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30 12:00최종 업데이트 23.03.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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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기획] 국민연금,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꿔야 하나  
① 국민연금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② 미래세대 부담은 얼마나? 
③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안 들린다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자료사진. ⓒ 연합뉴스


2023년 초 연금 개혁이 우리 사회 주요 의제가 되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국민연금으로 국한해 보면 핵심 쟁점은 단순하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중심에 놓고 재정 안정을 점진적으로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안정을 중심에 놓고 빠르게 재정 확충 조치를 단행할 것인가?

'보장성 강화론'과 '재정 건전화론'으로 대비되는 이 두 주장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연대, 그리고 국민연금 기금과 세대 간 부담 배분에 대한 생각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나아가 이는 우리가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다른 전망을 함의한다.


일부 언론은 소위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을 유포하며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 한다. 이 주장은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곧 재정 안정임을 전제한다. 국민연금의 목적이 적정 수준의 노후보장임에도 보장성 강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한다. 연금 지출 증가는 더 많은 기금 적립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을 다람쥐가 구덩이에 도토리를 모으듯이 보험료를 오래도록 적립해 놓았다가 연금을 받는 제도로 보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미래 연금 지출 증가에 대비하여 연기금을 미리 많이 쌓아놓는 대응은 연금재정 안정에 특별한 효용이 없다. 기금이 쌓여 있든 아니든 결국 공적연금 재정 안정은 연금 지출 시점 노동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연금 기금이 덩치는 크지만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면 기금이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줄 수 없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연기금 자산이 시장에서 제값에 팔릴 때 비로소 연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연금자산 구매력은 해당 시기 그 사회의 경제력에서 나온다. 연기금을 쌓아놓아도 미래세대가 부의 상당 부분을 연금에 할당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인구구조 변화가 급속한 시기에 연기금은 보험료 인상 속도를 늦추는 보조장치로 기능한다. 2060년대까지 국민연금 기금이 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투자 위험과 운용비용은 감수해야 할테지만.

국민연금이라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은 매 시기 노동인구가 창출한 부 일부를 노인세대에게 분배하여 사회 발전 수준에 맞는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종신 보장, 실질가치 보장을 추구한다.

나아가 국민연금은 재분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공적연금은 적립자산의 투자수익에 따라 연금을 받는 사적연금과는 다른 원칙으로 100년 이상 지속된, 고도의 사회연대에 기초한 제도이다. 노동소득 일부를 연금 보험료로 낸다는 것은 현재 노인의 노후보장에 기여하는 세대 간 연대에 참여하는 것이자 미래 세대의 생산 몫 일부를 분배받을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폰지사기?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를 찾은 시민이 상담받고 있다. ⓒ 연합뉴스

   
연금제도를 저축과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앞 세대가 연기금을 충분히 쌓아놓지 않은 경우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한 부양의 연쇄를 폰지사기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미래세대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그런데 투명한 회계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재정 상태를 상세하게 공개하며, 5년마다 장기추계를 하여 건전한 재정운영을 위한 개선방안을 의무적으로 논의하는 국민연금 제도를 '사기'라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많은 나라가 전쟁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100년이 넘게 지속해 온 제도를 이렇게 폄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여러 나라의 공적연금 제도는 연기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세대 간 계약, 지속적인 의무가입과 생산성 향상에 기초하여 지속되었다. 항상 출생률 증가가 제도를 지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사기라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상품은 고령화 와중에 어떤 변화를 예정하고 있는가? 회계기준과 재정 상태, 그리고 장기 전망이 과연 국민연금보다 투명하게 제시되고 있는가?

보장성 강화론과 재정 건전화론이란 국민연금 개혁의 두 방향은 미래세대에게 어떤 의미인가? 현재 국민연금 제도는 2007년 연금개혁을 통해 매년 보장 수준, 정확히는 소득대체율을 0.5%p씩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의 보장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낮다. 평균소득자 기준 소득대체율이 한국은 31.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51.8%이다.

매년 소득대체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똑같이 보험료를 내도 국민연금에 늦게 가입할수록 국민연금 급여액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후세대에게 불리하다. 물론 현 고령노인들은 국민연금 제도에 충분한 가입 기간을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이들에게 국민연금이 무조건 유리하지도 않았다. 지금 국민연금 평균급여액은 60만 원 미만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보장성을 높일 경우 집중적인 수혜자는 누구이고, 재정 건전화 조치를 할 경우 집중적인 부담자는 누구인가?

우선 보장성 강화의 수혜자는 앞으로 가입할 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노동세대이다. 이대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지속적인 하락을 용인할 경우 2030~2050년 경에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세대의 연금급여는 기존 노인의 연금액보다 낮아진다. 현 노동세대, 즉 미래 노인은 더 오래 가입할 수 있지만 2007년 급여 삭감의 영향으로 연금 수준이 정체되거나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2030년 신규 수급자 소득대체율은 23.2%, 2050년에는 22.3%로 예측된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기성세대와 현 노동세대 사이의 국민연금 보장 수준 격차를 줄이고, 어느 세대이든 국민연금이 핵심 노후소득 보장제도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다. 보장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다.

현 노동세대는 연금 하락을 이미 감수했고, 동시에 보험료율 인상을 감당해야 하는 세대이다. 보장성 강화는 연금보험료율 인상의 수용 가능성을 높인다. 즉, 세대 간 계약에 대한 동의를 더 용이하게 만든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을 높일 경우 미래세대의 국민연금 재정 조달 가능성에 대한 판단의 차이이다.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가?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의 수혜자는 앞으로 가입할 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현 노동세대이다. ⓒ 셔터스톡

 
공적연금의 본질이 세대 간 자원 이전을 통한 세대 간 부양이라면 미래세대의 부담 가능성은 생산력을 고려한 부양 부담 총량 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대표적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비이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거나, 45%, 50%로 높일 경우 2070년 기준 GDP 대비 국민연금 지출비는 각각 약 9%, 10%, 11%로 추정된 바 있다. 2023년 현재 많은 나라들의 연금지출은 이미 이 수준에 도달해있다. 더욱이 장기적으로 연금수급 연령을 더 늦추게 된다면 지출은 더 줄어든다.

점진적 보험료율 인상, 보험료 부과 소득 조정, 수급연령 조정 등의 조합을 통해 장기적 재정 안정성을 달성해가는 전략은 가능하다. 국민연금 기금 감소를 받아들이되, 기금이 인구 변화에 대해 완충기능을 일정 기간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 확충 방안을 순차적으로 조합하는 것이다. 인구구조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는 2070년 경, 고령화 속도가 성장 속도보다 빠른 시기까지 연기금이 완충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다면 소득대체율 인상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

한편 재정론자는 미래세대 부담의 지표로 '부과방식 비용률'을 제시한다. 이는 기금이 전혀 없을 경우 그 해에 노동세대가 평균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율을 의미하며, 지출 수준에 따라 3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보장성 강화론자는 생산력 발전에 따라 중요한 것은 부의 양이 아니라 분배의 질서가 될 것이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국민연금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이 GDP의 30%에 못 미치는 현 상황을 바꾸자는 것이다.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기반을 넓힌다면 보험료율은 낮아진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득 상한 이상 임금 부분에 대한 보험료 부과, 자산소득 등 다양한 소득원에 대한 보험료 부과도 고려할 수 있다. 부담능력과 노동력 사용 방식 변화에 따라 사용자와 노동자의 보험료 분담률 역시 조정할 수 있다. 미래세대는 단일한 계층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계층 간 부담능력 차이를 고려하여 재정 부담을 과감하게 재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2060년대 이후 노동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1인당 GDP는 현재보다 현격히 높아진다. GDP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1인당 GDP는 현재에 비해 수 배로 커진다. 소득이 높아지면 부담능력, 즉 보험료율 인상 여력 역시 커진다. 물론 보험료율 인상 속도는 성장을 잠식하지 않도록 기금규모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셋째, 공적 노후보장 지출은 총량으로 파악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낮은 급여수준이 지속된다면 조세 재원 기초연금 등이 노후보장에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로 인한 지출 증가분은 기초연금 등의 지출 감소를 고려해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미래 경제 운용 방식 및 생산 방식 변화에 적합하게 국민연금 재정 부담을 배분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축소는 누구에게 이득일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 축소 우려에 대해 재정론자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 사연금의 역할 확대를 강조한다. 저소득층에게는 기초연금이, 중간층에게는 국민연금이, 고소득층에게는 사연금이 중심 제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저소득층에게 사연금 가입을 위한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국민연금에서 재분배 요소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재정론자가 제시하는 이런 노후소득 보장체계는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첫째, 빈곤 대응의 미비이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축소를 보완할 수 없다. 기여에 의해 수급권을 확보하는 국민연금의 급여가 낮은 상태에서 무기여 제도인 기초연금을 빈곤 대응이 가능한 수준으로 높이기는 어렵다. 더욱이 기초연금 대상과 급여는 재정 상태에 따라 쉽게 줄어들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 축소를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대신하기 어렵다. 퇴직연금은 아직 상용직 노동자의 절반 가량만 포괄한다. 그나마 대부분 일시금으로 해소된다. 또한 사연금은 연금급여 편차가 큰 데다 국민연금과 달리 평생 성장에 연동되어 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

셋째, 사연금은 높은 운용수수료를 부과하여 금융업계의 수익을 보장하고 가입자 연금액은 낮춘다.

넷째, 사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결국 기초연금이나 국민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지출은 늘어난다.

생각해 보자. 저소득층의 연금은 줄어들고, 나이가 들수록 연금가치는 떨어지며, 일반조세 부담은 커진다. 유일한 승자는 연금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이다. 1990년대 본격화된 공적연금 축소, 개인계정연금 등 사연금 확대는 이윤 추구의 벽에 부딪친 금융자본의 돌파구였다. 이렇게 시장화, 개별화되어 계층에 따라 분리된 노후보장을 하는 사회가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남겨줄 복지국가인가? 
  

주은선 / 경기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 주은선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는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과 노후소득보장특위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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