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1 04:58최종 업데이트 23.04.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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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6%가량 줄어든 것으로 발표된 7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샵 갤럭시 광고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보다 95.75%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를 기록한 것은 2009년 1분기(5천900억원) 이후 14년 만이다. 2023.4.7 ⓒ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 원으로 작년 1분기의 14조 1214억 원보다 95.75%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영업이익의 60~70% 가량을 차지하며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 부문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에 대규모 적자를 낸 여파라 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한편 한국 경제 무역수지는 13개월째 적자 행진에 작년 무역수지 적자 폭은 무려 425억 4200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칩과 과학법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하고 보조금을 받더라도 큰 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이런 조치가 사실상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더는 운영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한국이 안아야 할 위험과 부담은 더더욱 크다. 따라서 이 문제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기업들만 나서서 풀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국가 전략에 기초한 종합적이고 일관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와 외교에 대한 적신호가 이처럼 심각한데 보수 언론과 경제 언론의 반응은 한가롭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 때 나온 수치가 이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말을 이어붙여 '좌파 정책 망국론'을 만들어봤을 법한데 말이다. 현 정부 들어와 무역수지나 영업이익 악화 등의 부정적인 수치는 '업황 악화'나 '대외여건 악화'와 같은 말로 간단하게 정당화된다.

다중 위기의 시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세계 위기 보고서 2023>(Global Risks Report 2023)에 따르면 향후 2년간 전 세계가 심각한 민생고(cost-of-living crisis)를 겪을 것이라고 한다. 이 위기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에너지난과 식량난의 지속, 공급 위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 등으로 세계적으로 민생고에 불을 붙여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또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기지개는 탄소 배출을 늘리고 이 기후 위기 대응 실패로 이어져 장기적인 세계 위기를 야기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세계가 직면한 다층위와 다양한 영역의 위기가 상호연결되고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관계에서 나온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다중위기(Polycrisis)"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다중위기는 "복합 영향력(compounding effects)을 가진 세계 위기"이며 복합 영향력은 "각기 영역에서의 위기 영향력의 총합보다 크다." 세계경제포럼은 "현재와 미래의 위기들이 상호작용하여 '다중위기'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중위기는 현재 세계와 한국이 직면한 여러 전환과 위기, 이 위기들이 상호연결되어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지금의 시대는 세계질서의 대전환으로 인한 다중위기로 규정될 수 있다. 국제 질서는 신냉전 및 블록화로 재편되고 있고, 2대 전환으로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세계 곳곳에서 지적되는 공통적인 위기로는 인구 위기·경제불평등 위기·기후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정치의 역할을 중시하는 필자의 관점에서 하나 더 위기를 덧붙이자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력한 '제도 위기'가 추가되어 4대 위기가 될 것이다.

즉, 다중위기란 세계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전환(에너지와 디지털)과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안보와 경제를 포함한 세계 질서의 대전환(신냉전과 블록화)이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과 연결되어 인구·경제불평등·제도 등 위기와 긴밀히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다중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가와 지역, 세계는 전략을 수립하고 협력과 상생의 길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5년 주기로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해 온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 역시 앞다퉈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와 긴박한 경쟁 그리고 다중위기 시대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세계사적 전환과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환 시기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가전략은 차치하고 윤석열 정부가 세계질서 변화와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이다. 주 69시간 근무제 개편 발표로 혼란을 자초하고 민심을 이반시키더니, 3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은 이미 수년간 언론에 수 차례 나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69시간"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급하게 수를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인 3월 16~17일에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굴욕 외교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의 전략 부재에 대한 의심은 지난주 이슈가 되었던 4대강 보 문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보수 언론과 경제 언론의 정치적 공세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보를 모두 허문 정책을 고수한 결과 호남을 비롯한 남부 지방에 심각한 가뭄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주중 며칠 동안이나 해당 이슈를 1면에 다뤘다.

가뭄은 농가에 큰 피해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며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가뭄의 원인을 4대강보에 있다며 문재인 정부 공격에만 공을 들인다. 대일 굴종 외교로 지지율이 급락한 시점에 문재인 정부 공격을 하니 국면 전환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난 2월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위스콘신주 디포레스트 소재 북미 노동자연맹(LIUNA) 훈련센터에서 경제 상황과 관련한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입법으로 창출된 제조업 일자리 등에 관해 언급했다. ⓒ 연합뉴스

 
더 심각한 전략 부재는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인 반도체 문제에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칩과 과학법과 같은 당면한 실무 협상에조차 무관심해 보인다. '자유주의 진영의 연대'를 말하며 '가치 외교'를 선언해서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반대 급부로 미국에서라도 충분한 경제적 유인을 얻어내는 협상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무역수지 악화와 삼성전자의 영업 이익 악화가 순전히 대외 여건 탓인지 아니면 정부의 '과격한 수사'에 대한 중국 측의 '조용한 대응'(한국에 불리한 방식으로의 디커플링 가속화)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있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확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 정부는 경제 분야에서 최선은커녕 적정 수준의 노력이나 협상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반도체칩과 과학법 보조금을 빌미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사실상의 기밀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심지어 '개별 기업이 알아서 협상할 일'이란 태도로 방관하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선 반도체 산업과 배터리 산업에서 한국 산업의 위상을 토대로 협상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 부분 있을 텐데도 한국 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마부바니의 10가지 질문

앞서 말했듯 국제질서가 신냉전과 블록화의 추세로 흘러가는 이유는 전적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안보, 경제, 문화, 사상, 기술 등 전면적인 경쟁이며 경쟁 과정과 결과는 국제 질서와 세계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2대 전환과 4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중 패권 경쟁과 이로 인한 신냉전과 블록화에 대한 이해와 대응 전략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 미·중 패권 경쟁의 성격과 향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세계적인 외교전략 전문가인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장의 <전략적 질문 10개>(The Big Ten)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마부바니는 그의 최근 저서 <중국이 승리했나?>(Has China Won?)에서 다음과 같이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한 전략적 질문 10개를 던진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 pixabay

 

1.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세계 경제 패권 국가의 지위 유지가 가능할까? 만약 30년 안에 미국의 GDP가 중국보다 작아진다면, 세계 경제 패권을 상실한 미국의 정책 변화는 무엇일까?

2.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3억 3천만 미국 국민의 삶의 개선인가 아니면 세계 패권인가? 이 둘이 충돌할 경우 우선 순위는 어떻게 되나?

3. 미국은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계속해야 할까? 국방비 지출과 해외 전쟁 개입 대신 미국 내부의 인프라 재건과 사회 서비스 개선에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미국의 국방비 확대를 원할까 아니면 축소를 원할까?

4. 미국 우선주의 모습을 한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5. 미국이 우방과 경쟁 국가에 대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군사력이 아니라 달러가 아닐까?

6. 미국의 일방주의가 소프트파워를 훼손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7. 미·중 경쟁은 '열린 자유 사회 vs 닫힌 권위주의 체제'의 투쟁으로 표현되는데, 세계의 모든 열린 자유 사회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까?

8. 미국은 중국 문제에 대해 감정적일까 아니면 이성적일까?

9. 미국은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무엇으로 볼까? 중국 공산당을 '중국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보는 게 옳을까 아니면 '중국 문명'을 중심으로 보는 게 옳을까?

10. 미국은 최근 중국의 두 장기 전략 저지에 실패했다. 하나는 오바마 정부 당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한 동맹국들의 참여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정부 당시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맹국들의 참여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장기 전략을 상대할 인내심이나 체력이 있을까?

한국 정부는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가? 한국 정부는 대전환기에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국민들과 합의하는 과정을 가질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 이익 중심의 국가 전략 세워야

마부바니가 <중국이 승리했나?>(Has China Won?)에서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방을 잘 보고 예측·대비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가 동아시아에 걸려있다는 점이다.

즉, 누가 동아시아와 경제적 협력 관계를 잘 구축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실제로 2022년 1월에 중국 주도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 발효되자, 이에 맞서듯 미국이 주도해서 2022년 6월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을 출범시켰다.

마부바니가 세계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명쾌하다.

"총(군사력)을 선택할 것인가, 돈(경제적 협력)을 선택할 것인가?"

마부바니는 이 질문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의 대외 전략과 그 결과를 분석한 결과 미국이 중동에서 불필요한 전쟁에 6조 달러를 낭비하는 사이에 중국은 아세안과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와 경제 협력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실례로 2000년에 미국은 중국보다 경제 규모가 8배 컸으며, 미국과 아세안의 무역이 1340억 달러인 반면 중국은 41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역전해서 중국 6410억 달러인 반면 미국은 3000억 달러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 차이는 불과 1.6배로 좁혀졌다. 뒤집어 말하면 그간 미국이 제3세계에 경제적 협력과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 중국에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는 사이에 대미 관계보다 대중 관계가 더 활발해지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에 따르면 2002~2019년 사이 남미·카리브해 지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180억 달러에서 3150억 달러로 확대했으며, 2021년엔 448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미국과 남미 무역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미국과 남미 무역의 71%가 집중하고 있는 멕시코를 제외하면 남미 지역의 대중국 무역은 730억 달러로 미국을 앞선다.

특히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과 중국의 무역 성장은 매우 놀랍다. 2000년 브라질의 중국 수출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4일마다 10억 달러 상당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이런 성장은 시진핑 주석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어났다.

아프리카도 중국과 관계가 계속 깊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개발경제학자 안제체 웨레(Anzetse Were)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매년 25%씩 증가했고, 2017~2020년 중국 투자는 다른 나라의 투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아프리카로 유입된 자본의 20%를 차지했다.

그리고 서방의 비난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 전체 인력의 70~95%를 아프리카인으로 고용했다. 반면 미국의 외국직접투자는 중국의 절반에 불과하며 미국과 서방의 개발 원조 대부분은 자국의 컨설턴트와 기업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언론인 하워드 프렌치(Howard French)의 지적처럼 미국은 개발원조에 대해 "점점 더 인색하고 경멸적"인데 반해, 중국은 "세계 공공재에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가운데),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왼쪽),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오른쪽)이 6일 베이징에서 함께 손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동은 지난달 10일 사우디와 이란이 단교 7년 만에 외교 정상화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3.04.06. ⓒ 신화=연합뉴스

 
중동에서도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28일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상하이협력기구(SCO)에 '대화 파트너'로 참가하기로 정식 결정하는 한편 중국 중재 아래 이란과 국교 정상화에 나섰다. 이날 아랍에미리트는 액화천연가스(LNG) 6만 5천t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에 판매하면서 위안화로 결제해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와 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개발도상국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는 최근 미·중 관계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다자주의에 입각한 자유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

즉, 한쪽에 줄 서는 편승 전략보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초월 외교전략과 경제협력을 통한 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군사적 대결과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거리를 두고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 전략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가 현상적으로 미국-중국·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와 경제협력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마부바니는 또 다른 최근 저서 <아시아의 시대인 21세기>(The Asian 21st Century)에서 19~20세기가 미국과 서구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특히 동아시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역내 인구가 7억 명에 가까운 아세안이 얼마나 빨리 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역 역시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세안에 걸친 동아시아 지역이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 인구에 아세안 인구를 합치면 약 35억 명의 거대한 시장이다. 여기에 '글로벌 사우스'까지 확대하면 사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 인구와 시장을 아우르게 된다. 중국은 물론 인도와 아세안 지역을 발판으로 삼으면 글로벌 사우스까지 진출하기가 매우 용이할 것이다.

미·중 균형 외교와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한국이 강조해야 할 원칙과 길은 경제 협력과 자유 무역이다. 블록화나 보호주의 대신 세계적 차원의 가치 사슬과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세계 여론을 조성하고 주도하기 위해 외교력을 모아야 하며, 이 과정은 한국의 경제적 규모에 걸맞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 협력과 자유 무역의 원칙을 들고 한국은 아세안과 글로벌 사우스와 적극적인 경제 협력과 무역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기술 협력과 경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협력은 역내에 대결적 군사 정책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본과의 차별화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며 세계와 경제 협력에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국가 전략 제시하는 정부를 기대한다

한국의 국가 전략의 시작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계승·발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용이할 것이다. 신남방 정책은 인도와 아세안 등 신남방 국가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전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공동 번영과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아세안 국가들의 호응 역시 높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만든 공든 탑을 내팽개치고 있다. 그 결과는 한국 경제의 위상 하락을 넘어 국민 삶의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며 종국에는 윤석열 정권의 안정적 토대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군사안보동맹 강화 일변도로 나아가 한반도와 주변의 높아지는 긴장 국면에 우리 스스로 기름을 안고 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지금이야말로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공동 번영과 평화 전략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펼칠 때이다.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안녕과 이익을 지켜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정확한 전략과 적극적이고 단합된 힘에 있다. 그 출발은 국가 전략에 있으며, 국가 전략 수립을 위해 당파를 뛰어넘어 힘을 쏟을 때이다. 정부의 실수나 좌충우돌은 더는 안 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사실이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꾼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고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하겠는가?"

* 필자 소개: 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사)돌바내 이사이며, 2021년에 포스트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어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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