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름이 헛되이 나는 법은 없다는 뜻이다. 명성은, 곧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가치와 노력의 무게에 비례한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내며 명성을 만들어낸 모든 이들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3월 2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명불허전' 편으로, 독립운동 명문가인 경주 최부자댁 후손 최창호 이사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전도연이 출연하여 자신들의 인생철학을 전했다.
 
한국의 로스차일드, 메디치 가문으로도 불리는 '경주 최부자댁'은 400년 12대에 걸친 만석꾼 집안으로 유명하다. 역사서에 기록된 조선의 3대 부자(경성 이봉래, 전주 김기태) 중 하나로도 꼽혔던 최부자댁의 명성이 유난히 드높아진 진짜 계기는, 그 막대한 재산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장 앞장서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경주 최씨의 시조는 신라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최치원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참전했던 무신 최진립(17대손)에 이어 독립유공자이자 마지막 최부자로 꼽히는 최준(28대손)으로 이어진다.
 
최창호는 최부자댁 400년 명성의 비결로 "부자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철학을 밝혔다. 최부자댁은 당시만 해도 7대 3에 가깝던 지주-소작인의 수익 배분을 5대 5로 과감히 개선하며 소작인들과의 상생을 추구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 등 최부자댁의 가훈에서는 단순히 부의 축적만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공존과 상생의 정신이 돋보인다.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한 조선 3대 부자 가문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최준 선생의 대에 이르러 최부자댁은 당시 조선의 3대 부자 중에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한 가문이었다. 최준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나라를 잃게 되자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가문의 재산을 기꺼이 기부했고 옥살이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최준의 동생 최완도 임시정부의 재무부 위원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최준이 안희제와 함께 1919년 설립한 '백산무역'은 독립운동가들의 연락망이자 군자금을 지원하는 기구로 활동했다. 당시 최준이 독립운동에 후원한 자금은 현재로 치면 약 1000억 이상으로 추정된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는 "임시정부의 6할은 최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한 바 있으며 광복 후 최준을 직접 만나 그동안의 자금 기록이 적힌 장부를 보여주며 "삼천만 동포가 최 선생의 공로를 치하할 것입니다"라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최준은 광복을 불과 2년 앞두고 병사한 안희제의 무덤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준의 사후 그동안 경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 독립운동가들의 편지와 명함, 일제로부터 받은 경고문 등 최부자댁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각종 고문서들이 대거 발견됐다. 최창호씨는 "최부잣집만 갖고 있는 유일한 문서다. 이게 없어져버린다면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못 찾을 수도 있기에 책임감이 무겁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치며 파산했던 최부자댁은 광복 이후 다행히 일부 재산을 회복한다. 최준은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겪은 것은, 근대식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광복 이후 이번엔 교육 사업에 뛰어들어 전 재산을 투자한다.

창호씨는 당시 최부자댁에 남겨진 기록들을 통하여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어떻게 그만큼 깊은 뜻이 있었는지... 그분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좋은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경의를 표하며 "나라를 지키려는 선조들을 잊지말고 후손들이 그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만 읊는 앵무새" 전도연 자극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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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한국영화 전체를 위해서 저 배우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감독 봉준호가 전도연을 평가하면서 남긴 극찬이다. 전도연은 대한민국 최초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미국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일타스캔들>과 <길복순> 등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과 변신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전도연이 출연했다. 유재석은 대학 동기이며 개그맨 콘테스트 때 응원도 와줬다며 전도연과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전도연은 유재석에 대하여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반면, 유재석은 "우리가 인연이 되게 많다"면서 과거 에피소드들을 줄줄이 소환하며 어떻게든 전도연과의 친분을 되살려 보려는 밀당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전도연은 최근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일타스캔들>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다들 즐겁고 행복해하면서 끝냈다"는 소감을 전했다. <프라하의 연인> 이후 무려 18년 만의 로맨틱 코미디물에 도전했던 전도연은 "일타스캔들을 시작할 때 논란이 있었다. '로맨틱 코미디를 어떻게 50대 여배우가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행선이가 사랑받으며 끝날 수 있어서 마음이 좋았다"고 고백했다.

15세가 된 전도연의 딸은 엄마의 로맨스 연기를 보고 "심장이 오그라들고 너무 달달해서 이가 썩을 것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도연은 실제 자신이 행선의 모습과 닮았다며 "저도 엄마로서 모르는 게 많아서 아이한테 같이 물어보고 배우면서 성장해나가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명배우의 탄생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이루어지지기 된다. 본래 현모양처를 꿈꿨던 전도연은 우연히 하이틴 잡지 모델로 경력을 시작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배우의 길에 뛰어들게 됐다.
 
전도연은 1990년대 초반부터 < TV 손자병법 > <우리들의 천국> <종합병원> 등의 화제작에 출연하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최고시청률 62.7%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젊은이의 양지>에서 배용준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톱배우로 올라서기까지 인고의 과정이 힘들 법도 했지만, 전도연은 "본래 꿈이 배우였다면 힘들거나 좌절했겠지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힘든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일일극 <사랑할 때까지>라는 작품에서 부녀 역할로 호흡을 맞췄던 원로배우 박근형에게는 "너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대사만 읊는 앵무새"라고 쓴소리를 듣던 시절도 있었다. 이전까지 연기에 대한 지적을 거의 받지 않았던 전도연은 자극을 받고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전도연은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따뜻한 조언으로 느껴졌다"며 박근형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작품이 끝난 후에 박근형이 또다른 출연작에서 전도연을 제작진에게 추천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전도연은 "저한테는 그게 가장 큰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전도연은 1997년 PC통신을 통한 사이버 로맨스의 선구작으로 꼽히는 <접속>에서 한석규와 공연하며 영화에 데뷔했고, 작품은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도연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당시만해도 생소한 소재에 많은 여배우들이 출연을 거절하면서 신인이었던 전도연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왔다고. 그녀는 당대의 톱스타였던 한석규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그해 대종상-청룡영화제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듬해인 1998년 <약속>에서는 박신양과 절절한 로맨스 연기로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전도연은 "내 영화를 보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의 광경이 너무 신기하고 뿌듯했다. 이런 재미로 영화를 찍는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1999년 이병헌과 공연한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10대 소녀를 이질감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전도연은 어릴 때는 동안이 콤플렉스였다며 성형 제안도 많이 받았다는 뒷이야기를 밝혔다.
 
전도연 "시집 잘 가려고 배우한 게 아니지 않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같은 해 개봉한 치정스릴러 <해피엔드>는 그녀의 연기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주로 순수하고 귀여웠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파격적인 노출과 주부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전도연은 당시만 해도 드물던 '여배우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이야기'에 가장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전도연은 "배우로서 '도전'을 한다면 처음이었던 작품"이라고 회상하며 "당시는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고백하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시집 못 가면 어떡하냐는 부모님과 주변의 강한 반대에도 전도연은 "시집 잘 가려고 배우한 게 아니지 않냐"고 똑 부러지게 설득했다고.
 
전도연은 "<해피엔드>는 상처이기도 한데 저를 굉장히 단단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밝히며 "남자배우는 이런데 왜 여배우는 이렇지 않아? 라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 '누구도 나한테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배우는 소극적이다, 수동적이다, 프로폐서널하지 않다는 등의 편견은 늘 있었다. <해피엔드>는 여배우가 주체적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작품이었고, 저는 배우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에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이후로도 전도연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 <별을 쏘다>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장르의 한계를 초월하는 독보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황정민과는 무명 시절 조승우-지진희-전도연이 함께 사석에서 촬영한 '전설의 우정여행 사진'을 남긴 지 2년 후 <너는 내 운명>에서 상대역으로 공연하며 함께 절절한 로맨스 연기를 펼친바  있다. 황정민은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의 '밥상' 수상소감과 함께 전도연에게도 "너와 연기한 건 기적같은 일이었다. 고마워"라는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전도연은 "황정민은 그 작품이 아니었어도 잘됐을 배우"라고 극찬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밀양>은 전도연에게 60회 칸 영화제 수상 및 개인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긴 대표작으로 꼽힌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전도연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일종의 분기점이기도 했다. 전도연은 "그렇게 대단한 상인지 몰랐다.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을 받고 나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고 회고했다.
 
한편으로 전도연은 칸 영화제 수상 이후 오히려 겪어야 했던 뜻밖의 후유증을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상 이후 어마어마한 시나리오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 오히려 '전도연이 이런 작품을 하겠어?'라고 영화제에 갈 법한 작품을 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전도연은 "한동안 다양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혹시 못 보고 지나친 시나리오는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때가 참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오랜 시간을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하면서 기다리고 견뎠다"라고 고백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전도연은 "저 자신에게 좋은 작품을 했고, 앞으로도 후회없이 하자고 끊임없이 되뇌었다"고.
 
전도연은 의외로 시간을 돌릴 수 있더라도 어린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20대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충분히 다 겪어본 것 같다"는 이유를 밝힌 전도연은 오히려 "40대라는 나이가 너무 모르지도, 많이 알지도 않고 괜찮았던 시절"이라는 생각을 고백했다.

전도연은 일상에서는 "그냥 집에서 TV 틀어놓고 누워있는 게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박한 감성을 드러냈다. 배우 김남길의 증언에 따르면 애주가로 알려진 전도연이 술에 취하면 지디의 '삐딱하게'를 열창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전도연을 당황하게 했다. 전도연은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조금은 삐딱하게 살아도 된다"는 가사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전도연은 대학 동기 유재석에 대해서는 매일 열심히 사는 모범생이었던 자신과는 정반대로, '한량', '베짱이'같았다는 첫 인상을 밝히며 "솔직히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는 돌직구로 폭소를 자아냈다. 유재석 본인도 전도연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끼고 있었다며 인정했다.
 
젊은 시절에는 배우로서 '완벽주의'가 강했다는 전도연은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내려놓고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전도연은 "작년에 많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왜 나 자신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야기하며 "카메라 앞까지 나를 이끌어준 건 나 자신인데 그때부터 저 자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일 끝나면 '오늘 수고했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많이 이야기한다"고 고백했다.
 
전도연은 50대가 된 후 달라진 점에 대하여 "제가 달라진 건 없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는 게 달라졌다"고 이야기하며 "50대에 로코 연기를 소화한 <일타스캔들>처럼, 아직도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남들의 잣대나 선입견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늘 비교선상에 놓여있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 자신보다 제 삼자들이 저를 잣대 속에 가두는 일들이 생긴다"라는 고충을 털어놨다.
 
전도연은 "굳이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고 나이에 맞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살아야하나? 나이에 갇혀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크든 작든 제 일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라는 소신을 밝혔다. 일에 있어서는 당당하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는 전도연은 오히려 그로 인하여 더욱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전도연은 최근의 고민에 대하여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연기했던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이 더 많아서 더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고 싶다. 누군가 나를 선택해서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배우로서 더 소모 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전도연은 "사람들은 <밀양>이 전도연의 정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생각이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자신을 더 소모시키고 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이 궁금하고 보고싶다"라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전도연은 "어떤 배우로 남느냐가 아니라, 어떤 배우로 보여주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저는 계속 기대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 '이것까지 했는데 뭘 하겠어'가 아니라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할지 궁금한 배우이고 싶다'"며 여전히 가슴이 뜨거운 여배우로서의 열정을 드러냈다.
유퀴즈 전도연 최부자댁 일타스캔들 길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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