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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친구네 가족과 함께 야외 나들이를 했습니다. 수목원에서 두 가족이 만나 양과 타조, 당나귀를 보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를 구경하면서 따스한 봄을 만끽했어요. 점심시간이 되자 허기가 진 아이들이 "배고파요!!!"를 연신 외치기에 근처 식당에서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문득 친구가 한 가지 질문을 했어요.

"너 아이들 영상 안 보여 주지?"
"아예 안 보여주는 건 아니고...... 토요일에 첫째랑 둘째 각각 15분 정도 길이 영상 2개씩 고르게 해 주지. 한 명 당 두 개씩 고르니까 둘이서 같이 보면 총 4개. 근데 그것도 막둥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만 볼 수 있어."


오랫동안 봐 왔던 친구라 아마 저희 부부가 아이들에게 영상을 잘 안 보여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확인차 묻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잠시의 고민 끝에 간단하게 대답했어요. 친구는 이어서 또 한 가지를 묻더라고요.

"그럼 아직도 밥 먹을 때 아이들 영상 아예 안 보여줘?"

그때 저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첫째가 불쑥 끼어듭니다.

"밥 먹을 때 영상 보면 밥이 무슨 맛인지를 알 수가 없대요. 그래서 우리는 밥 먹을 때는 영상 안 봐요."

아이가 이 말을 하는데 그동안 우리 부부가 고생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외식을 할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면 패드와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그걸 보면서 식사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어요.

둘째와 셋째는 좀 어려서 질문한 적이 없지만 뭘 알 만한 나이가 된 첫째는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도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고 싶다고요. 왜 자기만 안되냐는 물음도 덧붙였지요.

처음에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가 참 곤란하더라고요. 다른 부모와 저희 부부의 생각이 다른데 그걸 아이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저희 부부의 답도 점점 발전했어요.

결국에는 1. 밥을 먹을 때 영상을 보면 무얼 먹는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씹고 삼킬 수 있다는 점, 2. 영상을 많이 보면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가 힘들다는 점, 3. 어릴 때 영상을 많이 보면 화면에 집중하느라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줄어들어 시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답해줬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매번 들은 첫째 딸은 제 친구의 질문을 듣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한 거죠. 어찌 보면 아이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아마도 아이가 저희의 답을 이해했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다행스러웠어요. 그리고 아이가 100프로 저희의 마음을 알진 못하더라도 조금은 저희의 뜻을 수용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서 영상노출을 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무분별한 영상노출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 집 거실에는 TV 한 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TV는 오로지 저희 부부만 켜고 꺼요. 아이들은 TV가 잘 작동되는 걸 알지만 마음대로 조작하지 않습니다. 평일에는 꺼져있는 이 TV에도 토요일만큼은 전원이 공급돼요.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일주일 동안 기대하며 고릅니다. 한날은 한글교육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했다가 다음 날은 캐릭터가 나오는 영상을 볼 거라고 하고 또 그다음 날은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하며 매일매일 이번 주 토요일에는 어떤 영상을 볼지 설렘을 안고 기다립니다.

이 룰을 정하기까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영상을 아예 안 보여주자니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더라고요. 하지만 영상을 규칙 없이 노출시키는 건 저희 부부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수차례 규칙을 바꿔가며 정한 게 매주 토요일 낮 각자 영상 2개씩을 골라서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원칙도 막둥이가 태어나자 또 난관에 부딪혔어요. 기고 걷기 시작한 막둥이가 누나들의 영상타임을 가만 놔두지 않더라고요. TV 코 앞에 서서 영상을 보거나 거실장 위에 올라가서 TV를 마구 흔든다던가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영상을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어 스트레스였고 저희 부부는 막둥이가 영상에 지나치게 일찍 그리고 장시간 노출된다는 점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 상황을 몇 주간 겪으며 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떠올린 해결책은 막둥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 동안 영상을 보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꼬마 방해꾼이 사라져서 좋고 저희 부부는 이제 만 1~2세 된 아이가 영상에 노출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덤으로 아이들은 막둥이를 재우기 위해 안방에 들어가면 쥐 죽은 듯이 침묵하며 얼른 낮잠에 들길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는 의외의 수확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보고 싶은 영상을 '직접' 고르기 때문에 크게 불만이 없습니다. 그리고 총 4개의 영상을 보니 나름 영상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영상 타임이 끝나면 때때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이제 이 룰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독서를 하게 하려면 일상이 조금은 '심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컬러풀하고 내용 전환이 빠르며 매력적인 영상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은 종이에 쓰인 글을 집중해서 읽으며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성인인 저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핸드폰으로 재밌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두꺼운 책을 손에 집어 들고 내 노력을 기울여 그리고 집중력을 발휘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2022년 5월의 삼남매
▲ 자주 가는 도서관 앞마당에서 2022년 5월의 삼남매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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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 독서법>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영원히 안 줄 수는 없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스마트폰에 푹 빠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릴 때 그 시기를 거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한 아이일수록 훨씬 더 심각하게 스마트폰에 빠집니다. 가능한 한 늦게 줘야 합니다.'

남편과 제가 중학교에서 근무해서 요즘의 청소년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저희들만의 영상노출에 대한 원칙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더 굳건해져갔습니다. 일찍부터 영상을 보며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에 시대에 발맞추어 자주 노출해도 괜찮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일 수록 자연을 벗삼아 놀고 그림책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누리는 시간을 많이 제공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노출을 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을 세워서 통제가능한 범위에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과하지 않게'요.

제 주변에는 아이에게 어릴 때 영상을 보여주었다가 아이의 떼가 점점 심해져서 부모가 결단한 후 영상노출을 줄이거나 중단한 두 가정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상을 보다가 끄려고 하면 아이의 고집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모르는 두 가정이 비슷한 이유로 그리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영상노출을 중단했다는 점이 저는 신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어릴 때 영상노출을 많이 했더라도 5~6세가 된 이후에 중단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 희망적이었습니다.

아이가 책을 즐겨 읽길 원하신다면 먼저 우리 아이가 책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가운데 지나친 것은 없는지 한 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책육아, #독서교육, #독서교육, #육아, #자녀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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