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8 20:32최종 업데이트 23.05.0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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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부산기독단체연대가 궂은 날씨에도 부산시 동구 항일거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 김보성

 
3년 전, 나는 만 65세의 나이로 내가 속한 기독교 교단에서 목사를 은퇴했다. 자원해서 남들보다 5년 일찍 옷을 벗었다. 은퇴와 동시에 아버지가 지어준 '박철'이라는 이름 말고는 공식적인 직함을 거의 벗어버렸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었으니 홀가분하고 참 좋았다. 이미 오래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을 지났으니 가급적 현실정치와도 거리를 두고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살 생각이었다.

2년 전,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타나 주술과 미신에 의해 조정받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나의 우려와 관계없이 윤 후보가 48.56%의 득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잘해주기를 바랐다. 그가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이 기준이 되는 나라가 세워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1년 만에 나라가 완전 시궁창에 처박혔다.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 독선으로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경제 안보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속에서 뜨거운 것이 막 올라온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수행이 덜 되어서 그럴까? 아무리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되지 않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침묵하는 것은 더 큰 죄라고 생각하여 윤석열 퇴진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지난 3월 24일 윤석열 퇴진 부산기독단체 시국기도회에 설교자로 나서게 되었다.

설마 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자마자 검사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국회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소위 대통령 시행령이라는 걸 만들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특기가 압수수색이다. 부인 김건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깊이 개입한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는데도 한 차례 서면조사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실언과 기행을 반복하여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오늘 이 시대 가장 존중받아야 할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있다. 심지어 근로기준법에 의한 파업을 북한의 '핵위협'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낙인찍었다. 노동개혁이라며 주 69시간 노동을 발표했다 뭇매를 맞자 계속 말을 바꾸는 통에 이제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더욱 분통 터지는 것은 159명의 젊은이가 이태원에서 참사를 당했는데 이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고 절대 사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 공안몰이를 시도하고 국가보안법을 덧씌워 선량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내몰고 있다. 목숨 걸듯 한미일동맹에 올인하여 외교적 탄력성과 유연성을 전부 폐기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과 긴장을 대책 없이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은 일제 침략을 우리 탓으로 돌렸다. 그의 연설을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심지어 일본의 기시다 총리 앞에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과 구상권 청구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대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셀프 배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굴욕과 치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고 삼권분립을 위반했다. 이는 헌정 질서를 무시하는 국기문란 사건이다. 국가의 자존감을 기시다에게 바친 것이다. 명백한 탄핵 사유이다.

정의란 무엇이고 공의란 무엇인가
 

박철 목사 ⓒ 박철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저녁 늦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는데 사마리아 사람은 이 생면부지의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사마리아 사람 덕분에 강도 만난 사람이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율법교사에게 물었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시오?" 예수님의 질문은 "나의 이웃이 누구냐"를 묻지 말고 남을 중심으로 해서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를 먼저 물으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고 주장한다. 어찌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문제가 과거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문제는 현재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강도 만나 신음하고 죽어가며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고 한다.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이 시대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깊이 응답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대 정의란 무엇이고 공의란 무엇인가? 아픈 사람, 눈물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 같이 우는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같이 부르짖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의 핵심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에겐 정의를 행할 능력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없다. 그것을 그에게 기대할 수 없다니 참으로 불행하다.

성경에 "양심에 화인(火印) 맞은 자" 이야기가 나온다. 양심에 "화인을 맞으면" 불도장이 찍히면 양심이 마비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둔감해진다. 양심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게 된다. 말을 함부로 하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기준이 된다. 자기가 '절대 선'이라고 생각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든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매사 언행이 그렇지 않은가?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 본회퍼 목사라는 분이 계셨다. 반나치운동에 앞장섰던 본회퍼 목사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발각되어 감옥에서 순교했는데 그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게 더 큰 악이다",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는 사상자의 장례를 돌보는 것보다는 핸들을 뺏고 차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 그렇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미친 운전자의 핸들을 뺏고 차에서 끌어 내리는 것이다.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목사로서 조금도 주저할 일이 아니다.

취임 1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정부 출범 전과 후에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종이에 연필로 써보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형편없게 망가졌는지 대통령만 모르는 것 같다. 예수께서 활동하던 당시 기득권세력인 바리새인에게 나의 스승인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복음 9:41)

내년이면 내 나이 70이 된다. 지난 세월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도 전두환 군사독재도 다 겪어 보았지만, 요즘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로 우울하다. 검찰 공화국은 더 악랄하고 교묘해졌다. "이게 나라냐?"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향후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머지않아 반드시 꼬꾸라질 것이다.

각성한 시민들이 모이고 소리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역사의 새날이 올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지금 우리는 검찰과 보수언론을 앞세운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유린과 민족적 자존심의 훼손을 목도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악이 아무리 성해도 진리가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박철 샘터교회 원로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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