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교 참 오래 다녔다. 우리 나이로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예순둘이 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칠판을 앞에 두고 16년, 칠판을 뒤에 두고 대략 34년. 다른 사람들처럼 대단한 사명감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내년이면 더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사들이 싫어하는 일은 무엇일까? 행정 업무 처리일까? 학생 상담일까? 학부모 민원 상대일까? 수업일까? 하긴, 수업하는 게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로, 배우는 연기로 먹고산다면, 교사는 수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들 사이에는 '학교도 아이들 없으면 올 만하고, 아이들이 있어도 수업이 없으면 올 만하다'는 말이 농담처럼 떠돈다.

수업이 하기 싫다는 말일 수도 있고, 교사에게 수업이 매우 중요한 존재이니 그만큼 부담이 된다는 뜻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한편 수업하는 걸 정말로 좋아하고 즐기는 교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사들이 예외 없이 싫어하는 게 있다. 바로 자신의 수업을 다른 교사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수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수업 공개 또는 공개 수업이라고 부른다. 요즈음은 수업을 공개할 때 학부모를 초청하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의 경우 참석하는 학부모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떤 교사가 "내 수업을 지나가는 개미한테도 보여주기 싫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또 만약 어떤 교사에게 "선생님 수업 좀 참관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 "네? 왜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수업 공개는 대개의 교사들이 꺼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어떠냐고? 물론 나도 내 수업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만큼 자신의 수업을 다른 교사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어쩌면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서는 것만큼의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교사들 서로서로 자신의 수업을 보여주고 어떻게 수업을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교사는 수업으로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서로 수업을 보여주어야만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다. 수업은 교사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서로 수업을 보여주면서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교사들이 수업을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아니다. 제도적 장치는 명명백백하게 존재한다. 다만 그 장치가 너무나도 형식적으로 작동한다. 예전에는 학년 초에 담당 부서에서 수업 공개 계획을 세웠다.

교사들에게 수업 공개 희망 날짜를 받아 모든 교사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교사들은 해당 날짜에 맞춰 수업 지도안을 제출하고 그 날짜에 수업을 공개한다. 헌데 여기까지가 끝이다. 수업을 공개하면 누군가 그 수업을 참관하고 수업 끝난 뒤, 수업한 교사와 참관한 교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 마나 한 일이다.

몇 년 전부터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 수업 공개 주간을 만들고 그 주에 수업을 공개하라고 했다. 더구나 학부모까지 초청한다고 하니, 교사들이 긴장할 수밖에. 그런데 막상 수업 공개 주간이 되니, 학부모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첫 해에는 학부모 몇몇씩 짝을 지어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참관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내 수업에도 한 분이 들어와 수업 내내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떠냐고?
한 학년에 1~2명 올까 말까 한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사례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전국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사례까지 포함하여 미루어 짐작건대 문전성시를 이루는 수업 공개 주간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교사에게 수업이 가장 중요하고 교사로서 성장하려면 수업을 서로서로 보여주는 게 좋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물론 나도 수업 공개의 효용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전에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업 공개를 자원한 적이 있었다. 전에 근무하는 학교는 혁신학교를 운영하는 곳이라 지금의 학교보다 수업 공개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내가 굳이 수업 공개를 자원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수업 공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용기를 낸 것이었다. 물론 좋아서, 신나서 자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 말고 수업을 공개하는 교사의 면면을 보니, 모두 다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 일색이었다.

'아, 가만히 있을 걸.... 웬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찌어찌 수업 공개를 끝내고 같이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다. 의례적인 칭찬의 연속뿐이었다. 혁신학교인지라 좀 더 역동적인 수업 평가회를 기대했는데,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 공개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수업 공개를 비롯하여 수업을 바꾸어 학교를 바꾼 혁신학교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접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의 학교에서는 좀처럼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많은 선생님들의 가슴 속에서 수업 변화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타오르고 있을 텐데 말이다.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할 방아쇠가 필요하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한가득이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하리. 모두 쓸데없는 넋두리일 뿐.

그런데 며칠 전, 희미한 희망의 싹을 보았다. 어떤 선생님이 내부 소통망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수업에 관해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눌 선생님들을 찾습니다'라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같이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겠다는 답글을 보냈다. 그 모임이 잘 이루어져서 우리 학교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기를 기대한다. 간절히.

태그:#수업, #수업 공개, #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