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
집에 있는 시간엔 라디오를 틀어 놓을 때가 종종 있다.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화이트 노이즈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DJ의 멘트나 광고를 귀기울여 듣지는 않는다.
그러다 얼마 전 공익광고 하나를 듣게 되었다. 귀에 한 번 들어와서인지 그 광고가 나올 때마다 알아 듣게 되고 어느샌가 멜로디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적으면서 자연스레 광고를 흥얼거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쯤되면 광고를 잘 만든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
광고의 내용은 인사를 하고 손을 내밀고 감사를 전하는 건 처음만 힘들지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는 것으로, 먼저 실천하고 마음을 표현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https://youtu.be/GiXRHCnw-e4)를 듣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이 떠올랐다.
요즘 이웃
10대 후반부터 40대인 지금까지 나의 주거 환경은 늘 공동주택인 아파트였다. 지금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과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다. 얼굴은 익숙하더라도 인사를 나누지 않으니 굉장히 어색한 사이인 채로 지내는 사람들이 요즘의 이웃이 아닌가 싶다.
이웃이라고 말하기엔 어색한 그들을 만나는 곳은 대부분 엘리베이터인데, 사실 엘리베이터는 너무나도 불편한 공간이다. 사람이 여럿 있다면 오히려 덜하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 단 둘이서만 그 안에 있을 땐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타서 습관처럼 닫힘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가려는 층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와 함께 있는 그 짧은 순간마저 불편해서가 아닐까.
그러다 6년 전 지금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을 때, 이사한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어제 이사 오셨죠?" 하고.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속으로 '아, 너무 시끄러웠다는 얘기인가?'라는 생각에 "안녕하세요. 어제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해요"라고 대답했고, 그런 나의 대답이 무색하게 "이사하는 날은 다 그렇죠. 정리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고 지금까지도 만나면 그런 식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 인사를 계기로 이웃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한두 달 잠깐 머물다 갈 곳이 아니니 적어도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이웃들과는 가급적 어색하거나 불편함 없이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기 위해선 인사만큼 좋은 게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불편한 공간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고맙게도 아이들은 먼저 배꼽인사로 인사해 주었고, 그 고마운 인사를 받은 나 역시 아이는 물론 함께 있는 아이의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되도록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몇 번 그렇게 인사를 건넨 이웃과는 가벼운 안부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조금 다정해진다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배꼽인사를 하던 아이들은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는 재미있지만 급식이 맛이 없다는 얘기를 털어놓거나, 학원에 가기 싫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건강하던 이웃이 병환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아기띠를 거쳐 아장아장 걷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시간의 빠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물론, 나의 그런 인사에 모두가 반가운 인사로 대답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차마 외면하지 못해 가벼운 목례만 하기도 했고, 때로는 "안녕하세요"라는 나의 말에 그저 "네~" 하는 인사인지 아닌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안녕하세요"라는 나의 인사에 "네~" 하고 말던 분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로 대답을 해오고 있다. 그래, 어쩌면 그분은 나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코로나 시기. 마스크 없이는 외출이 힘들었던 그 짧지 않은 시기를 보내며 서로를 향한 시선 끝에 경계를 두기보다는 오히려 응원을 나누며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바로 그 짧은 인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비대면으로도 가능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 보자. 인류애가 뭐 별건가.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가 바로 인류애의 시작이 아니겠나. 오늘 당장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처음만 힘들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가 된다면 처음만큼 힘들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건넨 인사가 똑같이 인사로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기다려 보자. 모두에겐 각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