행자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도 없다. 누군가 엉덩이 통증 때문에 자전거여행을 그만뒀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엉덩이 통증만 덜 수 있어도 자전거여행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은 어떻게 보면, 엉덩이 통증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기면 끝까지 가는 거고, 지면 그 자리에서 여행을 접고 바로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광주, 영산강 자전거길 안내센터. ⓒ 성낙선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광주 경계선을 넘는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이다. 광주로 들어서고 나서는 그대로 북구에 있는 첨단대교 밑까지 페달을 밟는다. 첨단대교까지가 오늘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다. 첨단대교에 다다르는 동시에 해가 서쪽 산마루 너머로 사라진다. 비로소 대교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린다. 기진맥진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오늘 목적지로 정했던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원 한쪽 공터에서 한 젊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자전거 타는 걸 도와주고 있다. 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 주는데, 그 게 말처럼 쉽지 않은지 아들이 계속 퉁퉁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되짚어 본다. 자전거 타는 법은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기술 중에 하나다. 그 기술이 나에게 건강한 다리와 웬만한 일에는 쉽게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갖게 만들어서, 오늘 나를 이 먼 곳까지 오게 만들었다.
 

영산강, 산 너머로 지는 해. ⓒ 성낙선

  
한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사위가 짙은 어둠에 덮인 걸 보고 나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다. 오늘은 이 근방에서 하루 밤을 쉬어갈 예정이다. 첨단대교를 건너서 숙소를 찾아가는데 뜻밖에도, 광주 첨단동의 밤 풍경이 마치 서울 강남의 어느 길거리를 빼다 박은 것처럼 눈부시다.

영산강 자전거도로를 따라서 하루 종일 푸른 빛 일색의 강변 풍경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거리를 걸으려니 마치 현실 밖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근육이 풀어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온몸이 흐느적거리는 느낌이다. 이런 상태라면 돌침대가 아니라 돌바닥에 누워도 금방 잠에 빠질 것 같다. 국토횡단 자전거여행 첫날, 하루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여행 첫날, 목표 평화광장에서 광주 첨단대교까지 10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달렸다.
 

나주 느러지전망대에서 광주 첨단대교까지. 거리는 65.2km. (카카오맵 캡처)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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