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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강남 개발을 통해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반포동 일대는 당시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조성된 지역이다. 동네의 한가운데를 반포천이 가로질러 흘러가며 한강 물줄기와 합류하고 도시계획을 통해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있다.

반포3동 바로 옆의 한남IC가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이 되므로 서초IC와 양재IC를 거쳐 부산까지 한달음에 내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반포동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반포천을 따라 벚꽃과 조팝나무가 흰눈처럼 피어나는 산책길이 근사하다.

이번 산책루트는 동작역과 고속터미널역을 연계하여 반포한강공원을 따라 서래섬 유채밭을 거쳐 회귀하는 코스다. 천변을 따라 나 있는 소로길은 봄철이면 벚꽃 터널이 펼쳐지고 한여름에는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숲길로 변신하며 가을이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걷기 좋은 길이다. 간략히 지도를 첨부하면 다음과 같다.
 
동작역에서 시작하는 허밍웨이길을 거쳐 고속터미널역까지 이어지는 벚꽃길.
▲ 반포천 산책길. 동작역에서 시작하는 허밍웨이길을 거쳐 고속터미널역까지 이어지는 벚꽃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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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약동하는 계절, 산책의 시작은 4호선 동작역 1번 출구 또는 7호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로 나와 반포천을 따라 진행한다. 글쓴이는 전자를 선택해서 걸어봤다. 500여 미터에 달하는 산책로에는 물 오른 봄꽃이 한껏 모양을 뽐내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이 산책길에 '허밍웨이'란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헤밍웨이라고? 도대체 미국의 소설가와 반포동이 무슨 연관이 있나 했더니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허밍(humming)길이란다.
 
동작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걷기 좋은 산책길.
▲ 허밍웨이길 벚나무. 동작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걷기 좋은 산책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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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도시답게 길가를 따라 여러 나무를 심어 놓아 조금 걷다보면 수종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 벚나무, 메타세콰이어, 조팝나무, 아카시아 등등. 나무들 사이로 작은 벤치가 있고 울타리를 오선지 형태로 꾸미고 음표를 장식해 놓았다. 허밍이란 이름이 잘 어울린다.

폐포 속 가득히 꽃내음을 맡다보면 이수역 교차로가 나오고 길을 건너면 피천득 산책로의 시작이다. 반포천 둑방길을 따라 벚꽃 터널이 이어진다. 천변을 따라서 조팝나무의 흰 물결이 빛살처럼 퍼져나가며 개나리의 노란 물결을 덧입히고 철쭉의 분홍색이 어우러져 걷기 좋은 꽃길이 계속된다.
 
유림의 마지막 지도자로 독입운동에 헌신함.
▲ 심산 김창숙 기념관. 유림의 마지막 지도자로 독입운동에 헌신함.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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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 있는 반포2교를 건너면 심산 김창숙기념관이 있으니 빼놓지 말고 들렀다가자. 주민을 위한 문화센터로서 독서실과 전시관, 북카페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족을 위해 헌신한 유림의 마지막 인물

심산은 마지막 유림의 지도자였으며 민족주의자로서 일생을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영남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창숙은 1905년 을사늑약을 찬성하고 승인한 을사5적(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옥고를 치른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자 크게 낙담하여 한동안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다. 현실에 좌절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간곡한 타이름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김창숙은 만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으로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다.
  
반포천을 따라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사이로 벚꽃잎이 눈처럼 내리고 있다.
▲ 피천득 산책길. 반포천을 따라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사이로 벚꽃잎이 눈처럼 내리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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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초입의 벚나무 군락지.
▲ 반포천 벚꽃 터널.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초입의 벚나무 군락지.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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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의열단의 고문으로서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를 이끌어내지만 일본인 밀정에 의해 상하이에서 체포된다. 국내로 압송되어 14년 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며 이때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가족들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꺾이지 않았던 그의 의지는 아들 김찬기를 임시정부에 파견하는 등의 잠행을 이어가다가 또 다시 체포되어 수감생활 중 해방을 맞이한다. 광복 후 혼란한 시절, 이승만이 미군정과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1948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유당 독재시대가 펼쳐지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당시 민족자결주의자의 입장에서 이승만에게 하야 경고문을 보냈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명단에 유림이 빠진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며 전 재산을 내놓고 성균관대를 세웠음은 본 연재 29화(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성균관에서 단풍 시작입니다)에서 살펴봤다.

1953년에 성균관대 초대 총장에 취임했지만 이승만 정권에 기생하던 친일파의 강압으로 강제 사임 당하고 일체의 공직에서 추방 당한다. 유학자이자 선비로서 심산은 정치적 술수를 몰랐다. 
 
▲ 천변 벚꽃길에서 이만한 풍경 없습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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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민족을 위해 활동한 의인이었을 따름이다. 불구의 몸으로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상태로 친지의 집이나 여관, 병원을 전전하며 한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1961년 5.16군사정변 후 이듬해 별세한다.

흰눈처럼 내린 조팝나무와 벛꽃 터널

기념관부터 반포천을 따라 피천득 산책로가 이어진다. 반포동에서 오랫동안 수필가로 활약했던 금아 피천득을 기리기 위해 지자체에서 만든 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국어 교과서에서 <인연>을 읽어봤을 테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문학 작품을 테마로 하여 아기자기하게 길을 꾸며놨다.

능수버들 늘어진 가지 사이로 개나리가 노랗게 피고 벚꽃이 바람에 휘날린다. 산책로 중간쯤에 도달하면 반포천2교에서 바라보는 조팝나무 군락이 마치 흰눈처럼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백설기 같은 하얀 꽃잎이 탐스럽게 부풀어 올라 '조로 지어만든 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반포천2교에서 바라본 조팝나무 군락.
▲ 흰눈꽃송이를 닮은 조팝나무. 반포천2교에서 바라본 조팝나무 군락.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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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고속터미널역까지 약 500미터 직선 구간에는 천변을 따라 가지를 내린 나무 사이로 화사한 빛살이 들이쳐 걷는 맛을 배가 시켜준다. 바닥에 깔린 꽃눈을 즈려밟으며 콧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느새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하고 좌회전하여 15분쯤 진행하면 반포한강공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지하차도가 나온다.

강변을 따라 한강 물줄기를 감상하며 조금 걷다보면 서래섬으로 갈 수 있다. 오뉴월이면 노랑색 유채꽃이 섬을 가득 메운다. 철마다 지자체에서 각종 관상용 꽃을 식재하여 산책객을 유혹하므로 때를 맞춰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태그:#반포천, #심산 김창숙, #피천득 산책길, #허밍웨이길,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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