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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핸드폰에는 '금요일엔 급식이 없으므로 아이들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알리미가 떴다. 그 즉시 전교생의 어머님들은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로 도시락과는 거리가 먼 3년을 보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교육공무직원들이 파업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저임금을 받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 꾸준히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온 누군가가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공개된 바가 없이 그저 '파업'이라는 단어만 전달되었다. 

도시락을 싸는 일, 간단치 않다
도시락
 도시락
ⓒ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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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싸야지, 어쩌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웃을 통해 소식이 날아들었다. 동네 김밥집에 예약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하느라 돈을 벌 기회를 얻은 듯했다. '나도 사러 가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져 갈팡질팡하던 중이었다. 하교한 아이 알림장에서 '과자도 가능'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이건 또 뭐지?" 의아해하는 내게 아이는 학교 점심시간에는 간단하게 고래밥을 먹고 5교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느긋하게 프랜차이즈집 등심돈가스를 먹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배고파서 어떻게 견디냐고 묻자 다시 수정해서 그 프랜차이즈집 등심돈가스를 교문 앞으로 점심시간에 맞춰서 들고 와달라고 했다. 아주 아이다운 발상으로 어쨌든 이 기회에 외식을 좀 해보겠다는 거였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네"라고 반색을 했다.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긴 했다. 평상시처럼 간단한 아침상만 봐주면 될 것이고 점심은 돈가스를 사다 주면 되는, 돈 몇 푼이면 간단히 해결이 나는 걸로 끝날 테니까. 고작 하루니까 그렇게 쉽게, 간단하게 해결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던 중, 갑자기 그 집 돈가스는 한 조각 사이즈가 크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앗, 그거 혼자서 베어 물어야 하는데 먹을 수 있겠어?" 곧바로 돌아온 아이의 대답, "그러면 유부초밥 먹을래." 그럼 그렇지. 유감스럽게도 어린아이들의 식사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부랴부랴 계획을 변경했다. 도시락통을 검색하고 유부초밥과 함께 싸갈 딸기도 주문했다. 한번 도시락을 쌀 뿐인데 비용이 적지 않다. 집에 있던, 자그마치 5년 전 유치원 소풍 때 단 한 번 사용했던 '폴리' 도시락통은 어느새 무용지물이 되었다. 알리미를 제때 못 봤다면 이 사태를 어찌 감당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주장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권리

다행히 늦지 않게 차례차례 물건이 배달되었다. 받은 재료들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도시락통은 베이킹소다에 담갔다.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치며 누군가의 권리를 찾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걸 상기했다. 이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조용히 윤활유 역할을 하는 수많은 인력들. 엄마들도 그중 하나이고 아마도 가장 밑단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의 피라미드에서 엄마는 생활의 기본이 되는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그 권리는 가장 적게 찾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노년이 되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땐 장성한 자식들이 돌아봐 주지 않으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 안전망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회 계층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는 걸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어쨌든 오늘 나는 도시락을 준비할 예정이다. 얼른 베이킹소다에 담가두었던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의 연마제를 제거하고 유부초밥에 들어갈 야채를 잘게 채썰어 볶아 도시락을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불편함을 기억할 것이다. 관련 직원들에게 적절한 대가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수많은 권리가 도처에 널려있다. 주장할 줄도 모르고 주장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권리들은 조용히 잊히고 계속 외면당한다. 엄마의 권리는 언제쯤 찾아지는 걸까. 저출산 대책을 읽을 때마다 번번이 코웃음을 치는 나를 발견하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엄마의 권리를 찾는 일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그렇게 오늘 하루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인력을 대신해 엄마들은 돌봄전선의 최전방에서 부랴부랴 도시락을 준비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급식 관련 공무직의 권리를 되찾아주고 싶어 했다고 한다. 조용히 시간은 흘렀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하교했다. 엄마의 노동력에 기대어 아이들은 또 한 뼘 자랐다.

태그:#학교급식, #공무직파업, #돌봄의최전방, #여전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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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 사회와 나의 부족한 면을 바라보고 채우는 방법을 생각하고 씁니다. 꿈을 꾸고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책을 통해 배워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공유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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