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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셔츠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 셔츠 100벌을 만들겠다'는 글(관련 기사 : 6벌의 셔츠 만들기, 이제 94벌 남았습니다)을 블로그에 올리자 친구가 '저도 셔츠 만들어 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댓글을 달았다. '코올~ 담에 원단 함 골라보아요'라고 흔쾌히 답글을 달았다. 그렇게 친구의 셔츠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딸아이의 셔츠를 보고 쓴 댓글이었으니 같은 흰색 천으로 같은 셔츠를 만들면 되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원하는 걸 말해주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선물한 셔츠
 친구에게 선물한 셔츠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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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입어야 할 가족들의 옷 만들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주말에 친구와 그림 전시를 보러 나갔다가 삼청동에서 식사를 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아 갈 때였다. '나는 이런 질감의 셔츠가 좋아'라며 길가 옷집에 걸려있는 부들부들한 재질의 천으로 만들어진 셔츠를 가리켰다. 친구가 생각하고 있는 흰색 셔츠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원래 만들려고 했던 셔츠 원단은 흰색이긴 했지만 사진으로는 질감이 전해지지 않기에 친구의 얘기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해주지 않았으면 나는 내 생각대로 천을 골라 만들었을 테고 친구는 뭔지 모르게 조금 아쉬운 느낌으로 그 옷을 입게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친구가 말한 것 같은 느낌의 천이 마침 있었다. 몇 년 전에 여리여리해 보이는 블라우스나 셔츠 만들려고 사둔 것이었다. 그런데 천을 주문해서 손에 받아드는 순간 재단을 할 때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같이 그려졌다.

차르르한 원단을 마루 바닥에 펴 놓고 그 위에 패턴을 올려 초자고로 시접을 그리는 순간 천은 이리 저리 휘어질 거고 기껏 올을 바로잡아 가위질을 시작하면 서걱서걱 가윗날에 이리 미끌 저리 미끌 움직여서 재단을 하다 뒷목을 잡게 될 게 뻔했다.

그 천은 그렇게 손도 대지 못하고 원단 산에 깔린 채로 몇 년이 흘렀다. 그 세월이 헛되게 흐른 것만은 아니어서 나도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 이렇게 찰랑거리는 원단을 재단할 때는 바닥에 담요 같은 걸 깔아놓고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드디어 귀동냥한 지식을 써먹을 때가 왔다.
 
찰랑찰랑한 천을 재단할 때는 담요 같은 걸 깔아놓으면 좋다.
 찰랑찰랑한 천을 재단할 때는 담요 같은 걸 깔아놓으면 좋다.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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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원단을 재단할 마음을 먹고 이번주에 셔츠를 만들 거라고 친구에게 미리 말을 했다. 친구는 '내가 생각보다 사이즈가 크다, 너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귀띔을 해주었다. 직장 다니는 친구가 주말의 시간을 쪼개어 만드는 옷이니 사이즈 선정을 잘못해서 못 입으면 서로 아쉬울 테니 잘 입고 싶어서 그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역시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입는 사이즈로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알아서 잘 해주겠지 하고 내버려두지 않은 친구 덕분에 주말 동안 나의 수고는, 만든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만족스러운 셔츠라는 형태로 보상을 받았다.

노래 가사일 때만 아름다운 '알잘딱깔센'

몇 년 전 라디오에서 얼핏 들은 설문조사에서, 주는 사람이 알아서 고른 선물과 받는 사람이 달라고 한 아이템 중 어느 쪽이 받는 사람의 만족도가 높은지를 맞춰보라는 퀴즈가 나왔다.

답은 단연 받는 사람이 받고 싶어한 선물을 주었을 때였다. 선물을 끝까지 비밀에 부치고 "서프라이즈~" 하면서 내미는 것을 더 좋아할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선물을 받을 사람에게 무엇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옷을 만들어서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특히나 더, 옷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괜찮을지부터 물어보았다. 다들 거절하거나 다들 좋다고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좋다고 하면 내가 만들 수 있는 후보군들을 몇 가지 주고 고르게 한다. 고른 후에는 신체적인 특성이나 희망사항을 듣는다. 평소 옷을 사입을 때 팔이 긴지 짧은지, 옷의 길이는 엉덩이를 가리는 게 편한지 반쯤만 내려오는 게 편한지.

실제로 물어서 나오는 대답은 내가 그 사람을 평소 봐온 인상으로 어림짐작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때도 많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알잘딱깔센'은 신뢰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의 줄임말인 이 단어는 말을 안 해도 내 맘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알아서 잘 하라는 말이다. 누군가가 일을 잘 했다고 칭찬할 때 쓰이기보다는 구체적인 지침은 없이 뭔가를 요구할 때나 비난할 때 쓰이기 쉽다. '디자인은 알잘딱깔센 해주시구요, 주부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알잘딱깔센이 안 되니?' 같은 식으로 말이다.

가족을 대할 때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알잘딱깔센'을 기대하면 결과가 좋지 못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눈빛만 보아도 안다는 건 노래 가사일 때만 아름다운 말이다. 제일 힘든 상사 유형 중 하나가 구체적인 업무 지시는 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얘기만 하다가 막상 일을 해가면 "내 말은 이게 아니잖아!"라며 버럭 하는 사람인 건 다 이유가 있다.

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선물을 할 때 제일 어려운 사람은 뭘 받고 싶은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뭘 좋아하는지 자기도 모르거나 뭔가를 갖고 싶다는 말을 입밖에 내는 것이 힘든 사람일 수도 있다. 어릴 때 수줍음이 많았던 내가 딱 그랬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가끔 방학이나 주말 행사에 동원되는 날 학교에 나를 데려가셨다. 보통은 동료 선생님의 딸이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있으면 내게 선뜻 내주셨고 그걸 수줍게 감사히 받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다. 그 선생님은 기념품을 받고 싶으면 '주세요'라고 말을 하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선생님이 괴팍하다고 생각했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뭔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으셨나보다 싶다. 30년의 세월을 건너 이제야 받들 수 있게 된 가르침이다.

가정의 달이다. 이래저래 선물을 주고받을 일이 많다. 주는 사람도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줄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받는 사람도 그 범위 안에서 받고 싶은 것을 말하고 조율해서 서로 기분 좋은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스무고개의 수고를 덜어준 친구처럼 나도 선물 주기 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자기가 원하는 걸 분명히 알고 그걸 표현하는걸 주저하지 않는 쉬운 사람이.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가정의달, #바느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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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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