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1 04:57최종 업데이트 23.04.11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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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이 지난 3월 29일 자 1면에 게재한 기사 "가디언 소유자가 설립자들이 노예제에 연관된 것을 사과하다" ⓒ 가디언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설립자와 노예무역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지난 2020년 <가디언>은 신문사의 역사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기로 약속했었다. 초점은 노예 노동, 자본, 그리고 언론이다.

16~19세기 대서양에 존재했던 노예무역은 1833년 영국이 노예제를 금지한 후 프랑스, 미국, 브라질 등에서도 차례대로 폐지되면서 19세기 말에 사라졌다. <가디언>이 알고 싶었던 것은 노예 소유 여부 같은 단순한 수준이 아니다. 노예 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이 신문사로 흘러 들어왔는가의 여부 그리고 신문사 사설에 끼친 영향을 알고 싶어했다.


<가디언>의 캐서린 바이너 편집국장은 '노예제 유산 보고서'를 받았을 때 "토할 것 같았다"고 직접 쓴 사설에서 밝혔다. 특정 자본과 밀착되었을 때, <가디언>이 그동안 자부심을 가졌던 두 가지 가치, 즉 개혁과 독립성이 흔들린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1821년 <맨체스터 가디언>으로 시작했다. 19세기 맨체스터는 산업 혁명의 중심지로 소위 '가진 자'들이 급진적 사상을 키웠던 곳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맨체스터 면방직 공장에서 노동자의 현실을 목도하고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저술했고 이후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운동가로 활동했다. 
  
<가디언>을 창간한 존 에드워드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면방직 사업가였지만 재산에 따라 선거권을 갖는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성인 남성 10% 정도만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동자 계층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819년 피털루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투표권 확대를 요구하며 맨체스터 시민 6만 명이 집결했으나 기병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15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테일러는 "시민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 개혁"을 지지한다며 <맨체스터 가디언>을 창간했다.   

창간 100주년인 1921년 당시 편집장 찰스 스콧은 <가디언>이 추구하는 목표에 언론의 독립성을 더한다. 영국의 주류 언론들이 1차 대전 대독일 프로파간다와 가짜 뉴스 유포에 참여한 후였다. 그는 사실 왜곡에 혐오감을 느끼며 인간 의식을 조정할 수 있는 언론의 힘을 고민했다. 그리고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며 신문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가 "독립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초대 편집장이 내세운 개혁, 100주년 당시 편집장이 내세운 독립성은 현재 <가디언>의 중심 가치다. 특히 대기업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영리 공익재단인 스콧 트러스트를 만들고 시민들의 구독료와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0년 의심되는 정황   

2020년 하반기 <가디언>은 수수께끼 하나를 접하게 된다. 2021년 5월 창간 200주년을 맞아 특집을 준비할 때였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과 21세기의 개혁을 다시 고민하는 과정에서 200년간의 종이 신문의 역사 그리고 <가디언>이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취했던 입장을 되돌아보았다.

지금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지식의 한계와 시대적 한계를 노출한 부분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문제가 노예제였다. <가디언>이 노예제를 반대했음에도 정작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수수께끼가 주어진 2020년, 노예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이 한창이었다. 영국에서는 그해 6월 청년들이 브리스틀의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을 무너뜨려 강으로 빠뜨렸고 옥스퍼드대에서는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동상 철거 운동이 벌어졌다.

21세기 인종 문제에 신문사 의견을 내기 위해서라도 <가디언>은 미궁의 역사를 좀 더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논의 끝에 2020년 11월 <가디언>은 자체 조사를 선언했다. <가디언>을 소유한  스콧 트러스트의  알렉스 그레이엄 대표는 설립자가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고 노예무역을 하지 않았지만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단체들은 각자의 역사를 이해하고 토론해야 한다. 특히 언론 기관은 개방성을 가지고 과거와 현재의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수를 직시하고 부끄러움을 가지고 미래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가 책임을 묻듯 우리도 책임을 지겠다. (…) 우리의 역사를 검토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한 과거의 불공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디언>은 노팅엄대학교와 헐대학교의 대영제국 경제사와 노예무역 전공자들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이들에게 200년간 <가디언>의 모든 기록물을 보관한 문서 보관소의 무제한 접근을 허가했다.
 

'스콧 트러스트의 노예제 유산 보고서'는 <가디언>과 헐대학교 노예제도와 해방에 관한 윌버포스연구소에 올려져 있다. ⓒ 헐대학교


지난 3월, 2년 6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가 '스콧 트러스트의 노예제 유산 보고서'로 공개되었다. 노예 폐지론자였던 <가디언> 설립자 존 에드워드 테일러는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업체는 자메이카와 미국 남부 등지에서 노예 노동을 사용해 면을 생산하던 회사와 파트너 관계에 있었다. 그가 사업가로서 쌓은 경제적 부에 노예 노동이 있었던 것이다.   

<가디언> 창간에 조력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창간 과정에서 테일러는 맨체스터 지역 사회 유력 인사 11명에게 자금을 받았다. 그중 9명이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노예 노동을 사용하던 회사와 거래하고 있었고 9명 중 한 명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 농장과 100여 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노예제와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가디언> 사설에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노예제 폐지 방식을 논의될 때, 노예가 아닌 노예 소유주들이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 남북전쟁 때는 남부를 지지했다. 현 편집장의 말처럼 "신문사가 맨체스터 면 산업 자본과 너무 가까웠"던 것이다.

회복적 정의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곳은 <가디언>만이 아니었다. 2020년 비슷한 시기에 자체 조사에 나섰던 또 한 곳이 영국 국교회다. 영국 국교회도 양면이 있었다. 노예제 폐지법령 통과 사흘 전에 사망했지만 하원에서 거의 50년간 노예제 폐지를 외쳤던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를 지지했던 교회는 국교회의 자랑거리다. 반면 노예무역에 연관된 개인과 개별 교회가 언급되어 논란이 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영국 국교회도 자유롭지 못했다. 18세기 영국 국교회가 수만 명의 노예를 "비인간적으로" 수송했던 회사에 수백억을 투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가 나온 지난 1월, 영국 국교회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교회가 노예 자본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수정할 행동을 취할 때"라며 향후 9년간 1억 파운드(1500억 원)를 인종 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 편집장 역시 "시대가 달랐다는 말이 노예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책임의 일환으로 10년간 1000만 파운드(150억 원)를 자메이카 등 과거 노예 노동이 있었던 지역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회복적 정의'라고 불렀다. 노예제의 경우 피해를 직접 보상할 대상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그 후유증인 인종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언론기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개선안도 발표했다. ▲ 자메이카, 카리브해, 아프리카 등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편집진을 최대 12명까지 늘리기 ▲ 영국 흑인 인구는 3%이나 언론인은 0.3%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해 흑인 언론인 육성하기 ▲ '면화 자본 특별 시리즈'를 준비해 전 세계 면화 산업과 노예무역의 구조적 관계를 대중에게 알리기다.

특히 '면화 자본 특별 시리즈'는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의 사과 후 반론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대표적인 것이 <스펙테이터>에  "<가디언>이 자해하는 모습을 보기가 난감하다"는 글을 쓴 조너선 섬프션이다.

그는 당시 <가디언> 초대 편집장이 기업가로서 노예 노동을 피할 수 있었는가를 되묻는다. 당시 세계 최대 면화 생산국은 미국으로 국제 무역 시장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면화가 노예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가디언> 논지의 전제, 즉 초대 편집장이 노예 노동에 기반한 국제무역 구조를 거부할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설립자에 대한 비판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윈저성 세인트 조지 채플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 찰스 3세 국왕과 카밀라 왕비 부부가 참석하고 있다. 지난 6일 버킹엄궁 대변인은 찰스 3세의 조상이 노예 무역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문서가 공개된 후 찰스 3세가 영국 왕실과 노예제도 연구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앞으로 진행될 뜨거운 논쟁과는 별도로 <가디언>은 지난 6일 최근 발견된 문서 하나를 공개하며 영국 왕실을 압박했다. 1689년 노예 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이 노예무역 회사의 지분을 가진 윌리엄 3세에게 돈을 보낸 문서였다. 그리고 <가디언>은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부터 1833년 노예제 폐지 당시의 국왕 윌리엄 6세까지 국왕들이 노예제를 지지했던 역사학계 연구 결과도 인용했다.

왕실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다음 날인 7일, 영국 왕실은 찰스 3세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왕실과 노예제 연구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찰스 3세는 2018년 가나와 2022년 르완다에서 일반적 수준의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노예를 직접적으로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영국 왕실이 노예제와 연관되어 있었을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다. 하지만 왕실의 개입 방식 그리고 노예제를 통해 쌓은 부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왕실과 노예제 연구는 3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디언>은 개혁 엘리트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다 건너 일어난 일이었지만 미국 BLM 운동이 가져다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서 사과하고 책임지고 왕실까지 대의에 참가하도록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신문사의 가치, 개혁과 독립성을 확고하게 다졌다. 이래저래 승자는 <가디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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