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큰 위기에 빠져 있다.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의 부진을 씻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메이저리거까지 불러 들였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도 아닌 호주에게 패해 조기 탈락했다. 모 구단 단장은 지난 3월 29일 소속선수 FA 이적 당시 뒷돈을 요구했다는 녹취록이 나오면서 경질됐다. 급기야 3월 31일 오전에는 한국야구위원회 간부가 배임수재혐의에 연루되면서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악재들 속에도 KBO리그는 1일 많은 관중들의 함성 속에 정상적으로 개막했다. 실제로 KBO리그는 지난 1982년 출범 후 41년 동안 단 한 번도 야구팬을 찾아오지 않았던 적이 없는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다. 심지어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정상 진행이 힘들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KBO리그는 한 달 늦게 시즌을 시작해 무관중으로나마 시즌을 완주했다(가을야구에서는 소수관중 입장).

현재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단연 미식축구 'NFL'이지만 140년(내셔널리그 기준)이 넘는 긴 역사는 단연 야구가 으뜸이다. 야구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닌 하교 또는 퇴근 후에 즐기는 하나의 생활로 굳어졌고 긴 세월 동안 많은 사연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지난 2005년에 개봉한 드류 배리모어와 지미 펄론 주연의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메이저리그에서 80년 넘게 이어졌던 저주를 소재로 만들어진 로맨틱코미디 영화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내용처럼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4년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내용처럼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4년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영화의 배경이 된 '밤비노의 저주'

KBO리그에서 노히트노런(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완봉승)은 2000년 송진우를 끝으로 외국인 투수의 전유물이 됐다. 실제로 최근 22년 간 총 4번의 노히트노런이 나왔는데 모두 외국인 투수가 만든 기록이었다. 하지만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외국인 투수들은 모두 그 해를 끝으로 재계약이 불발되거나 시즌 중 방출됐던 징크스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야구 팬들은 이를 '노히트노런의 저주'라고 부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KBO리그보다 훨씬 많은 저주와 징크스가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 소개됐고 2004년 저주가 풀리기 전까지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저주는 단연 '밤비노의 저주'였다. '밤비노'란 아기예수의 그림을 뜻하는 단어로 야구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인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아이콘이었던 베이브 루스의 별명이다.

1914년 보스턴에 입단한 베이브 루스는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 이전에 투타를 겸했던 '원조 이도류 스타'로 1915년과 1916년, 1918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멤버로 활약했다(보스턴 시절에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 동안 65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투수로도 매우 유명했다). 하지만 보스턴의 구단주는 1912년 새 야구장을 건설하면서 융자 받았던 돈을 갚기 위해 1919년12월 간판스타 베이브 루스를 지역 라이벌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했다.

베이브 루스가 가세하기 전까진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아메리칸리그 우승조차 해보지 못했던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의 활약에 힘입어 순식간에 강 팀으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베이브 루스는 양키스 이적 후 15년 동안 10번의 홈런왕을 차지하면서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베이브 루스의 입단을 계기로 강팀으로 도약한 양키스는 오늘날 월드시리즈 27회 우승에 빛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문제는 팀 내 최고의 스타였던 베이브 루스를 보냈던 보스턴이었다. 1901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1918년까지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보스턴은 베이브 루스가 팀을 떠난 후 무려 85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추가하지 못했다.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야구와 보스턴이 인생의 전부였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는 2003년 가을부터 '밤비노의 저주'가 깨지는 2004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인 남자의 사랑이야기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벤은 여자친구가 파울볼에 맞아 기절해도 늦게 눈치 챌 정도로 야구에 미쳐 사는 남자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벤은 여자친구가 파울볼에 맞아 기절해도 늦게 눈치 챌 정도로 야구에 미쳐 사는 남자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1997년에 개봉한 콜린 퍼스 주연의 영국 영화 <피버 피치>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아스날 FC의 광팬이었던 원작의 주인공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면서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으로 각색됐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1년에 162경기를 하고 열성팬인 주인공은 홈에서 열리는 81경기를 모두 직관한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더욱 다양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벤(지미 펄론 분)은 어린 시절 삼촌 손에 이끌려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 방문한 후 레드삭스의 열성팬이 됐다. 그렇게 야구만이 인생의 즐거움이었던 벤은 체험학습에서 만난 미모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린지(드류 베리모어 분)에게 첫 눈에 반한다. 린지 역시 벤의 순수함에 호감을 가졌고 두 사람은 빠르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보스턴이 가을야구에서 양키스에게 패하며 또 한 번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던 2003년 가을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던 2004년 2월, 린지는 아빠의 생일과 언니의 결혼 기념일이 겹치는 부활절 연휴에 벤에게 자신의 고향집에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벤에게는 린지의 집을 방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선약'이 있었다. 바로 벤의 연례행사였던 레드삭스의 스프링 캠프 참관이었다. 그리고 린지는 홀로 방문한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다가 스프링캠프 현장에서 "레드삭스가 숨쉬기보다 중요하다"고 소리치는 벤을 발견한다.

2004 시즌이 시작되면서 벤과 린지는 점점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벤은 신성한 야구장에 노트북을 가져와 일을 하는 린지를 이해할 수 없고 린지 역시 파울볼에 맞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공을 주운 관중과 하이파이브 하는 벤을 이해하지 못한다(사실 야구장에서 강습 파울 타구에 맞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린지는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결국 벤과 린지는 쌓였던 앙금이 폭발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린지와 헤어진 벤은 이별의 후유증 때문에 폐인이 되고 삼촌이 물려준 레드삭스의 시즌권(전 경기를 볼 수 있는 티켓)마저 팔려고 한다. 하지만 린지는 78만원 짜리 암표를 구입해 야구장에 들어간 후 벤에게 "시즌권을 팔지마, 이걸 말릴 만큼 당신을 사랑해"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던 해, 레드삭스는 거짓말처럼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

야구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기억하나요?
 
 벤 역의 지미 펄론은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이후 배우활동보다 본업에 더 충실했다.

벤 역의 지미 펄론은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이후 배우활동보다 본업에 더 충실했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드류 배리모어는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출연 전부터 이미 <웨딩 싱어>와 <미녀삼총사> <첫 키스만 50번째> 등에 출연했던 스타배우였지만 벤 역의 지미 펄론은 배우보다는 코미디언과 MC로 더욱 유명했던 인물이다. 펄론은 <날 미치게 하는 남자>를 통해 코미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향후 배우 활동보다는 애니메이션 성우와 토크쇼 진행 등 코미디언으로서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는 7살 짜리 벤이 삼촌을 따라 처음 야구장을 방문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가 바로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담당한 스펀지 판매상 알 워터맨(잭 켈러 분)이었다. 욕설을 섞으며 과격하게 경기에 집중했던 삼촌과 달리 알 아저씨는 친절하게 벤에게 야구상식을 가르쳐 줬다. 특히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의 명물 '그린 몬스터(11m 높이의 펜스)'를 설명하며 어린 벤을 레드삭스의 팬이 되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벤이 성인이 된 것처럼 알 역시 투석을 받는 노인이 됐지만 여전히 야구장에서 일하며 벤의 여자친구 린지에게 스펀지를 선물하는 등 친절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린지가 '밤비노의 저주'에 대해 물을 땐 정색을 하며 레드삭스의 악몽 같았던 세월에 대해 설명하며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삶의 의욕을 잃은 벤이 레드삭스의 시즌권을 팔려고 했을 땐 "돌아가신 삼촌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벤을 심하게 혼내기도 했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는 2004년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현역 선수였던 제이슨 배리텍과 조니 데이먼, 트롯 닉슨 등이 야구장 장면뿐 아니라 구장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장면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특히 레드삭스의 중견수 데이먼은 린지가 그린 몬스터에서 떨어져 벤에게 달려 갈 때 당황하는 연기로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했다(하지만 2004년 레드삭스의 가을영웅이었던 데이먼은 2005 시즌이 끝나고 양키스로 이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 패럴리 형제 드류 배리모어 지미 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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