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구(지방) 소멸은 '격차'의 현상은 드러나고 있지만 실제 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주목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미래세대 노동조합으로서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를 면밀히 들여다본다.[편집자말]
나 같은 청년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나 같은 청년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계약서 써주는 데 별로 없어, 알지?"

스물한 살, 첫 아르바이트에서 필자가 들은 말이다.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한 일', 내가 사장님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것. 처음 마주한 일터에서 근로계약서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8년 뒤 뉴스에서는 MZ노조라고 불리는 신생노동조합의 설립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대기업·공기업 내의 청년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노동조합, 언론과 사회는 이들을 '공정을 위해 싸우는 신세대'라고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헌법은 모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일단 나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비정형 노동자들과 불안정 노동자들도 아니라는 것. 

언론이 비추는 청년, 사회가 보는 청년, 대통령이 말하는 청년, 여당의 대표가 말하는 청년은 모두 달랐으나 정작 하위 80%의 가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청년들은 말하지 않았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청년,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서를 써야 하는 청년, 근로계약서가 감사한 청년. 그런 청년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고향에서 삶터를 꾸리고 싶어요, 그런데..."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만 7번 했어요, 그런데 주휴수당을 받아 본 적은 한 번뿐이네요."

전북의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광주로 대학을 온 조합원 A씨(27)는 아르바이트를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주휴수당을 받아 본 적은 단 1회뿐이다. 총 7번의 아르바이트를 한 그는 4대 보험을 내 본적도 딱 1번뿐이라고 한다.

"대학가 근처의 사업장들은 사장이 동네 터줏대감인 경우가 많아요, 좋든 안 좋든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소문이 쉽게 돌고요, 자주 마주치게 되니까 부당행위를 신고하기도 어려워요. 일을 잘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여러 곳에 돌려가며 일 시키기도 하죠. 저같이 다른 지역에서 온 청년들이 주 대상이 되기 쉬워요. 외지인에게 이곳은 타지니까, 연고도 없고 지역 사정을 잘 모르니 악덥업주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워요. 최저시급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일을 시키면서 그래도 내가 널 아끼니까, 일을 배운다고 생각하라며 가스라이팅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서울에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물가도 높고 월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사실 저는 제 고향에서 삶터를 꾸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데 광주보다 더 열악하고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광주를 선택한 거라서요. 그리고 광주는 제 고향에 비하면 인프라나 교통이나 훨씬 낫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여기서는 전공을 살리기 어렵죠. 출판사는 대부분 파주나 서울에 있거든요."

그는 광주를 '기회가 없는 도시'라고 말했다. 문학을 전공한 그는 특정 업종 종사자들은 아예 취직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전공을 살리고 싶어도, 제대로 된 출판사가 없으니 결국엔 수도권으로 간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자처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문화예술 일자리는 없는 곳, 이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지역에서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비단 문화예술업계뿐만이 아니다.

일자리를 위해 매년 몇 천 명의 청년들이 수도권 이주를 선택한다.

지난 2월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4분기 및 연간 지역경제 동향'을 보면 20~29살 청년이 지난해에만 광주에서 2644명, 전남에서 9256명 등 총 1만 1900명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에서는 2018년 3361명, 2019년 2588명, 2020년 2679명 등 유출 인구가 감소·정체 상태지만, 전남은 2018년 7983명, 2019년 8522명, 2020년 1만 944명으로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이른바 청년들의 '탈(脫)지역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청년들의 탈지역 현상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바로 일자리다. 호남지방 통계청에 따르면 광주의 20대 고용률은 2018년 54.6%에서 해마다 하락했고 2022년 10월 자로 광주의 청년고용률은 38.5%로 집계되었다. 전년 대비 2만 3000여 명 정도로 취업자 수는 증가했으나 20~30대는 3년 연속 감소추세다. 이는 전국평균 청년고용률 47.2%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밑도는 수치다.

더하여 주어지는 일자리 또 한 불안정하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약 11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8만 명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주 36시간 미만, 이른바 초단시간 노동자는 약 20만 명이 늘어난 64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더해 고물가와 금리 상세가 지속되면서 내수 부진과 경기침체로 인해 취업시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이행기가 길어질수록 결국 청년들은 초단시간, 불안정한 일자리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뿐인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인프라 구축 등도 수도권에 50% 이상이 집중된 상황에서 광주는 일자리도, 재미도 없는 도시다. 소위 있을 이유가 없다. 현실은 이러한데 대안은 터무니없다.

지난 대선에서 광주는 이른바 '복합 쇼핑몰 바람'이 불었다.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본선 2주 전 광주 전역에 '복합 쇼핑몰을 유치하겠다'라는 현수막을 붙였다. 당선 이후에도 청년층을 대상으로 삼으며 복합 쇼핑몰 어젠다를 띄웠고, 지역에서 정치 권력을 쥔 민주당은 마찬가지로 청년 유권자의 이탈에 놀라며 허겁지겁 복합 쇼핑몰을 시정 과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일자리를 위해 매년 몇 천 명의 청년들이 이주를 선택한다. 수도권이 지방 도시를 소위 프랜차이즈화시키는 이런 기이한 구조는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다.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생률은 0.78%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인구절벽, 지방소멸은 어느 순간부터 위기가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자체는 인구정책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대안은 명확하다. 지역에서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고, 취업하고, 집 마련할 수 있으면 다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오로지 일자리를 위해 몽땅 수도권에 몰려서 허덕이고 사는데 무슨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 이제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떠나기를 포기하는 청년들은 재생산을 멈췄다. 이것은 사회적 파업이다.

'시골생활 V-LOG'가 말하지 않는 것 

지역 한달살이가 한창 유행할 때, 나는 묘하게 그 감성이 불편했다. 여유롭고 느린 지역에서 천천히 사는 모습들을 볼 때면 이것 또한 수도권 시민들의 낭만으로 지역이 해석되는 것 같았다.

유튜브 피드를 채우는 '시골생활 V-LOG' 영상 속에는 1시간에 1대꼴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 등은 나오지 않는다. 필요한 곳에는 없는 지하철 노선, 응급환자가 수술할 병원이 없어 몇 시간을 돌고 돌아 겨우 온 지역거점 병원에는 늘 병상이 부족하고, 300인 이상의 기업이 겨우 2.4%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은 그 영상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광주는 거점 광역도시라 전남·전북권보단 사정이 낫다. 전남·전북권의 소도시들은 광주에 인프라와 인구를 흡수당한다. 더 큰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소도시에 세워지는 송전탑들과 위험을 감수하고 농촌 도시에 가동되는 핵발전소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왜 지금 한국의 도시풍경은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흡수하거나 경쟁하는 방식이 된 걸까 조금 더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다이소 가려면 하루에 딱 4번 기회 있음. 4번 버스 놓치면 다이소 못 감."

전남권에 사는 한 친구가 한 말이다. 한달살이라는 어떤 이들의 낭만은 누군가에겐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다정씨는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입니다.


태그:#지방소멸, #지역일자리, #인구유출, #광주, #청년세대
댓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