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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가배관을 운영하는 이성은 대표와 문화기획자 김해리 디렉터(왼쪽)
  동양가배관을 운영하는 이성은 대표와 문화기획자 김해리 디렉터(왼쪽)
ⓒ 동양가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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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가배는 차 한 잔을 두고 몇 시간씩 집필하거나 토론을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섬세한 벗이었습니다. 또한 가배관은 낯선 이국의 문화를 향유하고 새로운 감각과 만나는 취향의 매개이자 영감의 산실이었습니다. 동양가배관은 우리 곁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가배관이 되고자 합니다.'

인천 배다리(동구 금곡로 32-2)에 있는 커피 로스터리이자 문화공간인 '동양가배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문구다. 이 공간을 함께 꾸려가는 두 사람, 오랫동안 커피를 연구해 온 이성은 대표(32)와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김해리 디렉터(35)의 뜻이 잘 담긴 글이기도 하다.

"처음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가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걸 역사 속 이야기에서 발견했다"는 김해리 디렉터는 당시 커피를 판매하던 공간 '가배관'이 시인이나 미술가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서로 교류하던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커피'를 단순히 '마시는 대상'이 아닌, 문화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됐다"고 부연했다.

그 무렵 중국에서 비즈니스 트립을 운영하는 일을 함께하며 다양한 커피 브랜드의 비즈니스를 경험해본 점도 영감이 됐다. 이들은 여러 질문과 고민 속에서 '동양가배관'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갤러리나 공연장과 같은 전문예술공간은 어렵게 생각하지만, 커피가 있는 공간은 누구나 친숙하게 생각하고 편안하게 다가오잖아요. 일상의 공간이지만 그 속에 로컬의 문화가 담기는 게 재밌었어요. 여행자의 시선으로 중국의 브랜드들을 보면서 새롭게 느끼며, 우리가 커피 브랜드를 만든다면 자연스레 우리의 문화가 담기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어떤 문화를 전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을까'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곁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브랜드
 
동양가배관에서 내리는 커피
 동양가배관에서 내리는 커피
ⓒ 동양가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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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공간을 만들었던 건 아니다. '동양가배관'이라는 이름을 지어 놓고 이들은 자신의 색깔을 찾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약 1년여 동안 바다가 있는 풍경이나 나무의 결 등 자연 속에서 또는 우리의 옛 사물과 문화 속에서 '동양가배관다움'에 단서를 조금씩 발견해 나갔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수묵화'와 '단청'이라는 브랜드의 대표 커피 블렌드다. 먹으로 그려진 그림의 깊고 그윽한 '수묵화'의 멋과 연결해 산미가 적고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커피를, 오래된 나무 위 아름답게 채색이 된 '단청'에서 이름을 따 산뜻한 과일의 향미가 두드러지는 커피를 직접 로스팅했다.

"'우리 문화'라고 했을 때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닌, 저희가 직접 느끼고 발견한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저희의 작업들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서 눈치채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동양가배관이 처음으로 자리 잡았던 공간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에서 스토리텔러를 위한 창작·교류 플랫폼으로 만든 '기록상점'이었다. 공간에 모이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좋은 커피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기록상점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였어요. 그런 점이 저희와 잘 맞았어요. 그들과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했어요. 커피의 맛과 재즈를 페어링해서 즐기는 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창작 요리를 하는 셰프님과 제철 간식을 페어링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사실은 오픈 하자마자 코로나의 영향으로 손님들이 많이 오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 덕에 '딴짓'들을 많이 하게 된 거죠."

동양가배관은 이처럼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 창작을 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작업을 통해 경험을 쌓은 후, 지난 2021년 8월 지금 이곳, 배다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배다리라는 동네의 발견
 
<유러피안 에코백 아카이브>의 저자 ‘슈퍼소닉스튜디오’와 함께 진행한 ‘우리가 살고 싶은 문화를 찾아 떠난 여행’ 행사의 한 장면. 함께 배다리의 헌책방을 경험하며 가상으로 축제를 열어보는 이색적인 기획을 진행했다
 <유러피안 에코백 아카이브>의 저자 ‘슈퍼소닉스튜디오’와 함께 진행한 ‘우리가 살고 싶은 문화를 찾아 떠난 여행’ 행사의 한 장면. 함께 배다리의 헌책방을 경험하며 가상으로 축제를 열어보는 이색적인 기획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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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동양가배관'이라는 이름이 지어지던 순간과 연결된다. 이름을 지을 때 이성은 대표가 인천 출신이라는 점, 인천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개항이 된 지역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 그래서 언젠가 단독 공간을 오픈한다면, 인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천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발견하게 된 것이 '배다리'였다. 서울에서 살아왔던 김해리 디렉터에게 인천은 낯선 동네였고, 그래서 더욱 새로운 시선으로 동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저희의 이웃인 '이십세기약방' 건물을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1950년대에 지어져 전쟁까지 겪은 낡은 건물을, 부수지 않고 살려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태도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은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에 크게 감동했어요."

이성은 대표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고유한 색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자 오래된 책과 문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동양가배관의 색깔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지금도 배다리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헌책방 거리의 시작을 탐구하다가 '오래전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꿈을 꾸고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이던 동네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끼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다시 이 동네에 모여들면 좋겠다'는 생각하기도 했다.

이들은 늘 '우리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한다. '동양가배관'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문화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고민은 그동안 배다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지역민들의 소망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곁에 있는 것들을 지키려 하는 마음이 서로 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곳에 자리 잡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다.

인천 이야기를 맛으로... '인천음미' 프로젝트
 
인천음미(仁川吟味) 프로젝트로 개발한 ‘마계’ 블렌드와 서해갯벌 스무디
 인천음미(仁川吟味) 프로젝트로 개발한 ‘마계’ 블렌드와 서해갯벌 스무디
ⓒ 동양가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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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가배관 1층이 열려 있는 교류의 공간이라면, 2층은 자신에게 보다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의 공간으로 운영한다. 동양가배관에서는 두 가지 색깔의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보인다. 프로그램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같다. 바로 배다리와 인천의 문화를 발견하고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1층에서는 문구나 책, 우리나라 작가들의 공예품, 커피와 관련된 물건들을 판매 및 전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지역의 색깔을 고려한 구성이다. 배다리에 자리 잡고 있는 '나비날다', '시와예술' 등의 책방과는 또 다른 매력의 독립출판물들을 소개하는 것, 젊은 기획자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배다리의 헌책방에서 골라온 '헌책 큐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한다. 지역 역사 연구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 배다리의 이야기로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미니 콘서트, 예술가와 함께 지역을 걷고 창작물을 만드는 아트 워크숍, 배다리의 헌책방을 투어하고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등 배다리의 색깔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작업, 지역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하는 반상회 등이 그 예다.

최근에는 인천의 로컬 매거진 를 비롯한 로컬 콘텐츠를 만드는 이웃 '스펙타클타운'과 연계해 매거진 속 인천의 이야기를 맛으로 표현하는 '인천음미仁川吟味'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계'라는 커피 블렌드와 '서해 갯벌 스무디'를 개발했는데, 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호응에 '서해 갯벌 스무디'는 고정 메뉴로 현재도 판매 중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동양가배관'을 문화 콘텐츠와 커피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천에는 '동양가배관'이 있다
 
재즈 그룹 Treble&Bass와 함께 한 페어링 현장. 현장에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와 어울리는 재즈 연주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기획했다
 재즈 그룹 Treble&Bass와 함께 한 페어링 현장. 현장에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와 어울리는 재즈 연주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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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양가배관에서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진(Zine)'이다. 누구나 쉽게,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드는 얇은 책자를 의미하는 진(Zine)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만들어내는 독립적인 출판물이다.
 
"작년부터 사람들과 진(Zine)을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해왔는데,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그램들 중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너무 신나게 만들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이성은 대표는 "지역 주민들 외에도 서울이나 분당, 대구에서도 찾아올 만큼 반응이 컸다"고 전했다. 동양가배관은 '진(Zine)'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과정을 돕고 배다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진(Zine)을 만드는 방식은 다양해요. 주제가 거창할 필요도 없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관심이 있는 것을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면 돼요."

이성은 대표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켜가려는 태도가 배다리의 지역성과도 닮았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어느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 공간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기운이 공간에 '뭍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쌓이면 그 자체로 어떤 분위기나 기운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다리에서 사람들과 이 브랜드의 색깔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요."

이들은 책을 만드는 작업 외에도, 책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하는 작업 또한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 속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팝업 전시를 기획한 것 또한 그런 생각의 일환이다.

'인천에는 동양가배관이 있다'를 알리는 게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동양가배관'을 인천의 독보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꿈이다.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천의 로컬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동양가배관'이었으면 좋겠어요."

'장인정신'을 가지고 커피를 대하는 이성은 대표와 창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을 만드는 문화기획자 김해리 디렉터, 이들은 배다리에서 동양가배관을 정성을 다해 키워가는 중이다. 

글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fffriend2023@naver.com, 사진 동양가배관 제공
 

태그:#인천, #동양가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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