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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7일 이스라엘 베이트 야나이 인근에서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우고 있다. 이날 시위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민 수만 명이 집결했다.
 2023년 3월 27일 이스라엘 베이트 야나이 인근에서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우고 있다. 이날 시위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민 수만 명이 집결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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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민적 반발에 부딪힌 사법개혁안 입법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27일(현지 시각) TV 생중계 대국민 연설에서 "사법 정비를 의회(크네세트) 다음 회기까지 연기하겠다"라며 "(야권과) 대화를 위해 타임아웃을 갖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고, 위기 상황에서는 모두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회기는 5월 초에 시작하기 때문에 사법개혁안 입법은 최소 한 달 이상 미뤄지게 됐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와 사법개혁안을 추진하는 극우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의 힘)의 대표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총리와 이같이 합의했다"라며 "야당과 협상을 통해 사법 정비 입법을 처리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총파업을 예고했던 이스라엘 최대 노조는 파업을 취소했고,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솔직하고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만약 입법을 완전히 폐기한다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과거에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속임수가 없는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개혁안을 폐기하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네타냐후의 '사법 쿠데타'... 대규모 반정부 시위 
  
지난해 말 극우 세력을 이끌고 재집권에 성공한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과 오츠마 예후디트 등 우파 연정은 대법원의 권한을 대폭 약화하는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대법원이 사법 심사를 통해 의회 입법을 막지 못하게 하고, 대법원의 위헌 결정도 의회(크네세트)의 단순 과반 의결만으로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과도한 대법원 권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인 대법원의 사법 심사를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사법 쿠데타'라는 비판이 나왔다.

야권과 법조계에서는 뇌물수수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처벌을 피하고, 입법권을 독식하려는 의도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력한 반대하면서 사임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날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만 11만 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50만 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고속도로와 철로를 점거하고, 도로 한복판에 불을 질렀다.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도 시위가 벌어져 이날 항공기 이륙이 전면 중단됐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 관저와 의회 앞으로 몰려가 사법개혁안 철회를 요구했다. 

의회 앞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AP통신에 "독재 정권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며 "끝까지 싸우기 위해 나왔다"라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의료, 금융, 운수, 교육 등 80만 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이스라엘 최대 노조는 기업들과 연대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했다. 

군인, 외교관도 등 돌려... '사면초가' 네타냐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개혁안 입법 연기 발표를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갈무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개혁안 입법 연기 발표를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갈무리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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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은 "민주주의와 법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 시를 촉발했다"라며 "만약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안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이스라엘은 전례 없는 헌법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우파 연정이 사법개혁안 입법을 미루기로 한 이번 결정은 시위에 대한 분명한 항복(apparent capitulation)"이라고 평가했다. 

민심이 폭발하자 정권도 분열됐다. 이스라엘 예비군 상당수는 독재 정권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며 복무를 거부했고,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도 사법개혁안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갈란드 장관을 즉각 해임했다. 

해외에 주재하는 이스라엘 외교관들까지 총파업에 가담키로 했다. 미국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 아사프 자미르는 트위터에 "나는 더 이상 이 정부를 대표할 수 없다"라며 "이스라엘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횃불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 의무"라며 사임했다. 

헤르초그 대통령도 "국민 통합의 책임을 위해 (사법개혁안) 입법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네타냐후 총리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에서 정치적 실권이 없고 의례적 역할만 하는 대통령이 행정 수반인 총리에게 반기를 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강력한 우방인 미국 백악관까지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에 의해 강력해지고, 근본적인 변화는 최대한 많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보이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궁지에 몰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말 네타냐후 총리와의 전화 회담에서 사법개혁안에 대한 깊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도 우려를 표했다. 

반면에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폭력과 파업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사법개혁안을 강행하라고 요구했다. 스모트리치 장관은 최근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태그:#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사법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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