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2 11:58최종 업데이트 23.05.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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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외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0 ⓒ 연합뉴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사상최강'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상대적인 관점이다. 그만큼 올해 초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낮았단 뜻이다. 기시다 내각은 올해 들어서 내각총해산(중의원 총선거)이 끊임없이 거론될 정도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내각, 즉 총리의 지지율이 20%대에 돌입하면 '위험수역'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내각총해산을 해서 다시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작용해 왔다. 기시다 내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통일교와 관련한 인사 문제와 야심차게 내 건 '새로운 자본주의'가 뚜껑을 열고 보니 사실상 별 게 없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4개월여 만에 기시다 내각은 '사상최강'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왜 그의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보니 최근 다시 총해산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해산은 내각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동적 총해산'이 아니다.

지지율이 높을 때, 즉 국민의 지지가 높을 때 총선거를 치르면 당연히 집권당이 다수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출범한 개조내각은 더욱더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된다. 과거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미국과 오키나와 반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국민의 지지율이 70%대에 달했을 때 내각총해산을 했던 사례가 있다. 이를 '능동적/공격적 총해산'이라 일컫는다.

경제 애널리스트 사토 겐타는 "왜 지지율이 올라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굳이 분석하자면 다른 좋은 사람이 없다면 그냥 이 상태, 즉 기시다 내각이 무슨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이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났다는 방증이고, 그렇기에 이 기회를 살려 이번 회기 말 내각총해산을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론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요미우리신문>이 4월 14일부터 3일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이 47%, 지지하지 않는다가 45%로 나와 7개월 만에 지지율이 역전됐다. 아사히그룹 계열의 ANN 조사(4월 15일, 16일)에서는 전월 대비 10.2%포인트가 상승한 45.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참고로 10%포인트대의 지지율 상승은 개조내각 출범 시, 즉 허니문 기간에나 나오는 것이다. 유독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기로 유명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도 전월대비 3%포인트 상승한 36%가 나왔다. 뚜렷한 상승기조다.

한일관계 100% 승리, 기사회생한 기시다 내각

전문가들은, 그나마 이유를 찾는다면 내치에선 별다른 게 없으니 결국 '외교'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기시다 총리는 7년 8개월 동안 이어진 아베 제2차 개조내각에서 오랫동안 외무상으로 재직했다.

3월 16일 12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단독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2018년 10월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 인당 1억 원을 지불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파탄 난 한일관계를 주는 것 하나 없이 거의 100% 승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 냈다.

3월 21일 기시다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두 가지 이벤트의 효과는 매우 컸다. 우크라이나 방문 직후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48%까지 나왔으며 특히 우크라이나 방문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견이 74%까지 집계됐다. 즉 비지지층 중에서도 기시다 총리의 외교적 행위와 성과만큼은 높이 평가한다는 사람이 30%이상 나왔다는 뜻이다.
  

15일 오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에서 현장 시찰을 마치고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폭발음을 야기시킨 물체를 던진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2023.4.15 ⓒ 연합뉴스

 
지지율 상승에는 동정표도 포함돼 있다. 4월 15일 기시다 총리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와카야마 현을 찾았다가 폭발물 테러 미수를 당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테러에 희생된 지 채 1년도 안 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한 격분과 동정이 기시다 내각 지지로 쏠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이유는 '대체인물이 없어서'이다. <지지통신>이 4월 7일부터 나흘 동안 집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없어서'(14%)가 1등을 차지했다.

이는 아베 신조의 최측근으로 일컬어져왔던 다카이치 사나에의 실족과도 연관이 있다. 물론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수상에 적합한 인물로 고노 다로 현 디지털장관이 13%로 1위, 그 뒤를 기시다 총리와 다카이치 경제안전보장담당대신이 각각 9%로 동률을 이루고 있지만, 고노 다로의 경우 작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소속파벌의 수장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의 지지를 얻지 못해 패퇴한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자민당 최대 파벌인 세이와정책연구회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아베 신조의 측근 다카이치가 기시다의 강력한 라이벌로 대두되지 않을까 예상됐다. 대중적 지지도도 높기 때문에 최대 파벌의 지원만 가세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4월 23일 열린 전국통일지방선거에서 다카이치는 자신의 지역구인 나라현 지사 선거에서 역량부족을 보이며, 결국 자민당 후보가 분열되는 사태를 초래했고, 나라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유신회의 후보가 지사로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베 신조가 없지만 그의 유지를 따라 다카이치를 차세대 보수파 리더로 옹립하려 했던 세이와정책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들의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현실적으로 기시다 총리만한 인물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담당대신 ⓒ 연합뉴스

 
외교 빼면 엉망... 기시다 날개 달아준 윤 대통령

사실 외교를 제외한, 기시다 총리의 내정관련 정책은 엉망이다. 인플레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으며, 4월 13일 중의원은 75세 이상 의료보험료 부담액을 늘리는 건강보험법을 가결시켰다. 그가 의욕을 가지고 진행했던, 이른바 '차원이 다른 육아지원법'은 5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회기 말 공격적인 총해산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일정상 5월말 자신의 고향 히로시마에서 G7 서밋이 열린다. 6월 초순에는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한다. 이 안에 수정된 '차원이 다른 저출생 대책'이 들어갈 예정이다.

즉 자신의 전문분야인 외교와, 물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 짐작되진 않지만 뭔가 새로운 거대 플랜을 발표하고, 특히 저출생 대책 및 수정된 육아지원대책을 의욕적으로 진행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6월말 총해산-총선거를 실시하더라도 자민당의 대승이 확정적이라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총선거에서 기시다 총리의 주도 하에 자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면, 2024년 9월로 예정돼 있는 자민당 총재선거까지 기시다 총리는 여유 있게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의 이러한 지지율 상승 및 자신감 넘치는 정치행보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돌이켜보건대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이 없었다면 기시다 총리는 지금도 20-30%의 지지율에 허덕이며 아들의 총리보좌관 임명, 통일교 관련 대신들의 처우 문제 등으로 당내외의 공격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과반수까지 올라간 지금 그러한 스캔들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설령 누가 거론한다 하더라도 기시다 총리는 50% 지지율을 무기삼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긴자구의 경양식집 렌가테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찬을 한 뒤 떠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일본의 유력 언론매체들은 기시다 총리가 5월초순경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 보도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30일자에서 "기시다 총리가 3월 윤석열 대통령 방문 시 한일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했기 때문에 5월 7일 혹은 8일에 한국을 방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아마 윤 대통령에게 G7 서밋 초청장을 선물로 주지 않을까 한다.

기시다 총리의 주특기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본심이 아니라 할지라도 추켜세워 주는 것. 이러한 외교의 기본을 기시다 총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죽은 아베 신조의 별명이 '외교의 화신'이었다. 그 수족으로 5년 넘게 외무상을 맡아 봤으니 당연하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도 눈에 보이는 환대에 마냥 들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상대의 본심을 잘 파악하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세심히 따져보고 행동해야 한다. 어차피 줄 것 다 줬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건네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외교의 기본인 '기브앤테이크' 정신을, 한국정부가 되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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