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3 11:05최종 업데이트 23.04.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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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액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이 2019년 70대의 노익장을 과시한 <람보 : 라스트 워>에도 아주 그럴듯한 대장간이 화면에 잡힌다. 람보가 지은 지하벙커의 특징 중 하나는 큼지막한 대장간이다. 람보는 1980년대 시리즈가 시작할 때부터 칼 같은 무기를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드는 체질이지만 이번에는 자기 집에 대장간을 통째로 들여놓았다. ⓒ 자료사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중에도 대장장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대장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타나기도 하고, 대장장이임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칼 같은 무기를 순식간에 만드는 장면도 있다. 영화감독들은 주인공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 줄 아는 대장장이를 활용하고 있다.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와 베니시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가 주연한 <헌티드(The Hunted)>는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추격 액션 영화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몇 가지 장치를 설정해 심각한 토론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특히 성경 속에도 대장장이가 있고, 성경의 구절마다 대장간의 필수 요소인 풀무가 엄청나게 많이 언급된다는 점을 찾아내도록 한다. 성경 속의 대장장이, 이는 <헌티드>가 주는 특별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이 감독을 맡은 <헌티드>는 2003년 제작한 미국의 액션 영화이다. 특수부대 최정예 요원 애론 할램(베니시오 델 토로)은 1999년 코소보 전장에 침투, 민간인 학살 부대의 리더를 처치한 대가로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다. 

그는 학살 현장의 참상을 목격한 트라우마로 인해 사슴 사냥꾼들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살인자로 변하게 된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그를 살인 병기로 키워낸 훈련 교관 L.T. 본햄(토미 리 존스)이다. 애론 할램은 라이터나 성냥이 없이도 나무 막대기 마찰로 불을 피우고 날카로운 칼을 뚝딱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 능력자다. 그 기술을 가르친 것도 본햄.

<헌티드>에 등장한 능력자 대장장이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와 베니시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가 주연한 <헌티드(The Hunted)>는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추격 액션 영화다. 성경 속의 대장장이, 이는 <헌티드>가 주는 특별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자료사진


애론 할램은 사냥꾼 살해 뒤 FBI에 붙잡혔을 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그는 수사진을 향해 "올해 닭 60억 마리가 도살되었다는 걸 아느냐"고 되물었다.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고점인데, 인간 위에 다른 어떤 종이 생겨서, 인간이 닭을 도살하듯이 그 종이 인간을 도륙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진다. 코소보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인간의 닭 도살을 연결해 생각하는 병적 사고에 빠져든 거다.

이 영화는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성경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시작과 끝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내용의 내레이션을 깔기도 했으며, 애론 할램의 나무 둥치 속 은신처에서 찾아낸 창세기 구절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짊어지게 하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겼다. 그런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아브라함 시험 장면 중 하나인 창세기 22장 6절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들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준비한 칼을 어떻게 얻었을까. 태초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창세기, 여기에도 대장장이는 있다. 창세기 4장 22절은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대장장이였다'고 말한다. 

두발가인(가톨릭에서는 투발카인)은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의 자식인 가인의 후손이다. 두발가인의 대장장이 기술이 이어지고 이어져 아브라함은 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불과 칼을 챙기는 창세기 22장보다 앞서는 창세기 4장에서 대장장이가 먼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경에는 또 대장간의 필수 장비인 풀무가 여러차례 등장한다. 국내 기독교박물관 같은 곳에서 이스라엘의 옛 풀무와 우리나라의 전통 손풀무를 함께 전시할 정도로 기독교계에서는 대장간의 풀무를 중요시한다. 

다시 영화 <헌티드> 속으로 들어가면, 애론 할램과 본햄의 마지막 결투를 앞두고 도망치던 애론 할램이 폐공장에서 판스프링을 떼어내 원시적인 방식으로 불을 피워 칼을 만들고, 추격자 본햄은 돌칼을 만든다. 돌칼과 쇠칼의 대결 설정도 흥미롭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젊은 대장장이 '윌 터너'
 

흥행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가 제작을 맡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에도 대장장이가 등장한다. 해적 선장 잭 스패로 역의 조니 뎁(Johnny Depp)과 호흡을 맞춰 주연 같은 조연을 펼친 올랜도 블룸(Orlando bloom)이 젊은 대장장이 윌 터너 역할을 소화했다. ⓒ 자료사진

 
흥행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가 제작을 맡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에도 대장장이가 등장한다. 해적 선장 잭 스패로 역의 조니 뎁(Johnny Depp)과 호흡을 맞춰 주연 같은 조연을 펼친 올랜도 블룸(Orlando bloom)이 젊은 대장장이 윌 터너 역할을 소화했다.

원래가 해적의 아들인 윌 터너는 어렸을 적 바다에서 난파선에 탔다가 구조된 이후 대장장이로 성장한다. 그는 군인이나 해적들이 쓰는 전투용 검을 특별히 잘 만든다. 대장장이 신분이지만 명문가의 딸을 흠모하게도 된다. 잭 스패로와 또 다른 해적 선장 바보사 사이의 갈등 상황에 얽혀들게 되지만 난관을 스스로 헤쳐나가면서 사랑까지도 쟁취한다.

이 영화는 윌 터너가 일하는 대장간의 내부 모습인 커다란 모루나 화덕, 수많은 망치도 자세히 묘사했다. 잭 스패로 역시 해적이면서도 군인들에게 붙잡혔을 신분을 속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스미스(smith)'라고 거짓으로 둘러대는데, 이 스미스가 바로 대장장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렇듯 <캐리비언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는 '해적'이라는 소재 이외에 '대장장이'라는 직업에도 앵글의 상당 부분을 맞추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는 해적 잭 스패로와 대장장이 윌 터너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메시지가 있다. 해적 선장 바보사는 코르테의 보물을 훔친 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고, 음식은 입속에서 재가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여인도 가슴을 채울 수 없다고 바보사 선장은 고백한다. 남의 재물을 강탈하면서 살아온 해적 바보사는 어울리지 않게도 "한때 탐욕으로 채워졌던 우리는 이제 탐욕으로 소멸되고 있다"는 생각 깊은 얘기까지 털어놓는다.

바보사 선장은 또한 저주가 풀리면 먹기 위해 사과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잭 스패로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그 사과를 떨구게 된다. 탐욕은 탐욕으로 소멸한다는 바보사의 고백과 그렇게도 갈망하던 사과 한 조각 베어 먹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그의 최후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나도 탐욕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은가', '먹지도 못할 사과를 너무 꼭 쥐고 있지는 않은가'.

대장장이로 시작해 대장장이로 끝난 <킹덤 오브 헤븐>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메가폰을 잡은 <킹덤 오브 헤븐>은 대장장이로 시작해 대장장이로 끝나는 영화다. ⓒ 자료사진

 
거장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메가폰을 잡은 <킹덤 오브 헤븐>은 대장장이로 시작해 대장장이로 끝나는 영화이다. 전쟁의 광기와 이에 맞서 백성들을 살리는 대장장이 출신 기사(騎士)의 활약상을 다루었다. 그 주인공 역할을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에서 대장장이였던 올랜도 블룸이 맡았다.

이 영화의 배경은 12세기 유럽과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을 두고서 벌이는 십자군과 이슬람군 사이의 끊임없는 전쟁을 다뤘다. 상영 시간은 140분이 넘지만, 긴장감 넘치는 전투 장면과 유명 배우들의 열연이 시간을 빨리 가도록 한다.

부인과 사별해 혼자가 된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예루살렘에 속한 이벨린 땅의 영주 고프리(리암 니슨, Liam Neeson)가 난데없는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기사의 반열에 오른다. 그 고프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발리안은 영주 자리까지 물려받는다.

물이 부족한 이벨린 땅에 우물을 깊이 파서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발리안은 뜻하지 않게도 대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자신이 속한 십자군이나 상대 진영인 이슬람군 양쪽에 도사리고 있는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 때문이다.

십자군 내의 전쟁 유발자들은 제대로 된 전략이나 전술도 없이 이슬람 대군과 맞붙어 전멸하고 만다. 이제는 죄 없는 예루살렘의 수많은 백성마저 위기에 처하자 발리안이 나선다.

발리안은 밖에서 전멸한 군인들을 보충하기 위해 싸움 가능한 천민들을 기용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천민들에게도 기사 작위를 부여하여 전투 동력을 확보한 거다. 이러한 면천(免賤) 방식의 군인 채용은 임진왜란을 비롯한 예전의 우리나라 전쟁에서도 있었다.

발리안은 그렇게 모은 병사들을 동원하여 과학적 거리 측정 방법과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전술로 엄청난 피해 속에서도 예루살렘을 방어해 나간다. 피차간에 소모전이 계속되자 양측은 평화협상을 맺는다. 십자군 쪽에서 예루살렘 성을 비워주는 대신 백성들이 안전하게 성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 백성들은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리들리 스콧은 발리안의 직업을 대장장이로 삼았을까. 척박한 땅에 물이 흐르게 하고, 누가 보아도 열세인 수성전에서 온갖 전술을 발휘해 약점을 보완할 줄 아는 주인공에게 가장 걸맞은 직업은 창의성이 핵심이어야 하는 대장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성을 내주고 예루살렘 백성들을 지켜낸 발리안은 폐허가 된 예전의 대장간으로 돌아와 터를 잡는다. 새로운 십자군이 다시 예루살렘 성을 빼앗기 위해 출정하면서 참전을 부추기지만 발리안은 '나는 대장장이'일 뿐이라면서 거듭 뿌리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한다.

<람보> 시골집 지하 대규모 지하벙커가 대장간
 

왕년의 액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이 2019년 70대의 노익장을 과시한 <람보 : 라스트 워>에도 아주 그럴듯한 대장간이 화면에 잡힌다. 시골집의 너른 뜰 지하에 대규모 벙커를 만들어 놓았다. 람보가 지은 지하벙커의 특징 중 하나는 큼지막한 대장간이다. ⓒ 자료사진


왕년의 액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이 2019년 70대의 노익장을 과시한 <람보 : 라스트 워>에도 아주 그럴듯한 대장간이 화면에 잡힌다. 옛날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람보는 조용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시골의 삶을 택했다. 그렇지만 시골집의 너른 뜰 지하에 대규모 벙커를 만들어 놓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전사의 기질까지 아예 버린 건 아니다.

람보가 지은 지하벙커의 특징 중 하나는 큼지막한 대장간이다. 람보는 1980년대 시리즈가 시작할 때부터 칼 같은 무기를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드는 체질이지만 이번에는 자기 집에 대장간을 통째로 들여놓았다. 화로도 원통형으로 큼직하고 모루도 커다랗다. 망치며 각종 연장과 거기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칼들이 벙커 벽면에 나란히 걸려 있다. 대장간이 딸린 지하벙커는 람보가 갱단을 물리치는 결정적 장치가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대장장이가 비중이 큰 역할로 다뤄진 적이 있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년 가까이 방영된 <주몽>에서 탤런트 이계인이 열연한 모팔모가 새로운 철제 무기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이다.

대장장이 모팔모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이계인은 2006년 11월 한강유람선에서 생애 첫 팬미팅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계인은 또 '모팔모의 강철검 제작 강의'도 진행할 정도였다. 드라마 <주몽>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대장장이가 뜨자 당시 산업자원부는 이계인 씨를 '부품·소재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공로패를 주기도 했다. 

산업자원부는 2006년 11월 28일 자로 낸 보도자료에서 "소재 원천기술의 보유 여부가 고대국가의 흥망을 결정하였듯이, 오늘날 국가와 산업의 경쟁력 또한 소재 원천기술의 보유 여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부품·소재와 원천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하고 부품·소재 산업 종사자들의 사기와 자부심을 진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장장이 모팔모 역의 이계인 씨 홍보대사 위촉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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