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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26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배운다. 어린 시절 배웠던 때와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다. 요즘 피아노 학원은 음악 교육의 다양성 차원에서 바이엘이나 체르니 대신 다른 교재로 가르치는 곳도 많다. 체르니를 가르쳐도 간추린 교재로 배우거나 아이들이 희망하는 곡 위주로 교습하기도 한다.
 
피아노 악보들
▲ 피아노급수시험 피아노 악보들
ⓒ Coolpublicdomains, 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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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초등 고학년이나 졸업 시기가 되면 피아노를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날이 갈수록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피아노를 시작하는 시기나 그만두는 시기도 빨라졌다. 예닐곱 살쯤 시작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빨리 배우고 빨리 그만두다 보니 교육도 그에 맞추게 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포기를 부르기 쉬운 어렵고 지겨운 연습곡 대신, 당장 연주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부모의 요구가 많아졌다는 게 학원 원장님이나 개인 교습을 하는 지인의 공통적인 말이다. 

그리고 피아노 급수시험을 보기도 한다고. 어떻게 시험을 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각 급수에 따라 연주해야 하는 지정곡이 있고 그 연주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콩쿠르에 나가 성적을 얻기에 실력이 애매한 아이들이 성취감 고취 차원에서 응시한다고 한다.

하고 싶지 않은데 학원에서 자꾸만 권한다는 맘 카페의 글, 그동안 연습한 결과도 확인할 겸 시험 한번 쳐볼까 고민하는 질문들을 봤다. 결과를 확인하고픈 그 마음을 왜 모르겠냐만, 우리는 왜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평가의 형태로만 확인해야 안심하게 되는 걸까.

피아노를 평가로 접한다면
 
피아노는 결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오래 할 수 있었다.?
 피아노는 결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오래 할 수 있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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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격시험'이 꼭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피아노 연습이 좀 지겨운가. 배워야 할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험을 목표로 지정곡을 연습하면 구체적인 목표와 기간이 있다. 바짝 집중해서 곡을 소화하고 익히면서 단시간에 실력을 키우는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험으로 확인하는 현실에, 평가가 마냥 아이들의 의욕을 고취하기만 할까? 급수로 결정되는 피아노 능력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될까? 평가를 의식하다 보면 짧은 시간에 익히기 쉬운 효과적인 기교에만 치우치게 될 우려는 없을까?

자발적인 선택이고 취미인 피아노 연주가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논이나 체르니를 칠 때면 더 많은 포도알을 그려 연습 횟수를 뻥튀기한 적도 있었다. 인벤션을 치면서는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수없이 되뇌었다. 다시 내 발로 찾아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지금도 기쁨과 고통이 번갈아 찾아온다.

부모 손을 잡고 학원에 발을 디뎠을 게 분명한 아이들은 어떨까? 의욕이 넘치거나 재능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아이들이 지루한 연습을 해내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 과정을 견디다 보면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집중력, 끈기, 승부 근성 같은 것들을 서서히 얻게 되지만 그것을 알기에 요즘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부모 마음도 급하다. 이런 심리가 급수시험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5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 1등을 했다. 놀고 책 읽고 공상을 즐길 뿐,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내가 처음 받아본 주목과 기대가 은근히 좋았다. 그 후, 시험은 압박과 부담을 동반했다. 그 감정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결과를 의식하지 않고 흠뻑 빠졌던 시절은 되돌아 오지 않았고 공부가 더는 즐겁지만 않았다.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던 5학년으로 돌아가 본다. 공부처럼 평가를 통해 나의 실력을 확인해야 했다면, 중3 때까지 내 의지로 피아노를 지속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피아노는 결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오래 할 수 있었다. 

성적으로 가치가 매겨지던 청소년기에 피아노라는 자유로운 세계가 내게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적어도 그 시간만은 나만의 속도를 지킬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전공을 할 것도 아닌데 결과를 따지지 않고 지원해주신 부모님이 새삼 감사하다.

학교를 마치면 피아노 학원으로 갔고, 모차르트나 바흐,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의 초상화를 마주하고 피아노를 쳤다. 그들이 쓴 아름다운 악보를 더듬더듬 연습하다 보면 계절이 훌쩍 흘러 있었다. 몇 등급으로 실력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알 수 있었다. 어려웠던 부분을 결국 내 손으로 극복해냈고 한 뼘 자라났다는 것을.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피아노의 시간은 내게 있어, 능동적으로 배우는 기쁨을 통해 만족을 경험하는 여가, 정신건강의학자 문요한이 말하는 오티움(살아갈 힘을 주는 개인적 휴식)이었다. 학생이라는 사회적 역할이 정해준 속도와 기준으로 살다가, 피아노의 세계 속에서 다시 나로 회복되어 돌아왔다.

오티움은 일반적인 취미 중독과 달라 일상생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너지가 되어 여기서 얻은 긍정적인 힘을 일상이나 본업에서 활용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10대에 어떤 것에 순수하게 몰두하며 성장해 본 경험은 힘겨운 시기를 견디게 해 주었고 지금도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무언가를 도전할 때, 피아노를 통해 배운 감각을 떠올리며 나를 믿게 해 준다.

순수하게 몰입하는 경험의 기쁨

얼마 전 라디오에서 여름을 앞두고 반짝 다이어트와 몸만들기에 돌입한 사람들의 사연이 나왔다. 짧은 기간, 목표에만 염두에 두다 보니 무리하게 되고, 부상이나 요요현상, 번아웃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무기력증도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평가를 받고 결과를 의식하며 피아노를 배운다면 성취감과 자부심을 경험할지는 몰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이지 않을까. 실제로 급수 시험을 치고나면 피아노 배우기를 아예 그만두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를 보면 평가가 지속적인 배움을 보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피아노 실력을 급수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 피아노는 누려야 할 과정이 아닌 따내야 할 목표가 될 것이다. 나는 몇 급이고 남들은 몇 급인지 비교하게 되고 또 시험에서 지정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곡 위주로만 한정적으로 연습하게 될 것이다. 평가와 무관하게 드넓은 피아노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어떤 곡을 몇 달 동안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정말 이제는 (지금 나의 수준에서) 완벽하게 소화했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다시 연주해 보면 또 안 되는 부분이 나온다. 또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어려웠던 부분이 잘 풀린다. 오늘 평가에 통과했다고 해서 끝! 완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평가가 이런 걸 알려줄까? 어떤 역량을 발휘했다고 해도 향상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연습해야 하는 피아노는 마치 살아가는 일을 닮았다. 삶은 한 번의 시험 결과로 단정짓기 어렵다. 일시적으로 그 수준을 확인할 수는 있겠으나, 좀 더 긴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걸 피아노의 시간은 자연스레 가르친다. 

어제 치지 못했던 부분을 오늘 쳐내서 기쁘기도 하고, 잘한다고 여겨졌던 부분에 다시 부족함을 느낀다. 이렇게 더 나아지고자 연습하며 쌓은 단단함은 누가 부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쌓아가는 것이다. 시험으로 얻은 자신감보다 덜 즉각적일지라도 유효기간은 훨씬 길다. 

숫자로 확인하는 급수 실력보다 오래 가는 성취감은 배우고 거듭 연습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서서히 획득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자기 확신과 성취감은 다른 일에서도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아이들이 이것을 알아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피아노급수시험, #평가가성장에꼭필요할까, #양날의검평가, #피아노를치며꼭알아야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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