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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스탄에서 저는 더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인도로 향할 시간입니다. 우다이푸르에서 하룻밤을 달려 뭄바이에 도착했습니다.

뭄바이 시내로 들어가며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보았던 인도 도시의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 생각은 더 굳어졌습니다. 뭄바이의 골목은 인도보다는 런던과 훨씬 닮아 있습니다. 물론 당연한 일이겠죠. 뭄바이는 영국의 식민 지배와 함께 성장한 도시니까요.
 
뭄바이 시내 풍경
 뭄바이 시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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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래 이전 뭄바이라는 도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던 땅이었고, 꽤 융성한 도시도 가지고 있었던 땅이라고 하죠. 하지만 역시 뭄바이가 역사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534년의 일입니다.

1534년 12월, 뭄바이를 지배하고 있던 구자라트의 술탄은 포르투갈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무굴 제국은 아직 인도 전역을 지배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구자라트 술탄도 무굴 제국과 경쟁하고 있었죠. 구자라트 술탄은 무굴 제국과의 경쟁에서 포르투갈의 힘을 빌리기 위해, 뭄바이 지역을 할양해 주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뭄바이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 섬에 성을 쌓고 성당을 세워 도시를 만들어 나갔죠. 하지만 이때까지도 뭄바이는 그리 중요한 땅은 아니었습니다. 포르투갈은 디우(Diu)나 고아(Goa)와 같은 무역항을 인도에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CSMT역 앞
 CSMT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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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 잉글랜드의 찰스 2세와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결혼합니다. 포르투갈은 뭄바이를 결혼 지참금으로 잉글랜드에 넘겨주죠. 포르투갈에는 별 것 아닌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동인도 무역 시장에 뛰어들고 있었던 신흥국 영국에게는 이 땅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1668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뭄바이를 국가로부터 임대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영국 상관을 건설했죠. 도시는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0여 년 뒤 건설되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원형이라고 할까요. 동인도회사는 뭄바이에 인도 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합니다.

영국은 곧 남아 있는 인도나 포르투갈의 영향력을 모두 물리칩니다. 1784년 7개의 섬 사이를 매립하기 시작했고, 뭄바이는 거대한 하나의 섬이 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식민지배의 역사는 모두 뭄바이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뭄바이의 바다
 뭄바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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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인도 최초의 여객철도가 뭄바이에 개통됩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뭄바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제 수에즈에서 뭄바이, 콜카타, 싱가포르, 홍콩을 연결하는 항로가 만들어집니다.

뭄바이와 콜카타 사이에는 철도도 놓였죠.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일주>에서도 이 철도와 항로를 이용합니다. 여기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증기선과, 미국 대륙횡단철도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죠. 뭄바이는 발전하는 세계의 선두에 선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 이후에도 뭄바이는 다양한 산업과 무역의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아직까지도 뭄바이는 인도 금융 경제의 중심지죠. 인구 규모로는 델리와 순위를 다투지만, 경제력으로는 뭄바이가 단연 1위입니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도시권이기도 하죠.
 
플로라 분수
 플로라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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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런 면이 콜카타와는 달랐습니다. 콜카타는 전쟁과 분단, 빈곤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영국 지배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두껍게 쌓인 먼지 아래 잠들어 있죠. 영국풍의 건물이 선 골목에는 인도의 현실이 잠자고 있습니다.

하지만 뭄바이의 모습은 그 골목의 사람들조차 다른 도시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칭호가 실감이 납니다.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들.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명품을 파는 가게. 이곳이 런던이라도 해도 큰 위화감은 없을 풍경입니다.

뭄바이의 중앙역인 CSMT역은 런던 킹스 크로스 역과도 아주 닮아 있습니다. 영국인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하나밖에 모른다, 고 농담처럼 생각했습니다. 도심과 외곽의 난개발조차도 참 영국적인 모습입니다.
 
CMST역 내부
 CMST역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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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선원들은 뭄바이 항구에 들어서며,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를 보고 인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인도 여행 한 달이 넘었음에도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앞에 선 저도 마음이 조금 묘해집니다.

긴 항해의 끝, 고향과 아주 닮아 있는 도시에 도착한 선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들의 긴 여행과 저의 여행을 왠지 겹쳐 보게 되기도 합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보는 바다에서, 제가 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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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는 여러 의미에서 인도의 다른 도시와는 참 달랐습니다. 역사도, 도시의 경관도 그렇습니다. 인도보다는 영국과 닮은 도시입니다. 여전히 영국이 만든 도시경관이 빛을 잃지 않고 살아 숨쉬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도시에 남은 흔적은 화석과는 다릅니다. 사람이 사는 도시에서는, 화석처럼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흔적이란 없습니다. 그 흔적 위에서도 도시는 변화하고, 성장하고, 때로 쇠락하죠. 그와 함께 과거의 흔적도 변화하고, 재발견되고, 때로 무너집니다.

뭄바이는 과거의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도의 경제적 발전을 추동한 그 어디보다 역동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흔적 위에서 새로운 발전을 만들어내는 이 도시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옛 무슬림 시청 건물을 내려오는 무슬림 여성.
 옛 무슬림 시청 건물을 내려오는 무슬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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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이어갈수록, 인도는 참 다양한 나라라는 생각을 합니다. 도시 경관부터 역사유적, 사람들의 생김새와 문화까지 비슷한 구석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뭄바이뿐 아니라 인도의 모든 도시가, 인도와는 참 다르지만 인도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현장들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도 여행 일정은 이제 절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요, 저는 뭄바이에 와서야 제가 인도 여행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 #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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