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이별이었다. 손흥민이 활약 중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가 결국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 결별했다.
 
3월 27일(한국시간) 토트넘 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콘테 감독과 상호 합의에 의해 계약을 종료했다"라고 밝히며 "콘테의 공헌에 감사하며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인 콘테는 지난 2021년 11월 누누 산투 감독 후임으로 시즌중에 토트넘 지휘봉을 잡은 후 2021-22시즌 팀을 4위로 반등시키며 유럽 챔피언스리그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뤄냈으나, 2022~23시즌을 완주하지 못한 채 약 1년 4개월만에 토트넘과 결별했다. 토트넘은 남은 시즌은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수석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소화할 예정이다.
 
토트넘은 이로써 최근 4년간 사령탑이 5번이나 교체되는 대혼란을 반복하며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토트넘은 구단의 중흥기와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을 이끈 마우리시오 포체티노(2014-2019)와 결별한 것을 시작으로 주제 무리뉴-누누 산투-라이언 메이슨(감독대행)-콘테까지 여러 사령탑들이 거쳐갔으나 모두 우승과 장기집권에는 실패했다.
 
런던 연고의 토트넘은 2010년대 중반 이후 EPL을 대표하는 신흥 강호로 올라섰다. 손흥민을 비롯하여 가레스 베일-해리 케인-위고 요리스 등 전성기를 토트넘에서 보내며 월드클래스급 선수로 올라선 스타들도 다수 배출했다.
 
하지만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토트넘은 공식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이영표가 활약하던 2007-2008시즌 리그컵(당시 칼링컵) 우승을 차지한 것이 마지막으로 벌써 15년전이다. 1부 리그 우승은 EPL이 출범하기 훨씬 이전인 1960-1961시즌으로 무려 60년이 훌쩍 넘었고, FA컵 우승도 32년전인 1990-1991시즌으로 모두 20세기의 기록이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시대'에 접어들며 2016-2017시즌 프리미어리그 2위, 2018-2019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몇차례 우승컵에 근접한 순간은 있었지만 끝내 정상에는 한 걸음이 모자랐다. 토트넘을 대표하는 리빙 레전드이자 30대에 접어든 케인과 손흥민은 화려한 선수경력에 비하여 아직까지 클럽무대에서는 우승이 전무하다.
 
토트넘은 2019-20시즌 들어 팀이 돌연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강등권에 근접한 14위까지 추락하자 2019년 11월, 포체티노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토트넘은 후임으로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을 선임했다. 첼시-레알 마드리드-인터밀란 등 세계적인 빅클럽에서 무수한 트로피를 들어온 '우승청부사'였기에 토트넘의 우승 갈증을 해결해 줄 적임자로 꼽혔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부임 첫 시즌 6위에 그쳤고 2년 차에도 7위에 머물며 UCL 진출에 실패해 결국 2020-21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경질됐다.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을 2020-21시즌 컵대회 결승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결승전을 앞두고 경질당하며 빅리그 감독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무관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토트넘은 메이슨 감독 대행 체제를 거쳐 2021-22시즌을 앞두고 누누 산투 감독을 선임했다. 사실 산투는 토트넘이 우선순위로 노렸던 감독들이 모조리 영입이 불발되면서 급하게 선임된 대타에 가까웠다. 우려한대로 산투는 선수단 장악실패와 지루한 수비축구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며 불과 4개월만에 초고속 경질당했다.
 
산투의 후임으로 영입된 것이 바로 콘테였다. 이전에도 토트넘이 유력하게 영입을 원했던 카드이자 EPL 경력(첼시)-우승 경험 등을 두루 갖춘 콘테는 토트넘을 살릴수 있는 적임자로 꼽혔다. 실제로 부임 첫해 시즌중에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팀을 4위까지 반등시킨 것은 포체티노 시대 이후로는 최고의 업적이었다. 손흥민은 콘테 체제에서 에이스로 거듭하며 아시아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콘테 2년차인 이번 시즌에는 손흥민-해리 케인-데얀 쿨루셉스키 등 주축 선수들이 모두 건재한 데다 히샬리송, 이브 비수마, 아르나우트 단주마, 크리스티안 로메로 등을 줄줄이 영입하며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우승의 적기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토트넘의 올시즌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공격진은 케인만 꾸준히 제 몫을 했을뿐, 손흥민을 비롯하여 쿨루셉스키-히샬리송-루카스 모우라 등이 일제히 부상과 부진에 허덕였다. 콘테 축구의 장점으로 꼽히던 수비 조직력도 크게 흔들렸다. 설상가상 콘테 감독도 건강문제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리그에서 그럭저럭 4위권 경쟁을 이어갔지만 실력으로 압도했다기 보다는, 내용에서 밀리고도 결과만 챙긴 행운의 승점이 많았다. 번번이 밀리는 중원싸움, 1-2군의 격차로 인한 로테이션의 부재, 손흥민과 이반 페리시치의 부조화 등 여러 가지 전술적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변화를 주지않는 콘테 감독의 무리한 '고집'도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다.
 
또한 콘테 감독은 지난해부터 토트넘과 재계약 문제-구단의 방향성과 투자를 놓고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으며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 때문에 콘테 감독이 토트넘과의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결별할 수 있다는 전망이 파다했으며 이는 리더십의 약화를 초래, 레임덕을 부추기는 결과로 나타났다.
 
콘테 감독은 이미 경질 직전 모든 컵 대회에서 탈락하며 '무관'이 확정됐고 리그에선 4위마저도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 여기에 사우샘프턴전(3-3) 무승부 이후 구단과 선수들을 강도높게 비난하며 또 한번 논란이 됐다. 결국 토트넘 수뇌부는 위약금을 지불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콘테 감독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콘테 감독의 실패는 전임자 무리뉴 감독과도 매우 흡사하다. 시즌 중반에 부임하며 일시적으로 팀을 반등시키는 듯 했으나 2년차에 접어들며 급속도로 몰락하며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경질되는 패턴이다. 

전 소속팀에서는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세계적인 명장으로 꼽혔음에도 정작 토트넘에서는 '빈손'으로 마감하며 감독 커리어에 먹칠을 했다는 점,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탓-구단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안팎으로 고립되어갔다는 것도 묘하게 닮은 꼴이다.
 
다만 토트넘의 연이은 실패가 과연 '감독의 잘못' 때문만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토트넘은 구단의 전력이 가장 우승권에 근접했던 포체티노 감독 시절에는 '짠돌이 구단'이라 불리우며 선수 영입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에 인색했다.
 
포체티노 감독이 경질된 이후에는 '이름값'에만 집착하며, 전임자가 구축해 놓은 공격적인 축구철학과 선수단 구성과는 맞지 않는 감독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무리뉴-산투-누누는 모두 포체티노와는 색깔이 전혀 달랐고, 공격보다는 수비와 실리적인 경기운영에 특화된 감독들이었다.
 
또한 토트넘은 감독이 바뀔 때마다 선수들이 전술상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최근 몇 년간은 대대적인 선수영입에 제법 투자를 했지만 들인 비용에 비하여 성공작으로 자리매김한 선수는 호이비에르-쿨루셉스키 등 일부에 불과했다. 

거듭된 감독들의 단명과 선수 영입의 실패는 결국 토트넘 구단이 책임져야 할 대목이다. 이제 남은 시즌 UCL 진출이 걸린 4위 싸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토트넘과 손흥민의 미래는 또다시 불안한 미궁속으로 빠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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