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0 17:53최종 업데이트 23.04.20 17:53
  • 본문듣기

울산 쇠부리소리 공연 모습. ⓒ 울산광역시북구


새가 지저귀는 걸 노래한다고 표현한다. 우리말이건 영어(sing)이건 똑같다. 최초의 음악 선생은 아마도 새일 것만 같다. 인간은 새들의 지저귐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고, 소리로 대화하는 방식을 터득했을 게다.

유럽의 신화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 1796~1867) 원작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테나 여신의 플루트 발명으로 시작한다. 아테나가 숲속을 거닐다가 반지르르 윤이 나는 깨끗한 뼈를 발견하고서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최초의 악기인 플루트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고고학 분야에서도 플루트나 피리를 최초의 악기로 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3만5000년 전의 피리가 발견되었는데 재질은 독수리 날개 뼈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역시 오래된, 동물 뼈로 만든 플루트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뼈 피리가 문학적 소재로 사용된 적이 있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을 쓰면서 <화적편>에 '피리'를 별도의 목차로 따로 떼어놓았다. 피리를 특별히 잘 부는 왕실의 종친 단천령(端川令)과 가야금 잘 타는 기생 초향이의 만남을 다루고 있는데, 단천령이 부는 피리가 두루미 다리 뼈로 만든 거였다. 이름하여 학경골(鶴脛骨) 피리. 벽초는 단천령이 어떻게 학경골 피리를 만들게 되었는지, 생긴 건 어떻고 소리는 어떤지 등을 구성지게도 풀어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뼈로 플루트를 만든 장면에서 시작해 독일의 독수리 날개 뼈 피리와 중국의 뼈 플루트, 그리고 우리 <임꺽정> 속의 학경골 피리까지를 연결해 보면 너무나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음악의 공통점이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음악을 만국의 공통언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들의 지저귐이 그렇듯 말이다.

대장간의 마치질 소리가 '세마치장단' 원류
 

2022년 제18회 울산 쇠부리축제 중 쇠부리 불매소리 구현 장면. ⓒ 울산북구청 제공

 

2022년 제18회 울산 쇠부리축제 중 애기 어르는 불매소리 장면. ⓒ 울산북구청 제공


사람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는 아주 오랜 전통의 노래다. 일하는 게 힘들다 보니 노래로 그 수고를 누그러뜨리고자 해서 부르기도 했고,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이 즐거워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대장간 노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장간과 음악은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생각보다 꽤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세마치장단'이란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이 세마치장단이 바로 대장간에서 나온 말이다. 셋이서 하는 대장간의 마치질 소리가 세마치장단의 원류가 되었다.

세마치장단은 민요나 판소리, 농악 등에서 두루 쓰인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하는 <진도아리랑>을 비롯하여 우리 귀에 익은 수많은 3박자의 노래가 이 세마치장단이다. 대장간은 이처럼 우리 전통 음악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원초적 관계에 있다.

대장간의 풀무질과 관련한 노래도 전국적으로 많다. 서도민요 중에 <풍구타령>이 있고, 풀무노래(강원도 고성)나 불미노래(밀양) 등 화로에 바람을 불어넣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각 지역마다 특색 있게 전해지고 있다.

전국에서 따져 보면, 대장간 노래를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울산이다. 울산쇠부리소리는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호이다. 울산은 해마다 쇠부리축제를 펼친다. 쇠부리란 쇠를 부린다는 의미로 쇠를 뽑아내는 우리 전통 제철(製鐵)법을 일컫는다고 한다.

쇠부리소리는 철광산에서 철 성분이 많은 흙이나 돌을 캐낸 뒤 이를 불에 녹여 쇠를 분리해 내는 제련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다. 이 쇠부리 과정을 통해 나온 쇳덩이를 가져다가 각종 도구를 만드는 대장간에서의 노래도 울산쇠부리소리에는 포함되어 있다. 흙이나 돌이 철기(鐵器)로 변화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노래로 남아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5월 12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울산 '쇠부리축제'
 

울산 쇠부리축제 포스터. ⓒ 울산광역시북구

 

달천철장 전시관 내부 모습. 철을 캐내고 제련하고, 각종 도구를 생산해 내는 일련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2023년 4월 7일. ⓒ 정진오

 
지난 4월 7일 쇠부리소리의 현장, 울산을 찾았다. 오는 5월 12일부터 사흘 동안 울산 달천철장에서는 제19회 쇠부리축제가 열리게 되는데, 행사가 아직 한 달여나 남았음에도 울산광역시 북구를 비롯한 관계 기관에서는 벌써 축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울산쇠부리소리는 '쇠부리 불매소리', '쇠부리 금줄소리', '애기 어르는 불매소리', '성냥간 불매소리' 등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소리는 각각의 다른 상황에서 부르는 소리이지만 쇠부리와 연관된 것이어서 하나로 묶어 보존하고 있다.

'불매'는 화덕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를 말한다. 쇠부리 공정에서의 풀무는 편편한 발판에 여럿이 발로 구르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쇠부리 불매소리는 이 과정에서 풀무꾼들이 부르던 노래이다.

쇠부리 금줄소리는 쇠부리 작업장 주위에 부정을 막고 풍철(豊鐵)을 기원하기 위해 쳐 놓은 금줄을, 작업을 마무리할 때 태우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쇠부리가 잘 되어 부모봉양하고 태평성대하기를 비는 내용이다.

애기 어르는 불매소리도 있는데, 쇠를 다루는 데 무슨 애기인가 싶지만 쇠부리터 주변 마을에 젊은 부부가 일하러 나간 뒤 할머니들이 애기를 돌보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성냥간 불매소리는 대장간 풀무꾼들이 부르던 노래다. 성냥은 불을 일으키는 나뭇개비라는 말도 있지만, 쇠를 불에 불린 뒤 벼리거나 연장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성냥간 불매소리는 쇠부리터에서 나온 쇠를 받아 쓰는 그 주변 대장간에서 부르던 노래다.

울산쇠부리소리의 음율은 경상도 가락인 덧배기 장단과 이보다 좀 더 빠른 자진덧배기 장단이 주를 이룬다. 덧배기 장단은 영남지역의 토속 춤인 덧배기춤에 맞추는 장단이라고 하는데, 경상도식 자진모리장단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지막 쇠부리터 불매꾼 최재만이 전한 소리
 

울산 쇠부리터의 마지막 불매꾼 고 최재만 옹이 직접 만들어 썼다는 곡괭이. 달천철장 전시관에 가면 볼 수 있다. 2023년 4월 7일. ⓒ 정진오

 

달천철장 전시관 안에 전시 중인 쇠부리 과정을 쉽게 설명하는 그림. 2023년 4월 7일. ⓒ 정진오

 
쇠부리 작업은 단절되었지만 울산쇠부리소리가 지금까지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 언론사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울산 MBC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란 프로그램에 81세이던 마지막 쇠부리터 불매꾼 최재만(1900~1986) 옹이 소리를 전한 거였다. 이 소리를 채록한 때가 1981년이다. 최재만 옹은 쇠부리 일을 천시하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을 그만둔 뒤에도 자신이 한 일을 숨기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소리가 밖에 알려질 수가 없었다.

쇠부리 불매소리의 노랫말 중에는 '옛시절에 구충당이 십년세월 쇠를 차자 세상천지 헤매다가 차꼬보니 달내토철'이란 구절이 있다. 달천철장의 유래를 설명한 내용이다. 달천철장(達川鐵場)은 달천이란 동네에 있는 철광산이란 의미다.

노랫말에 나오는 구충당은 이의립(李義立, 1621~1694) 선생의 호이다. 구충당(求忠堂) 이의립 선생은 달천산에서 무쇠광산을 발견하고, 쇠부리를 통한 제련법을 터득한 조선 중기 제철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까지 풀무꾼들의 노랫말에 들어가 있다는 게 그저 반가울 뿐이다.

구충당의 달천철장 발견 이후 이곳은 우리나라 철 산지의 대표 격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여기서 생산한 철을 일본으로 몽땅 빼내 가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납품했다고 한다. 1993년 생산을 멈추고 문을 닫았다. 달천철장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달천철장 유적지에는 기념관 겸 전시장을 지어 삼한시대부터 약 2000년을 이어온 이곳의 유래와 철 생산 과정 등을 여러 가지 시각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달천절장 전시장 벽면에는 이색적이게도 일본인 교수의 편지가 걸려 있다. 시오미 히로시(潮見浩)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의 '달천철장 철광산 보존에 관한 요청서'다. 시오미 히로시 교수는 고대의 철 생산을 연구하는 '타타라연구회(たたら硏究會)'의 회장이었는데, 달천철장 철광산부지가 도시 개발 예정 부지에 편입돼 없어질 위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2000년 10월 울산광역시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달천철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고대 국가 형성기의 철 생산과 유통을 고찰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유적군'이라면서 보존 요청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타타라(たたら, 蹈鞴)라는 말은 바로 최재만 옹과 같은 불매꾼들이 달천철장 쇠부리 과정에서 발로 밟아서 바람을 냈던 골풀무를 뜻한다.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박타령>의 대장간 이야기
 

달천철장 유적공원에 있는 조선 중기 제철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구충당 이의립 선생 동상. 2023년 4월 7일. ⓒ 정진오


울산광역시는 이 편지 때문만이 아니라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과 달천철장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따졌을 테지만, 아무튼 2003년에 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이곳의 철광석은 1906년부터 일본인이 소유권을 박탈해 해방될 때까지 일본 본토에 공급했다고 달천철장 유적지 알림판은 설명하고 있다. 어떤 일본인은 달천철장의 철광석을 수탈해 가고, 어떤 일본인은 달천철장을 보존해달라고 요청하고,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선 후기 판소리 사설을 통해서도 우리는 대장간 작업의 일단을 엿볼 수가 있다.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박타령>에 대장간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흥보는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보한테 쫓겨나 부랑생활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라도 먹고살기 위해 품팔이를 한다. 시골에서도 품을 팔고, 서울에서도 파는데 도무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흥보에게는 그래도 시골 품팔이가 할 만한 종류가 많다. 김매기, 풀베기, 장터 심부름하기, 가마메기, 등짐 지기, 기생 편지 전하기, 관아의 소식 급히 전하기, 담 쌓는 데 자갈 줍기, 모내기 철 품팔기 등이 있고, 여기에 대장간 풀무 불기도 들어가 있다. 흥보는 애를 쓴다고는 하지만 힘에 부쳐 버텨내지를 못한다.

서울로 와서는 술집 종노릇을 하다가 술 가마를 망쳐 놓고 뺨을 맞고 쫓겨나고, 급기야 매를 대신 맞아주는 매품까지 팔러 갔는데 차례가 밀려 매 맞는 일도 하지 못한 채 빈손이다. 일거리는 시골이 많다지만 힘에 부쳐서 흥보는 서울로 왔던 것인데 그마저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니, 결국에는 흥보 부인까지 나서건만 식구들은 늘 굶기 일쑤다.

대장간의 풀무 불기는 대장간 일 중에서 가장 단순한 노동이다. 메질을 하는 메질꾼이나 집게를 잡는 대장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씩 걸려야 터득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대장간 일은 기술력에 따른 분업 체계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는 풀무질에는 그때그때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했다는 점을 <박타령>은 알려 준다.

<박타령>은 흥보 같이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육체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양한 일거리를 통해 보여준다. 기술이라고는 없는 흥보가 할 수 있는 건 대장간 풀무 불기였지만 그마저도 흥보는 감당하지를 못한 거였다.

베르디 합창곡을 대표하는 명곡 <대장간의 합창>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 자료사진


<박타령>에 등장하는 서민들의 품팔이 일거리가 또 하나의 볼거리다. 흥보가 해 본 시골 일은 18가지이고, 서울 일은 2가지이다. 그 시골 일 가운데 대부분은 근력을 써야 하는 막일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상갓집 상여 행렬에 명정(銘旌) 들기와 부잣집 결혼식장에 기러기 들기, 관공서 숙직 대신 서기들이다.

요새 우리 사회에서도 결혼식장 하객 아르바이트나 장례식장 조문마저 대행해 주는 회사까지 생겼다고 하는데 <박타령>의 흥보나 놀보 시절에도 상가에서나 결혼식에서나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르바이트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관공서 숙직까지 대리하는 일도 있었다니 나랏일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만도 하다.

음악이 세계 공통의 언어인 이상 대장간 음악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있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서양의 대장간 음악은 오페라 <대장간의 합창>이다.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의 2막 1장이 <대장간의 합창>이다. 베르디 혼자서 다 한 것도 아닌데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1853년 로마 아폴로극장에서 초연했다.

오페라 <대장간의 합창>은 이름처럼 대장간에서의 노동이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시 여인이 핵심이지만 대장간의 모루가 나오고 쇠망치가 등장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하다. 원래는 '집시의 합창'다. 영어로 번역할 때는 집시를 넣지 않고 'Anvil Chorus'로 쓰는데, 직역하면 '모루의 합창'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루라고 하는 다소 낯선 말보다는 듣기 쉽고 의미 전달이 금방 되도록 대장간의 합창이라고 칭한 듯하다. <대장간의 합창>은 베르디 합창곡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꼽힌다. 그만큼 자주 연주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숙한 곡이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