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2 16:32최종 업데이트 23.05.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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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규탄, 보증금 반환, 임의 경매 반대 등이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전세 사기 관련 보도로 온 나라가 뜨겁다. 전세는 주택가격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려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택임대차 유형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전세제도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보편화된 이유는 미발달된 금융시스템, 주택의 양적인 부족으로 인한 지속적인 주택가격의 상승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세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윤대성(2009)은 전세제도의 전신인 '전당'이 이미 고려시대에 행하여졌다는 점과 조선 전기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나, 현재와 같은 전세제도의 시작은 조선 후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1876년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부산, 인천, 원산 3개 항구의 개항과 일본인 거주지 조성, 인구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고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 전세제도가 생겨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전세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6.25 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의 이해관계가 잘 맞는 제도였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전세자금을 이용하여 무이자로 마련할 수 있고, 세입자는 매달 이자 혹은 월세를 부담하는 것보다 일정 기간 주택의 반값 정도에서 주택을 임차하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 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에서 따져 볼 때, 집주인의 입장에서 주택을 매매가격의 절반 정도로 임대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은 이윤추구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세시장이 활성화된 이유는 지속적인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집주인은 이를 통해 자본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전세 계약 만료 시점에 상환해야 할 보증금을 집주인이 아니라 새로 입주하는 세입자로부터 마련하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증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깡통전세가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깡통 차다'와 '전세'의 합성어인 깡통전세는 매매가보다 전세 보증금과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 금액 합계가 더 높은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전세 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더한 금액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 깡통전세에 해당한다. 깡통전세의 원인은 지속적인 주택가격의 상승, 저금리, 그리고 정부의 전세 대출기준 완화 정책으로 시작된 갭투자에서 찾을 수 있다.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영향 미치는 갭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4월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고른 후에, 주택매입 전후에 바로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시작된 전세자금 대출은 전세값이 크게 상승하자 2000년대 말 정부가 대출 조건과 한도 등을 완화하면서 갭투자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갭투자의 증가는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을 상승시키게 되었고, 사실상 주택시장 부양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다. 갭투자가 갖고 있는 위험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 입주할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와 집값의 하락이다. 문제는 갭투자가 갖고 있는 위험 요소가 투자자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금리급등, 집값하락, 전세수요 감소 등이 이어지면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아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되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가 속출하게 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전세 사기 피해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자기자본 없이 전세보증금으로 수백 수천 채를 사들인 빌라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인천광역시 미주홀구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 피해사례는 빌라를 2700여 채 소유한 빌라왕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전세 피해자는 300여 세대 이상이며, 그 피해액은 무려 260억 원이 넘는 규모다.

지난 3월에는 같은 지역 104가구가 입주해 있는 주거용 건물에서 한 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가 경매로 넘어간 사례가 발생했다. 은행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등을 이용해 약 2700여 채를 신축한 건축왕에 의한 전세 사기 사건이다. 건축왕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이 목숨을 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정부에서도 전세 사기 피해를 본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거주 주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우선 매수를 신고할 경우, 최고가 낙찰액과 같은 가격으로 거주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으며, 피해 임차인은 직접 경매 유예, 정지를 신청할 수도 있다. 또한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한 세제 및 금융지원도 강화된다. 기존 임차주택 낙찰 시 200만 원 한도로 취득세를 면제해 주고 향후 3년 동안 재산세 감면을 받게 된다.

피해자가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지만 낙찰은 원하지 않을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공주택사업자가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피해자는 소득이나 자산의 요건 없이 매입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받게 되며 최대 20년 거주가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윤대성(2009) 한국전세권법연구. 경기: 한국학술정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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