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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에서 지렁이농장 운영하는 이상수씨
 충북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에서 지렁이농장 운영하는 이상수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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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차단하기 위해 덮어둔 가림천을 걷어내고, 삽으로 흙을 조금 파헤치자 꿈틀꿈틀, 보랏빛이 도는 지렁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 한 발짝 뒷걸음질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 그 속에는 지렁이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겼다. 심지어는 혐오의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지렁이를 어여쁘게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충북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 이상수(66)씨다.

아낌없이 주는 지렁이

사실 지렁이는 자연과 동물과 사람에 너무나 이로운 존재다. 지렁이가 흙을 먹은 뒤에 내보내는 분변은 유기질이 풍부한 '분변토'가 돼 식물의 성장을 돕고, 지렁이가 지나간 길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또 바람을 통하게 한다. 

"토양에는 유익 미생물이 10%, 유해 미생물이 10%,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미생물이 약 80% 있습니다. 지렁이는 땅속에서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3배를 먹고 분변토를 내놓는데, 이는 토양에 유익 미생물이 많아지도록 해요. 토양을 산성화하는 화학 비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천연 비료이지요." 

그뿐일까. 분변토에는 악취를 없애는 효능이 있는데, 악취 제거 효과로 대중에 잘 알려진 숯보다도 성능이 6배 뛰어날 정도다. 지렁이 존재 자체가 영양가가 높기에 가축에 훌륭한 먹이가 되기도 한다. 지렁이 원액은 중요한 화장품 원료로 쓰이고, 아토피에도 효과가 있는 데다 말리면 약재로도 활용되니,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지렁이'다. 

"지렁이는 어느 곳에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희생으로 주변에 도움을 주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그 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어요."

이상수씨는 15년 전, 이런 지렁이에 반해 고향인 정방리에 지렁이농장을 시작했다. 30~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지렁이를 키우고, 여기서 얻은 분변토를 활용해 2500평의 밭을 친환경 농법으로 꾸린다.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은 옥천로컬푸드직매장에 유통돼 소비자의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지렁이가 흙을 먹은 뒤에 내보내는 분변은 유기질이 풍부한 '분변토'가 돼 식물의 성장을 돕고, 지렁이가 지나간 길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또 바람을 통하게 한다.
 지렁이가 흙을 먹은 뒤에 내보내는 분변은 유기질이 풍부한 '분변토'가 돼 식물의 성장을 돕고, 지렁이가 지나간 길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또 바람을 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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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친환경 농업을 짓고 있지만, 지금껏 실패했던 해는 없어요."
 "15년째 친환경 농업을 짓고 있지만, 지금껏 실패했던 해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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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직장인·사업가로 살던 이상수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독립운동가이자 친환경농업운동가인 고 김채룡 목사에게 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순환농업을 배운 뒤 지렁이의 역할에 주목하게 됐다. 쓰레기, 배설물과 같이 사람들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을 먹고 부지런히 주변을 이롭게 하는 지렁이의 존재가 새삼 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기 시작한 토양은 갈수록 더 많은 양의 비료와 농약을 요구한다. 토양은 점점 산성화되고 여기에서 자라난 농작물, 이를 섭취한 동물과 사람 역시 쉽게 질병에 노출된다. 

앞을 보지도 못하고, 다리가 없어 땅속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 스스로 몸을 보호할 딱딱한 껍데기도 없고, 햇빛에 노출되면 쉽게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지렁이지만, 이상수씨는 그가 지금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고향에 돌아와 지렁이농장을 시작한 이유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무척 반대하셨지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렁이농장을 운영한다고 하니, 답답하게 느끼셨을 거예요. 그렇게 시작한 지렁이농장이 이제 벌써 15년째예요. 3년 전에는 여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법인(지렁이순환농업)도 만들었죠."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지렁이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지만, 이상수씨는 현재 분변토를 활용한 친환경 농업에 주목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직접 쌈 채소, 비트, 시금치, 양파, 당근, 감자 등 다양한 농작물을 길러내고 있는 것. 계절에 따라 시기에 맞는 농작물이 자라나는 그의 밭은 1년 내내 풍성하다. 그 밭을 관리하는 이상수씨의 손길 역시 덩달아 바쁘다. 

"15년째 친환경 농업을 짓고 있지만, 지금껏 실패했던 해는 없어요.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려니 일손이 버거울 때도 있고, 수익이 눈에 띄게 많은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해볼만 합니다." 

그는 지렁이 분변토를 활용해 유기농업의 선진지가 된 쿠바의 사례를 설명한다. 사회주의 국가로 과거 무역이 봉쇄되면서 식량자급을 위해 유기농을 시작한 쿠바. 국가적으로 첨단 농업을 교육하는 등 농업 발전에 힘을 쏟았는데, 이때 지렁이가 연구의 중심이 됐다. 화학농약 대신 지렁이 분변토를 적극 활용한 결과 쿠바는 10년 만에 질병 발생률을 30%나 줄일 수 있었다. 닫혔던 무역 빗장도 이곳 농작물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미국으로 수출되기에 이르렀던 사례다. 
 
이상수씨는 현재 분변토를 활용한 친환경 농업에 주목하며 직접 쌈 채소, 비트, 시금치, 양파, 당근, 감자 등 다양한 농작물을 길러내고 있다.
 이상수씨는 현재 분변토를 활용한 친환경 농업에 주목하며 직접 쌈 채소, 비트, 시금치, 양파, 당근, 감자 등 다양한 농작물을 길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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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씨는 지금도 도전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콜라겐이 풍부한 약용식물인 금화규 생산에 도전했는데, 지난해 10월 괴산에서 열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서 그의 금화규가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는 이와 같은 특수 작물을 생산·가공해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연구 역시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 상황에서 농촌이 살아남으려면 단순 1차 생산만으로는 어려워요. 특수 작물을 개발해서 소득을 높이고, 가공을 통해 유통이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야 하죠. 금화규 역시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가공한다면 각종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해볼 수 있을 거예요. 옥천로컬푸드 가공센터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생산자들이 가공 설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면 훨씬 좋겠지요."

또 하나의 꿈은 지렁이 교육농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지렁이의 이로움, 이를 활용한 친환경 농사법 등을 몸소 체험하며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교육농장을 통해 지렁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친환경 농법의 중요성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교육농장을 운영해볼 생각으로 얼마 전에 청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련 교육을 듣기도 했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지렁이의 가치를 알고, 국내 친환경 농업이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처음과는 달리 보이는 지렁이다. 이상수씨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정성껏 땅을 돌본다. 

월간옥이네 통권 70호(2023년 4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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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렁이,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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