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8 15:34최종 업데이트 23.04.28 15:34
  • 본문듣기
2022년은 코로나 이후 한국 맥주 시장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시점입니다. 한국맥주문화협회와 민텔이 조사한 2022년 자료를 토대로 2023년 맥주 시장을 2회에 걸쳐 예측해 보려 합니다. 1회에서는 지난 10년간 맥주 시장을 살펴보며 현재까지 상황을 점검하고, 2회에서는 2022년 자료와 함께 향후 예상되는 시장 현황을 전달합니다. 2회는 다음 주에 게재됩니다. [기자말]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박람회 및 와인&로컬 드링크 페어' 한 부스에서 수제맥주를 시음용 잔에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한국 맥주 시장은 격랑의 파고를 맞고 있다. 한국맥주문화협회가 민텔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한국 맥주 시장은 소매 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11% 증가한 3조 7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있던 2021년에 비하면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상처가 혼재되어 있다.

다른 술에 비해 맥주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역동적이었다. 2023년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시기로 보인다. 여전히 건재한 두 거인, 오비와 하이트가 흔들렸던 조준점을 다시 잡을 것이며 '4캔 만원' 프레임 설계자 수입 맥주들은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에 짧은 파란을 일으켰던 편의점 수제맥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반면, 작은 영역이지만 꾸준히 바닥을 다진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들은 조금씩 빛을 보리라 예상된다. 그동안 한국 맥주 시장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향후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두 거인이 지배하던 시장
 

3일 서울 시내 한 식당가에서 주류 업자가 주류 상자를 옮기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외식용 맥주 물가 상승률은 10.5%로 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10월(10.8%) 이후 24년 4개월 만의 최고였다. ⓒ 연합뉴스


2010년 초반 카스와 하이트, 두 거인이 수십 년간 지배하던 시장에 작은 돌을 던진 건 수입 맥주들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몇몇 크래프트 맥주들이 선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이후, 독일 바이스 비어와 벨기에 스트롱 에일이 소비자들의 미각을 다채롭게 했다. 

수입 맥주들의 성장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국내 신생 소규모 브루어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만든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새로운 향미를 접하며 작지만 다채로운 맥주를 찾기 시작했다.

2014년 소규모 맥주의 외부 유통을 허용한 주세법 개정은 이런 흐름을 더욱 활발하게 했다. 독일 스타일 맥주를 만들던 하우스 맥주에서 벗어나 인디아 페일 에일(IPA), 벨지안 윗, 세종 같은 그간 국내에서 볼 수 없던 맥주들이 탄생했고 수입 맥주 또한 이런 문화에 동참했다. 

다양한 맥주에 대한 폭발적인 공급은 가격 경쟁을 낳았다. 2013년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서 한시적 묶음 판매 형태로 진행된 수입 맥주 프로모션은 4캔 만원의 틀을 형성했다. 백화점이나 부티크 비어샵에서 구매할 수 있던 프리미엄 수입맥주도 대형 마트 선반에 얼굴을 내밀었다. 한 캔에 1000원짜리 맥주 같은 초저가 수입맥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절정에 달했던 맥주 시장에 조금씩 부작용이 생긴 건 2018년 정도였다. 낮은 수입가로 들어오던 맥주들이 국내 맥주들과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수입가격 또는 제조가에 70%의 세금이 붙던 종가세 체계는 국내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보다 해외에서 위탁 양조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오비는 보란 듯이 해외 공장에서 카스를 생산해 국내로 수입했고 일부 소규모 맥주 회사들도 해외에서 위탁 양조를 한 후, 마치 국산 수제 맥주인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4캔 만원이 일반화되자 전체적인 맥주 시장 포지셔닝이 흐려지기도 했다. 프리미엄 맥주는 가치에 맞는 가격에 판매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4캔 만원 프레임으로 인해 맥주는 싸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심어진 것이 뼈아팠다. 마트로 입성한 프리미엄 맥주들은 노출은 증가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그 결과, 수익 확보를 할 수 없었던 프리미엄 맥주들은 점차 선반에서 사라졌다. 무엇보다 제 돈 주고 맥주를 마시면 손해라는 소비자 인식이 업계의 가장 손해였다. 

맥주 세금 체계의 변화

2020년 맥주 주세법 개정과 코로나는 잔잔하던 맥주 시장에 큰 파장을 남겼다. 기재부와 국세청은 맥주 세금 체계를 생산량에 세금이 붙는 종량세로 변경했다. 무려 70년 만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입맥주와 국내맥주 간 형평성 문제 때문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종가세는 저가 수입맥주를 부추긴 반면, 국내 제조 맥주의 위축을 불렀다. 국내 소규모 맥주들의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대량 생산이 불가한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은 높은 제조원가에 붙는 세금 때문에 판매가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생산량에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가 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종량세 변경은 맥주 산업을 탈바꿈시켰다. 우선 저가 수입맥주들이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맥주를 저렴하게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편익은 줄었지만 지저분하던 시장은 정리가 됐다.

반면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비전은 확장됐다. 투자자들은 수제맥주가 금광이 될 것이라 여겼다. 양적 성장이 필요했던 소규모 맥주 회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생산시설을 늘렸고 수제맥주 4캔 만원 시대가 열렸다. 수년간 마트와 편의점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던 수제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며 선반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세금 체계 중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맥주 허가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덕에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가능했다. 여러 분야에서 상표 마케팅을 하고 있던 대한제분의 곰표는 맥주를 만나 대박을 터트렸다.

세븐브로이가 생산한 곰표 밀맥주 이후 말표, 유동 골뱅이, 백양, 금성 심지어 쥬시 후레쉬 같은 브랜드가 맥주로 재탄생했다. 이런 수제맥주들은 선반에서 수입맥주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본 맥주 불매 운동 또한 소비자들이 수제맥주에 시선을 돌리게 했다. 

코로나 팬데믹, 맥주 시장 바꿨을까
 

서울의 한 편의점 맥주 코너 ⓒ 연합뉴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수입맥주 하락, 편의점 수제맥주 상승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영업제한으로 펍과 음식점 등 유흥용 시장이 몰락하고 마트와 편의점 같은 가정용 시장이 폭발한 것이다. 6:4 정도의 비율이었던 유흥 시장과 가정 시장이 역전되기도 했다.

오랜 4캔 만원 프레임에서 수익 악화를 겪던 대중 수입맥주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수입맥주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특히 대형 마트에서 판매 부진으로 선반에서 밀려난 프리미엄 수입맥주들은 펍과 같은 업장 수익이 사라지며 힘든 시기를 맞았다. 

편의점에 진입한 수제맥주들은 연일 관심을 받았다. 우리와 친숙한 모든 브랜드가 맥주가 됐다. 2021년 제주맥주는 코스닥에 상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3000원이었던 공모가는 6000원까지 오르며 수제맥주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카브루도 최신식 시설을 갖춘 공장을 4개로 늘렸고 세븐브로이도 투자를 계속했다. 어메이징 브루어리, 세틀나잇, 스퀴즈 브루잉 등 콜라보레이션 수제맥주들을 편의점 냉장고에서 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오비맥주 같은 대기업도 조바심을 냈다.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orea Brewers Collective)라는 위탁 맥주 전용 회사를 설립해 수제 맥주 영역에 발을 담갔다. 심지어 롯데는 세븐브로이의 곰표 맥주를 위탁 생산했고 교촌치킨도 수제맥주 회사를 인수했다. 

2021년 한국맥주문화협회와 민텔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맥주 시장은 소매 기준 3조 325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3% 하락했다. 심지어 오비도 2020년 1조 3500억에서 2021년 1조 3400억으로, 하이트진로 맥주 매출은 8100억에서 7300억으로 떨어졌다. 반일 정서에 반사 이익을 얻은 하이네켄 코리아와 칭따오는 각각 1320억에서 1370억으로, 1010억에서 1050억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코로나의 파고를 쉽게 넘지 못했다.

반면 곰표 밀맥주를 생산하는 세븐브로이는 71억에서 400억으로, 상장한 제주맥주는 210억에서 270억으로 크게 성장했다.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소비자의 흥미를 끈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가정용 시장이 크게 확장하고 혼술 문화가 정착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2020년 주세법 개정과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은 수제 맥주 전성시대를 열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 사이에서는 4캔 만원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과연 수제 맥주인지 논란이 일었다. 소규모 맥주 양조 면허를 반납하고 일반 주류 제조 면허를 받은 편의점 수제맥주 회사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불나방처럼 편의점으로 몰려가는 몇몇 수제 맥주 회사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기 시작했다. 수제 맥주의 정체성이 재미에만 고착되는 것과 구분되려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도 늘어났다. 

코로나가 희미해진 2022년은 향후 맥주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2021년 대비 성장한 맥주 시장의 내면은 어떨까? 코로나가 시장과 소비자의 체질을 바꿨는지, 편의점 수제맥주가 문화로 정착했는지, 오비와 하이트 같은 거인은 어떤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선택했는지,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은 성장할 수 있을지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흐름을 읽는 자가 생존의 열쇠를 쥐게 될 것이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중복게재됩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