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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휘발유로 자신의 몸을 적시고 분신자살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라면 5번도 넘게 변했을 시간 동안 우리의 노동현실은 아직도 1970년대 그대로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살한 후 약 50년 후인 2023년 5월 1일 마치 기시감처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 조끼를 입은 양희동 지대장은 정부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하고, 2023년 5월 2일 하루 만에 숨졌다. 양희동 지대장은 유서에 이렇게 남겼다.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양희동 지대장은 '노동조합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면서 분신하고, 결국 숨졌다. 2023년 대한민국의 경제가 1970년대와 비교하여 GDP가 85배가 늘고, 수출이 153배 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상황에서 1970년대에서나 쓰였을 법한 유서의 내용이 쓰였음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법이 있어도 법이 준수되지 않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았다. 노동법 실무에서 일하는 필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으니 양희동 지대장의 분신은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였을지도 모른다. 

평택에서 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고용이 불안하기에 노동조합조차도 가입하지 못하는 노동자들 말이다. 이런 노동자들과 상담해보면, 노동조합 가입이 문제가 아니다. 

이분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몸을 굴려 가면서, 자신의 노동을 팔아 하루를 영위하는 일용직 노동자일 뿐인데, 사용자는 그 일당에서 공구대여비, 숙소비, 식대 등을 모두 공제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1년 이상 근무하여 정당하게 퇴직금을 요구했을 뿐인데, 고용노동부는 이 노동자들이 자신이 비용을 들여 사업을 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 적이 있었다.

또한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공사에 대해 재하도급을 줄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사를 찾아오시는 건설노동자의 상당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A기업 소속인데, 현장에서는 B기업과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고 있어요.", "저는 C팀장이 고용해서 일하는 사람인데, 현장에서는 D기업과 근로계약을 맺었어요."

건설 노동뿐만 아니라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명목으로 노동시간 8시간에 1시간 부여해야 하는 휴게시간에 대해, 빨리 점심 먹고 공정에 투입되기 일쑤다. 

노동자들은 휴게시간을 부여받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어렵게 증명했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처벌받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가 단순히 못 쉰만큼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면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을 내릴 뿐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는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이런 법적 규제는 전혀 동작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은 무시한 채 돈만 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김용균님은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결국 2019년 1월 15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어 공포되었고,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하지만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은 매우 떨어져 결국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대로 동작하였었다면 기업들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들 말이다.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피를 쏟으며,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쳐야 하는가? 정부가 진정 법치국가를 이야기 한다면, 정말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을 준수하라는 노동자들의 피끓는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있는 법을 준수하라는 내용으로 노동자들의 피를 보고 싶지 않다. 정부는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현실에 눈감지말고 노동관계법령을 준수하여 더 이상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바란다. 

故 양희동 지대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박정준 노무사무소 약속 대표 노무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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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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