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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온기가 만물을 깨우는 3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며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날 아파트 경비노동자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고인 역시 수천 명이 토해내는 재활용품을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이며, 지난 겨우내 거목들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낙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쓸었을 것이고, 눈이 오면 이미 입주자들이 밟아 딱딱해진 눈에 누군가 미끄러질세라 땀이 나도록 치웠을 것이다.

최근, 경비노동자 계약기간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무슨 법칙인 양 3개월짜리가 횡행하다. 아파트 입주자는 점점 늘어나지만, 경비노동자는 줄어들고 있다. 근무환경과 휴게의 질 개선도 더디기만 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인원은 줄어드는데 서비스의 질은 유지해야 한다. 갈등이 생겼거나 건강이 안 좋으면 쉽게 해고하기 위해 3개월짜리로 계약한다니,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인이 떠나기 전 남긴 글을 통해서도 동료들에게는 따뜻함이, 아파트 측에는 원통함이 묻어난다. 그간 얼마나 묵묵하고 성실하게 견뎌왔을지 상상이 된다. 지난 시간에 대한 회의감이 고인을 집어 삼켰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건 사회적 타살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라 믿고 이날 이때까지 몸의 통증과 피로를 참으며 슬프고 화나는 감정까지 억눌러왔다 하여 왜 자존감이 없겠는가. 평균 연령 65세 이상의 경비노동자로 하루 24시간을 좁은 경비실에서 생활한다고 하여 노동을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 것이며, 인간적인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는가.

1차 사용자인 경비용역업체는 단지 인간을 아파트에 값싸게 공급하는 역할 말고 무엇을 했을까. 아파트를 위해 24시간씩 함께 일하고 생활했던 이를 위해 단지 며칠 걸려있을 추모 현수막을 떼라고 지시한 자들은 아파트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단 말인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을 한다고 하여, 지시하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노동은 없다. 인구 중 70%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에 늘 만나는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사회적 타살이다.

고인의 괴로운 심정을 감히 추측할 수 없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개선의 필요성을 알렸다는 점이다. 십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건 부당하다, 너무 위험하다, 힘들다, 너무 한다' 외쳐온 이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수십 년간 '당연히' 견뎌왔던 분들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벼랑 끝에서 외치고 있다.

부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때로 후퇴하는 것 같아도 종국에는 당연히 나아지고 있다고 애써 희망을 찾는다. 그 과정에 또 이처럼 비통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서울 경비노동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과 기쁨과 슬픔의 세월을 함께한 가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사회를 위해 설령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감내하는 분들이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경비노동자, #당연한노동, #감정노동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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