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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렘

내겐 남도 여행이 설렌다. 너른 평야와 하늘, 푸근한 인심과 푸짐한 밥상 때문일 것이다. 또 서울에서 아주 먼 곳으로 떠나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다. 여기서 '남도'는 물론 전라도 남쪽 지방을 말한다. 보성, 강진, 순천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뭍을 떠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보길도가 그랬다. 바다와 섬 그러니까 다도해, 바다, 바다 구름, 배에 안길 수 있으니까. 유채꽃이 끝물일 무렵, 장흥에 들른 후 청산도행 배를 탔다. 지난 22일과 23일의 일이다. 
 
유채꽃밭과 돌담.
▲ 청산도 유채꽃밭과 돌담.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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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가 이청준

이청준 작가 작품 배경지를 찾아가는 단체 문학기행이었다.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의 주요 촬영지로 유명하다.

선배들로부터 이청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의 소설 쓰기란 "고단한 인생을 살게 해주는 씻김굿 역할"이었다고 한다. 김승옥 작가와 더불어 일본말을 배우지 않고 한글을 배워 소설을 쓴 첫 세대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유려하게 한글을 써 나갔기에 나는 이청준 소설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으니까. 교수로 초빙되었지만 교수직을 쭉 해나갔다가는 소설 쓰기를 게을리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는 일화는 대가다운 면모를 엿보게 한다.

내게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이청준 작가가 현실에 대한 투쟁보다는 상처받은 개인의 내면을 탐색해 억압의 실체를 밝히고, 인간 구원의 문제까지 제시했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은 뒤라 이 말이 이해가 되었다. <서편제>에서 한을 푸는 장면,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다도의 대가 초의 선사가 늘그막엔 다도는 물리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차를 마셨을 거라는 추측의 장면이 그렇다. 종교적 구원은 차치하고, 한을 풀고 용서를 하고 청함으로써 한 인간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구원 아니겠는가.

3. 유채꽃

배에서 내려 하루를 묵은 후 다음날 유채꽃밭에 갔다. 유채꽃 향을 맡아보았다. 부러 코를 대고 맡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은은한 향내였다. 강렬하지 않은 노랑이고 키와 꽃잎 크기도 크지 않을 뿐더러 은은한 향을 품고 있기에, 다들 유채꽃 무더기에 빠져 자신도 꽃이길 소망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겸허함 때문인지 봄의 유채꽃밭은 주변의 나무, 민가, 돌, 산, 바다와 잘 어울렸다. 섬의 벌판이라서 또한 그렇기도 하겠다. 달팽이의 느림을 자처한 섬이기에 이곳의 '느림우체통'은 제격에 맞았고, 사람들은 그 느림에 맞게 유채꽃밭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포구와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심지어 애초부터 건축물을 쌓듯 모양새 있게 조성한 덕인지 대단위 양식장도 풍경을 해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유채꽃의 끝물 무렵 산과 들판과 바다를 누비는 행운을 누렸다.
 
버스 안에서 관람한 영화 <서편제>.
▲ 서편제 버스 안에서 관람한 영화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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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편제

기행 오기 전 영화 <서편제>의 원작을 읽었다. '열림원' 출판사의 <서편제>다. 이 책에는 소리를 찾아 떠나는 '남도사람 1'에서 '남도사람 5'까지 단편소설의 연작으로 구성돼 있다. 이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소설의 공통된 소재는 '소리'였다. 판소리 '서편제'는 대략 섬진강을 경계로 한 호남 서쪽, '동편제'는 호남 동쪽의 판소리로 구분한다. <서편제>는 그 서쪽의 판소리 가락이 들어 있는 소설이다.

영화 <서편제>는 '남도사람 1'('서편제')과 '남도사람 2'('소리의 빛')를 원본으로 삼아 각색한 것임을 책을 읽고 나서 알았다. 섬에 오기 전, 기행버스 안에서 영화 <서편제>를 보았다. 요즘이 아니라 일찌감치 1993년에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1976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했고, 시대 배경은 50~60년대이니 허름하고 남루한 풍경일지언정 소설에 맞는 촬영지를 찾기가 지금보다 수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을 세트로 만들기보다 이미 있던 자연스러운 당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배경으로 적절하면서도 전봇대가 세워지지 않은 곳을 찾은 것이 그 한 예다.
 
화랑포공원 자갈밭 해변에서 마주한 파도.
▲ 파도 화랑포공원 자갈밭 해변에서 마주한 파도.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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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파도와 파도 포말

청산도 서남 지역의 유채밭을 지나 화랑포 공원까지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었다. 혼자 걸었다. 숲 사이로 바다를 보여주다 말다 하는 곡선의 오솔길이었다. 곡선 저 너머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모르는 오솔길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정말 뜻밖에도 자갈로 가득한 해변이 나타났다. 숲 오솔길을 걷다 해변가로 내려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보길도의 몽돌은 자잘한 크기인데 이곳은 알이 튼실한 자갈들로 가득했다.

자갈밭을 지나 바다 바로 앞까지 갔다. 이곳에서 이제껏 그 어느 때보다 파도를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파도가 하마 입처럼 크게 벌린 모습으로 내게 달려왔다. 그 우뚝 선 파도를 찍었다. 그러다 그 파도가 내 신발을 덮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어야 했기에 경계심을 풀었던 것이다. 두 번이나 그랬다. 그때야 1분 동안에도 그 파도의 높이와 밀려드는 길이가 수시로 달라짐을 알았다.

그러다 파도의 율동적 몸짓의 외형인 파도 포말(거품)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파도는 깨어짐과 퍼짐, 수그러듦을 포말로 표현했다. 여기엔 능동과 수동의 모습이 곁들여 있다.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달이 인력의 힘을 발휘해 바닷물로 하여금 뭍에 흔적을 남기게 하는 것이 파도이다. 밀물과 썰물 말이다. 바람도 큰 몫을 한다. 모두 수동의 파도이다.
 
화랑포공원 자갈 해변가에서 바라본 파도 포말.
▲ 파도와 파도 포말 화랑포공원 자갈 해변가에서 바라본 파도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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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말이 능동으로도 보였다. 다소곳하다가도 있는 힘껏 몸짓을 날리며 자유분방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고저장단의 판소리 같았다. 억지로 훈련받을 땐 수동적이기 마련이지만, 한이 맺히고 쌓이다 드디어 그걸 풀어내는 소리는 능동이다.

영화 <서편제>의 압권은 득음을 한 송화를 동생 동호가 찾아오고, 둘이 <심청가>를 북장단과 소리로 멋들어지게 그리고 눈물 나게 어울리는 장면이다. 나는 그걸 능동의 파도 포말로 표현해 보았다. 홀로 바다 앞에 앉아 바다의 판소리를 듣고 왔다 하겠다.

동호가 송화를 떠나듯 나도 시간이 된 듯하여 자갈밭을 걸어 나왔다. 올라오니 '서편제'라는 이름의 주막집에서 막걸리와 파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산도와 서편제 유람을 마감하는 최적의 자리였다.
 
정확히는 ‘청산 愛 say’ 낙서판이다.
▲ 청산 에세이 정확히는 ‘청산 愛 say’ 낙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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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산 에세이

영화 <서편제>에서 아비 유봉이 오래전 일부러 눈을 멀게 만든 딸 송화에게 물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알고 있었지? (예). 그럼, 용서도 했냐? (……). 니가 나를 원수로 알았다면 니 소리에 원한이 사무쳤을 틴디 니 소리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더구나. 이제부터는 니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혀라." 우리 각자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크든 작든 한이 있을 것이다. 순탄하지 않겠지만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하라고 이청준 작가는 송화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하는 듯하다.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일행들이 돌아가면서 소감 한 마디씩 발표했다. 출발할 땐 짧았지만 이땐 길었다. 소감마다 각별했다. 좋은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마음이 훈훈해져서 그랬을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 소감이 추억이 된 후의 느낌도 모임 '밴드'에 올렸다. 풍성했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의 '청산 에세이' 한 편씩을 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청산도, #서편제, #유채꽃, #파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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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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