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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 부피를 줄이려고 손으로 누르다가 튀어나온 칼날.
▲ 쓰레기봉투를 뚫고 나온 칼날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 부피를 줄이려고 손으로 누르다가 튀어나온 칼날.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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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칼이 나를 찌른다면?'

보이지 않는 칼은 판타지 속 무기가 아니다. 쓰레기봉투 안에 있는 칼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미화원에게 칼을 보냈다. 미화원의 뜻은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인데, 이 칼을 본 미화원은 마음이 어땠을까? 인천광역시 환경미화원 김선영(가명)씨를 만나 그 심정을 물어보았다. 다음은 지난 4월 21일, 김선영씨와 함께한 하루 동행기다.

새벽 3시 30분, 김선영(60)씨가 눈을 뜨는 시간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서두른다. 오전 중 길거리에서 비질을 하고 재활용·종량제 봉투를 치워야 한다. 해를 못 보고 일어난 지 수십 년, 그는 올해 12월 청소를 하던 동네를 떠난다. 정년이다.

시간에 쫓기는 환경미화원, 사치가 된 휴식
 
“한국 사람들은 전봇대를 너무 좋아해요. 소변도, 쓰레기도 전부 전봇대에 해결한다"라며 웃는다.
▲ 전봇대 주위에 버린 일회용품을 수거하는 김선영 미화원. “한국 사람들은 전봇대를 너무 좋아해요. 소변도, 쓰레기도 전부 전봇대에 해결한다"라며 웃는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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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항상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하나요?

"적어도 출근 시간 전까진 큰 길에 떨어진 낙엽과 쓰레기를 빨리 쓸어놔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간혹 민원이 들어와요. 지나가는데 먼지 날린다고 불평하거나, 통행에 방해된다고 민원을 넣어요. 사람이 많아지면 청소에 지장이 있어요. 그래서 오전 중에 큰길 빗질을 빨리 끝내 놔야 합니다. 그래야 오후에 골목 청소를 할 수 있어요."

오전 9시까지 대로 작업을 끝내면 짧은 수면을 취한다. 오후부터 골목 전쟁이 시작된다. 골목 청소는 길거리 청소보다 고되다. 미리 자두지 않으면 몸이 상한다. 골목에선 주택과 상가 주민들이 내놓은 쓰레기를 치운다. 종량제 봉투, 재활용 쓰레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무단 투기한 쓰레기도 많다. 10분이면 무단 투기한 쓰레기로 100L 쓰레기봉투를 꽉 채울 수 있다. 취재를 위해 그를 뒤쫓으려니 숨이 찼다. 김 미화원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이다. 중간 휴식 시간은 스스로 없앴다. 가끔 계단에 앉아 숨을 돌리는 정도였다. 

- 정해진 휴식 시간이 있지 않나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어디 쉴 데도 마땅하지 않고... 여름엔 빌라 아래 그늘진 곳에서, 겨울엔 문 열린 건물 1층 로비 같은 곳에서 쉽니다. 그나마 따뜻한 곳에서 10분 정도 쉬는 게 전부예요. 길에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그마저도 대놓고 휴식하기 힘들어요. 쉬고 있으면 일 안 한다고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어요."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뭘 먹으려고 해도 눈치가 보인다. 거리를 걷는 사람이 미화원에게는 감시원이다. 이 감시원은 미화원을 피하기도 한다. 냄새가 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걸 아는 미화원은 스스로 감시원을 피한다.

"작업복이 더럽다 보니, (편의점에) 잠깐 들어가 음료를 마시는 중에도 다른 손님이 오면 스스로 나가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뿐이 아니다. 미화원은 항상 전쟁 중이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쉬는 장소를 '막사'라고 부른다.

"그나마 요즘은 좋아진 편이에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환경미화원 전용 막사가 없는 구역도 많았어요. 이전 근무지에서 일할 때는 선풍기 하나만 딸린 컨테이너 박스에 6명이 들어가 대기해야 했어요. 여름엔 햇빛이 컨테이너를 달굽니다. 안에 있지도 못하죠. 지금은 그곳에 컨테이너가 없어지고 신식 막사가 지어졌다고 하니, 잘 된 일이죠."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는 환경미화원
 
오늘 안에 수거해야 한다
▲ 쓰레기 산 오늘 안에 수거해야 한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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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십 년간 거리에서 일하다가 만성질환을 얻었다. 나이를 먹으니 입원할 일도 많아졌다. 병가도 써야 한다.

"작년에만 병가를 10일이나 썼어요. 병원비만 320만 원 들었어요."

인대 질환부터 좌골신경통이나 테니스 엘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근육계 질환뿐만 아니라 호흡기 질환도 얻었다. 종일 차도에 붙어 있으니, 매연은 기관지와 폐를 약하게 한다. 어떤 때는 방진 마스크를 쓴다. 

고속도로 진입로 청소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다. 진입로 청소를 한 시간만 해도 온몸이 새카맣다. 사실 매연이 문제가 아니다. 쌩쌩 달리는 차도 무섭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 때문이다.

김씨는 "청소를 안 하면 차에서 무단 투기하는 쓰레기가 진입로에 수북이 쌓여요"라고 말하며 한숨을 쉰다. 쓰레기나 매연 뿐만 아니라 자연도 미화원을 힘들게 한다. 따뜻한 봄이지만, 미화원은 땀을 흘린다. 시원한 가을바람은 삭풍이다. 김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도, 건강도 한 겹씩 깎이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작업복과 청소도구를 넣을 수납 공간도 없다. 휴식 공간이라기 보다는 창고가 맞는 듯하다. 최근에야 환경미화원 전용 휴게실이 지어졌다.
▲ 컨테이너를 개조한 구 막사.  작업복과 청소도구를 넣을 수납 공간도 없다. 휴식 공간이라기 보다는 창고가 맞는 듯하다. 최근에야 환경미화원 전용 휴게실이 지어졌다.
ⓒ 김선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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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계절이 가장 근무하기 힘든가요?

"여름이죠. 열사병 때문입니다. 뜨거운 날씨에 밖에 나가 종일 걸어 다닙니다.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니, 지치는 미화원들이 많아요.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항상 열사병에 걸릴 수 있어요. 위에서 내려 쬐는 햇빛과 달궈진 아스팔트때문에 대부분 미화원들은 탈진 위험에 시달립니다.

저는 여름에는 항상 식염 포도당을 먹으며 일합니다. 종종 탈진해서 입원을 하거든요. 그럴 때 병가를 내죠. 그나마 봄이 가장 편한 계절이죠. 근데 사계절 중 가장 짧잖아요. 제발 이번 여름은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네요."

어디 여름뿐일까? 미화원은 고난의 행군을 멈추지 않는다. 가을, 겨울도 비슷하다. 단풍이 지는 10~12월은 특별근무체제로 전환한다. 주 7일을 근무한다. 하루라도 청소를 안 하면 하루 안에 치울 수 없는 낙엽이 쌓인다. 가을은 낙엽 지옥이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

낙엽이 다 떨어지면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종일 걷다 보면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 눈 오는 날엔 염화칼슘 작업을 한다. 도로가 얼면 시민뿐 아니라 미화원도 위험하다. 낙상하면 병상에서 몇 개월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눈이 올 때는 20kg짜리 염화칼슘 포대를 가지고 다닌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골목과 인도에는 직접 손으로 뿌린다. 염화칼슘 작업을 한 후, 다음 날은 어김없이 병가를 쓴다.

"적어도 폭염일 때라도 온전히 쉬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막사에서 대기하지만, 그마저도 새벽 시간대나 오후 3시 이후엔 나가서 청소를 해야 해요. 한파 때도 비슷해요. 하루 이틀은 안 치워도 괜찮지 않을까요? 거리가 좀 더러워도 일단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 차도에서 일하다 보면 안전사고 위험도 클 것 같은데요?

"위험할 때가 많죠. 차도 가장자리를 청소할 때 특히 위험해요. 그때마다 잔뜩 긴장을 하죠. 특히 골목길에서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는 정말 무서워요. 사실 바퀴 달린 것보다 위험한 건 쓰레기봉투 안에 있어요. 칼, 못, 유리조각... 보이지도 않죠. 그 때문에 손이나 발을 다치기도 해요."

"저희는 거리에서 일하는 사회 필수 인력이에요"

- 청소 이외에 미화원을 힘들게 하는 일이 있나요?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요. 그날도 거리 청소를 하고 있었죠. 지나가는 차가 서더니, 차를 타고 있던 사람이 저를 불렀어요. 제게 먹던 음식물과 쓰레기를 줬어요. '수고하세요' 한 마디 하고 차는 떠났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지,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 앞마당은 환경미화원이 청소할 의무가 없어요. 특히 자기 대문 앞은 직접 쓸어야 해요. 그럼에도 환경미화원이 대문 앞에 담배꽁초를 쓸지 않는다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많아요."

더한 일도 있었다.

"집주인 한 분이 집 앞에 콘크리트 담벼락을 세운 적이 있었어요. 불법건축물이었죠. 철거 명령이 내려졌어요. 그분이 혼자 철거 못 하겠다고 동사무소에 환경미화원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집주인한테 가서 이건 부당하다고 항의했던 적이 있었죠. 철거를 하다 다치면 그 집주인이 책임을 질까요? 우리는 노비가 아니에요.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노비처럼 보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정년을 앞둔 김씨는 후배 미화원을 위해 여러 부탁을 했다.

"정말 사소한 것만 지켜줘도 우리 할 일이 절반은 줄어요. 일회용 그릇 사용 후 세척해서 분리수거하기, 칼이나 유리조각 같은 날카로운 물건은 신문지로 싸서 별도로 버리기, 미화원에게 시비 걸거나 욕설하지 않기 등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쉽게 지킬 수 있는 것들이죠. 특히 물티슈는 제발 거리에 버리지 말아 주세요. 꼭 쓰레기통이나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잘 버려주세요. 바닥이나 나뭇가지에 들러붙어서 빗자루로 쓸어낼 수가 없어요. 일일이 손으로 떼어냅니다."

어쩌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환경미화원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거리 곳곳에 쌓인 쓰레기를 상상해 보자. 그들이 무엇을 아름답게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환경미화원으로 정년을 맞는 김선영씨의 부탁이다.

"저희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세요. 저희가 하는 일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저희를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일을 할 때 사정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환경미화원들이 일하는 시간과 조건, 임금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최소한 쓰레기봉투에 무엇을 넣으면 안 되는지 알고 있다. 김선영씨의 마지막 말이다.

"더러운 쓰레기들을 만진다고 해서 사람이 더러운 건 아니잖아요. 퇴직하는 날, 그동안 함께했던 거리를 돌아보며 웃으며 떠나고 싶어요."
 
옆으로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 차도 가장자리를 빗질 중인 김 미화원 옆으로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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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환경미화원, #노동, #사회필수인력, #청소,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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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간지 이코노믹리뷰에서 산업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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