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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한 장의 사진이 이슈가 됐습니다. 한 카페 출입문에 적힌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는데요. 카페 주인이 '60세 이상 손님'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노시니어존'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노인을 배제하는 공간은 더 있습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또 다른 '노시니어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무인 계산대.
 무인 계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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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부산에 사는 손녀가 찾아왔다.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집을 좋아하는 손녀다. 꽃밭을 만들어 물을 주고,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것을 즐기는 손녀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손녀가 기대하고 있는 어린이날 선물을 묻자 거침없이 캔버스를 받고 싶단다. 손녀를 태우고 아내와 함께 선물을 사러 나섰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사이 손녀는 할머니와 캔버스를 구입하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손녀와 상점 구경도 하고, 필요한 USB를 구입할 겸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어디에 있을까 망설일 사이도 없이 손녀가 이끄는 대로 가보니 찾던 USB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손녀 덕에 쉽게 USB를 구입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엔 사람 대신 무인 계산대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머뭇거리는 사이, 손녀가 카드를 받아 간단히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순식간에 변하는 세월에 적응하는 손녀다.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오고 간다. 손녀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보다도 못한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 급변하는 세월은 할아버지와 손녀를 금방 구분해 놓은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기계 대신... 긴 줄을 택했다 

얼마 전 택시를 탔을 때가 떠올랐다. 손만 들면 택시가 서고, 요금만 지불하면 된다. 택시를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겨웠지만, 웬만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을 들어도 택시는 '예약' 불을 켜고 무심히 가버린다.

도저히 택시를 탈 수 없어 예약하고 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더듬거리며 앱을 깔아야 했고 예약해야 했다. 방법을 알고 나니 편하기는 하지만 늙어가는 청춘은 너무 힘겹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서울 다녀올 때도 비슷했다. 아내는 발목이 시원치 않아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지방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의 유명하다는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런데 승차권을 예매하고 지하철 타는 법이 너무 어려웠다. 승차권을 구입하기 위해 들어 선 터미널, 낯선 기계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긴 줄 끝에서 기다려 매표원한테 구입했다. 언젠가 낯선 기계 앞에서 허둥거리던 기억이 남아서다. 

기계가 익숙한 듯 순식간에 승차권을 손에 쥔 젊은이, 뒤에서 감시하듯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가 부담스러웠다. 그 후, 휴대전화에 앱을 받아 표를 예매하고 당당하게 승차 큐알코드를 내밀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횡단보도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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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듯한 조용한 분위기로 아내와 함께 서울에 도착, 아직은 다리가 성해 어느 정도 뛸 수 있는 고희의 청춘이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의 횡단보도는 어찌 그리 멀단 말인가? 사람이 보이면 차량이 멈추는 스웨덴 여행 길이 생각났다. 초록불이 들어오고 쏜살같이 달려오던 차량들이 멈추었다. 서울에선 밀려오는 인파 속에 허둥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스라이 먼 횡단보도, 초록색 신호등이 껌벅거리며 위협했다. 가까스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스웨덴의 교통질서가 생각난 이유다.

지하철에선 과거 일본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만나러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동경의 복잡했던 지하철 노선도를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어떻게 표를 구입해야 하고, 어떤 노선을 골라 타야 할까? 경로우대로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구입해야 할까? 혼란의 연속이었다. 

노선도 복잡하지만 경로우대 무임승차도 쉽지 않았다. 경로우대 무임승차를 하려면, 기계에 신분증을 스캔하고 500원을 넣어야 한다. 승차권을 이용하고 난 후, 환불기에 넣고 환불을 받는다. 그런데 부산 지하철과 시스템이 또 다르다. 서울 친구에게 지하철 타는 방법에 대해 긴 과외를 받았다. 노선도 복잡한데, 몇 푼 아끼려는 노력과 시선이 불편해 그냥 후불교통카드로 지불했다.

지난번, 친구 내외와 오랜만에 나선 해외여행에서도 불편한 점은 있었다. 어렵게 휴대전화로 예매를 하고 여행 날짜를 기다렸다. 복잡한 문자로 여행을 안내하는 여행사,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앱을 내려받고 '셀프 체크인'을 해야 한단다. 힘겹게 시도를 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부탁하거나,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남은 자리를 잡으려 공항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도 낯선 기계가 앞을 막아선다. 어쩔까 망설이다 여권을 들이밀어도 버벅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도우미를 불러 어설픈 셀프 체크인을 하지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세월을 감당하기엔 버겁다.

열심히 변하는 세월을 따라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낯선 시스템도 어렵지만, 분위기도 얼떨떨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식사 후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을 들어서자 젊은이들이 북적대고 있다. 종업원이 다가와 안내하려나 머뭇거리는 사이, 잠시 후에 문을 닫아야 한단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커피숍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 마감 시간에 가까워져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으려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커피숍을 되돌아 나오는 우리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최근 한 카페가 출입문에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출입 제한'이라고 적어둬 논란이 일었다. 그 카페 주인이 왜 그런 문구를 내걸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각에서는 '일부 손님이 성희롱 등을 일삼아 자구책으로 쓴 문구'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노시니어존'이라는 명명이 등장한 이상 우리 사회에 이런 공간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커피숍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늙어가는 청춘들도 적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순 없을까?
 젊은이들이 가득한 커피숍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늙어가는 청춘들도 적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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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청춘들도 적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순 없을까? 어느 곳이나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인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먹는 것이 어렵고, 이동하는 것이 버거우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세월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새로움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끄트머리에서라도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다. 우뚝 선 키오스크에 적응하려 하고, 낯선 세월을 잡아 보려 한다. 복지사회를 외치는 수많은 구호 속엔 외로움과 낯섦이 가득하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듯이 세월은 도망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돌봐줄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엔 작은 관심이라도 두는 척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면하고 만다. 유권자들이 기억해 둬야 하는 민주시민들의 책임이지만 늘 아쉽기도 하다. 기울어진 마당에서 함께하는 게 힘겹다.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세월, 함께 어우러지며 소외 계층 없는 사회는 만들어질 수 없을까?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다. 

덧붙이는 글 | 변하는 사회에 적응해 나가려는 늙어가는 청춘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물건을 사는 것이 어렵고, 이동하기 어려우니 모든 것이 힘에 겨운 고희의 청춘입니다. 끄트머리에서라도 따라가려 몸부림치는 하루가 어렵지만 짜릿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힘을 내서 즐거운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야기들입니다.


태그:#세월, #경로우대, #택시,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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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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