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1 05:03최종 업데이트 23.04.2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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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2022년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해 5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개혁은 더 미룰 수 없다"며 연금개혁을 가장 중요한 윤석열 정부의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이어 작년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3대 개혁 인기 없어도 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사실 연금개혁은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이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이미 오래다. 기대수명의 연장과 세계에서 가장 늦은 출산율은 한국의 인구구조의 큰 변화를 야기했고, 연금은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결국 미래세대만 희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세대 간 갈등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재정위기와 세대 갈등까지 연금과 연결된 이슈가 매우 중요하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연금개혁 의지는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국회 역시 연금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지난해 10월 여야 합의로 2023년 4월 30일까지 활동하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주영호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하 연금특위)를 구성했다. 연금특위는 민간자문위원회를 두기로 함에 따라 같은 해 11월 16일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개혁작업을 착수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 전폭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금개혁 논의는 사실상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3월 29일에 제출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성과가 없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민간자문위원회는 연금개혁의 쟁점인 소득 보장을 중시하는 입장과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경과보고서에 모수개혁(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 연령 등의 모수(parameter)를 조정하는 것) 관련 수치를 담지 않은 채 "국민연금 모수개혁은 정부 몫"이라며 사실상 모수개혁에서 손을 떼고 구조개혁(국민연금, 기초연금, 직역연금(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퇴직연금 등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넘어갔다. 다시 돌고 돌아 정치권으로 공이 돌아갔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사실 출발부터 이런 결과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제인 한국은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모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공약인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지 않고 이 역할을 국회 연금특위가 대신하도록 했다.

국회가 이 논의를 제대로 풀기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쉽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민간자문위원회 보고서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이 논쟁의 책임을 민간자문위원회에 넘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정치적 리더십과 정치과정이 필요한 연금개혁은 정치에 의해서 사실상 출발부터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공포 프레임 첫 번째, '국민연금 기금 고갈=국민연금 수령 불가'
 

3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연명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공동위원장, 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 남소연


현재 국민연금개혁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쟁점은 '2055년 혹은 2057년에 고갈되면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국민연금 수령 불가' 프레임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국민연금 기금 고갈=국민연금 수령 불가' 프레임을 계속 보도하고 있으며, 대중들도 이것을 상식으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연금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오히려 연금에 대한 '공포 프레임'으로 작용함으로써 연금개혁은 물론 사회안전망 자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령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에는 외국의 사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지속하면 그리스처럼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이하고, 국가부도를 맞이하면 그리스처럼 국민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꽤 많이 퍼져있다.

그러나 국가부도를 맞이한 그리스에선 국민연금 지급을 중단했다는 뉴스는 명백한 '가짜뉴스'이다. 국가부도를 맞이했던 그리스도 국민연금을 계속 지급했다. 만약에 그리스 정부가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면 그리스의 더 많은 국민들이 더 큰 생활고에 빠졌을 것이고, 더 심각한 소비침체로 그리스 경제위기는 더 심각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 고갈=국민연금 수령 불가' 프레임은 필자가 지난 2월 8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국민연금 기금 고갈' 공포 프레임... 걱정할 필요 없다"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국민연금 지급중단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가장 큰 장점인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안전성'은 국가의 책무로서 법(국민연금법 제3조의 2)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국민연금은 고갈되더라도 지급이 보장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리고 이용우 의원은 조규홍 장관에서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수시로 알려 불안을 없애달라고 당부했으나, 이 사안에 대한 보도는 <내일신문>이 유일했다.

공포 프레임 두 번째, '청년들 더 내라, 노인들 더 준다'

국민연금에 대한 두 번째 공포 프레임은 '청년들은 더 내고 노인들은 더 받는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반드시 지급될 거라고 보증해도 청년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불안해한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기금이 고갈되고 노동인구로부터 거둔 연금 액수가 충분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국고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판단에는, '국민연금으로부터 은퇴한 내가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수익'보다 '국민연금이 지탱될 경우 노동하는 내가 내야 할 세금'이 더 크기 때문에 '국민연금으로부터의 탈출'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이 프레임이 쉽게 청년들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청년층의 세대 간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갈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사실이 아니다. 이 프레임의 가장 큰 논리적 허점은 기초노령연금과 묶어서 보면 명확하게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고령인구가 늘어남에 따른 고령인구의 빈곤문제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사라지면 노년층 빈곤 문제가 사라질까? 아니다. 국민연금이 사라지면 노년층 빈곤의 문제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오히려 국고 부담이 늘어 청년층의 부담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자. 노인인구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면 기초노령연금의 액수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기초노령연금의 지출 액수가 커지게 된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은 전적으로 국고에서 지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국민연금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기초노령연금은 그 대상이 확대되고 그 기초연금 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 국고에서 지출되는 비용은 현저하게 증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국민연금 체제의 유지'가 오히려 '소수 청년이 다수 노년을 부양하느라 허리가 휘는 미래'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청년이 노인층이 되었을 때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할 것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이미 닥쳐온 현실이고 피할 수 없는데, 거기에 현명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국민연금은 필요한 것이다.

민간 보험보다 훨씬 좋고 안전한 국민연금
 

3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에서 한 시민이 상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공포 프레임과 달리 오히려 민간 보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보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에서 '연금액의 실질가치보장'(국민연금법 제51조 제2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국민연금은 연금을 받는 동안에 매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과 소득인상분을 반영하여 연금액을 조정함으로써 물가가 인상되더라도 연금액의 실질가치를 보장한다.

실질가치를 보장한 연금 지급은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통계청이 고시한 전년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만큼 매년 연금액을 인상하여 지급하기 때문에 실제 받는 연금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많게 된다.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은 연금을 받는 시점에 과거의 소득을 현재가치로 소득재평가를 한다. 즉 1988년 연금 가입 시점에 평균 소득금액이 360만 원이었다면 2019년 연금 받는 시점에는 평균 소득금액을 560만 원으로 재평가하여 연금액을 산정한다.

예를 들어 2003년부터 2023년까지 만 20년간 매월 200만 원의 소득에 따라 월 18만 원 보험료를 납부한 이가 국민연금을 수령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과거 소득에 대한 재평가를 하지 않으면 2023년에도 2003년과 같은 평균소득 200만 원을 기준으로 월 60만 원을 받게 되지만, 연도별로 재평가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한 후의 평균소득은 289만 원이 되어 월 71만 원을 받게 된다. 즉 국민연금은 연금을 받는 시점에 과거의 소득을 현재가치로 재평가하여 연금 가입기간 동안의 물가와 소득인상분을 반영한다.

그러나 민간 보험은 국민연금과 달리 물가변동률이나 소득재평가를 반영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노후설계를 위해 연금보험을 든다면 사보험보다 국민연금이 훨씬 좋은 보험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언론은 크게 홍보하지 않을까? 공포 프레임을 통해 실질적으로 득을 얻는 자가 누구일까?

'국민연금기금 고갈'이라는 예견되는 사실을 '국민연금 수령 불가능'이라는 거짓말로 연결한 공포 마케팅에 휩쓸려 국민연금이 정말로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약화로 이어질 것이고, 생활고에 빠진 고령인구의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소비감소로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후설계를 위해 많은 사람이 국민연금보다 훨씬 나쁜 조건의 민간 연금보험에 가입할 것이며, 그나마도 일자리 상황에 따라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면서 보험사만 이익을 늘려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더 늦출 수 없는 개혁과제로 연금을 꼽은 것은 매우 타당하고 잘한 일이다. 공약했던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정부가 직접 챙기고 국민연금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바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보의 비대칭을 넘어 가짜 정보가 진짜 정보로 둔갑한 현실에서는 어떤 논의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국회 역시 민간전문위원들을 앞에 내세우고 뒤로 빠져서는 안 된다. 설령 다가오는 총선 때문에 논의를 지금 당장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총선 이후에 연금개혁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 필자 소개 : 직장 찾아 부산으로 이사와 부경대학교에서 미시경제학과 산업조직론을 가르치고 있다. 시장경제의 매력에 푹 빠졌지만,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고 시장경제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고민을 요즘 하고 있다. "Tambien de este lado hay sue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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