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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를 하는 이찬재 충주향교 전교
 축사를 하는 이찬재 충주향교 전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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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충주향교 이찬재 전교로부터 충주와 음성에서 활동하다 돌아가신 대단한 문장가를 찾아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능양 박종선(朴宗善: 1759~1819) 선생으로, 그의 문집인 <능양시집>이 최근에 발견되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본을 냈다는 것이다.

<능양시집>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학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연암 박지원이 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능양을 동방의 대가 시인으로 극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은 현재 연암의 문집 <연암집>(燕巖集) 제7권 별집(別集)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5일(토) 주덕읍 당우리(산 30번지)로 이장한 무덤에 시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하니 그때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종손이 주덕읍에 사는 박찬영씨라고 하는데, 아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한 마을에 살았던 분으로 초등학교 10년쯤 선배 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박찬영씨를 사전에 한 번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3월 7일 주덕에 있는 집을 방문해 그간의 사정을 상세하게 듣고, <능양 박종선의 시문학 세계>라는 학술대회 책자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능양시집 필사본
 능양시집 필사본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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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능양시집>이 나타난 것은 2013년 KBS 1-TV <TV쇼 진품명품>을 통해서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서 2015년 이 필사본을 구입했고, 2017년 2월 영인본을 출간하면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대동문화연구원이 주최한 학술대회 제목은 <이덕무·박제가의 벗 박종선(朴宗善)의 시집, 연암 박지원의 서문과 함께 불후의 명작으로 남다>였다. 그리고 10월에 성균관대학교출판부에서 상하 두 권으로 된 <능양시집> 영인본을 간행했다.

이러한 사실이 반남박씨 대종회에서 알려지게 되었고, 그 내용이 <반남박씨 종보>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충주에 사는 박찬영씨가 종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8년 박찬영씨와 학자들간 접촉이 이루어졌고, 능양시비(菱洋詩碑)를 건립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시비 전면에는 능양의 시 한 편을 새겨넣고, 후면에는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해 성균관대학교 안대회 교수가 글을 쓰기로 했다.
 
능양 박종선 명정
 능양 박종선 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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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에 있던 능양의 묘소가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산 30번지)로 이장되었다. 그것은 능양의 6대 종손 박찬영씨가 자신이 사는 주덕읍으로 이장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장하는 과정에서 명정이 나왔는데, 통훈대부 음성현감 겸 충주진관병마절제도위 박공지구(通訓大夫 陰城縣監 兼 忠州鎭管兵馬節制都尉 朴公之柩)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능양의 부인인 경주김씨 지석(誌石)이 나와 능양 선생과 그 부인 경주 김씨의 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崇禎紀元 後四丁丑 十二月二 十八日酉
時安葬于 陰城元忠 里壬坐丙 向之原
慶州金氏人墓

 
능양 부인 경주김씨 지석
 능양 부인 경주김씨 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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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기원후 4정축', 그러니까 1817년 12월 28일 '유시에 음성읍 원충리 언덕에 안장했다'는 것이다. '묘의 위치는 임좌병향이며, 묘주는 경주김씨'라고 적혀 있다. 족보에 보면 능양의 부인 경주 김씨는 1817년 11월 17일 돌아가신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지 한 달 열흘쯤 후 안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능양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819년 6월 14일 돌아가신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부인 경주 김씨 지석의 글씨를 능양선생이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주 김씨 지석은 이장하는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뀐 상태로 찍은 사진만 남아 있다.

능양 선생을 추모하는 비석이 만들어진 것은 2022년 11월이었다. 그래선지 '초겨울(初冬)'이라는 시가 전면에 새겨졌다. 후면에는 국한문 혼용으로 능양의 가계와 관직, 시문(詩文)의 특징, <능양시집>의 구성과 내용, 음성 충주와의 인연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능양시비: 초겨울
 능양시비: 초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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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初冬

골목에는 땅거미 덮여 저자소리 드물어지고        巷烟擾亂市聲稀
날 저물어 나무꾼과 물장수는 하나둘씩 돌아가네. 向晩漸看樵水歸
책상 끝에 붙은 거미는 털어내자 달아나고          蟢着床頭拂始走
울타리 틈 닭 잡으니 푸덕푸덕 날아오르네.         鷄從籬角搶而飛
담벼락에 낙서하는 아이들만 꾸짖다가               每嗔童穉去畫壁
사립문 두드리며 벗이 오면 반가워라.                時喜友人來款扉
삐걱삐걱 씨아에서 눈송이처럼 나오는 솜           嗚咽攪車綿似雪
몸에 맞는 겨울옷은 누가 먼저 입게 될까.           阿誰先試稱身衣


그렇지만 시비 제막식은 2023년 3월 25일에야 이루어졌다. 그것은 무덤에서 하는 행사가 초겨울보다는 초봄이 낫기 때문이다. 3월 25일 주덕읍 당우리 산 30번지 능양 묘소에는 120명도 넘는 축하객들이 모였다. 반남박씨 대종회에서 50명 정도, 충주 유림과 유지들이 50명 정도, 학자와 연구자들이 20여 명 참석했기 때문이다.

행사는 11시가 조금 넘어 시작되었다. 국회의원과 충주향교 전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장의 축사와 반남박씨 대종중 도유사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어서 '초겨울' 시를 번역한 이종묵 교수의 시 낭송이 있고, 비문을 찬한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 안대회 교수의 비문 낭독이 있었다.
 
충주 달천(수)
 충주 달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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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를 위해 특별히 작은 책자가 하나 만들어졌다. 50쪽 짜리 <능양시비(菱洋詩碑) 제막식과 능양시선(菱洋詩選)>으로, 축사, 환영사, 능양 시비, 능양 시선, 능양 시집 발굴 및 시비 건립 경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능양 시선'이 책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능양의 시 세계를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모두 40편의 능양 시 번역문이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이 부분을 번역한 이종묵 서울대 교수는 그 중 첫 번째 시 '충주에 사는 즐거움 忠州樂'을 낭송하며 해설했다. 오언절구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충주에 사는 즐거움 무엇인가?   爲問忠州樂
강마을 아름다워 살기 좋다네.    江鄕美可居
아침에 달천물 마시고              朝飮㺚川水
저녁에 가흥의 생선을 먹는다네. 暮食嘉興魚

충주에 사는 즐거움 무엇인가?   爲問忠州樂
산골마을 풍미가 좋다네.          峽村風味好
봄엔 산에서 고사리 캐고          春搴山上薇
가을엔 동산에서 대추를 턴다네. 秋剝園中棗

 
능양 박종선 묘소 시비 제막식
 능양 박종선 묘소 시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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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양 시선'과 <능양시집>에 실린 시를 보면, 능양 박종선이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다루지 않은 주제와 소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능양은 청나라 수도인 연경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흥양감목관(興陽監牧官)으로 전라도 지방을 시찰했다.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한 달 가까이 금강산을 유람하기도 했다.

주제와 소재에 따라서는 도연명과 두보의 시풍이 보이는 시, 여성을 소재로 한 사랑 노래, 정조임금이 지적한 기벽(奇僻)하고 험벽(險僻)한 시가 있다. 여기서 기벽 험벽은 전고(前古)가 없는 가볍고 속되고 난삽한 시를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활용한 박학다식한 시도 있다.

이처럼 대단한 시인의 문집을 발견한 것은 한문학계의 큰 수확이다. <능양시집> 발굴에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TV쇼 진품명품> 김영복 감정위원이다. 그리고 <능양시집> 연구에 앞장서고 있는 곳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이다.

앞으로 연구를 통해 능양 박종선이, 검서관으로 함께 활동했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같은 실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삼당숙인 박지원이 쓴 <능양시집서>에서 능양을 찬양한 문장의 일부를 옮긴다.

"나의 조카 종선(宗善)은 자(字)가 계지(繼之)인데 시(詩)를 잘하였다.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해서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체를 띠고 있고 또 어느새 송명(宋明)의 시체를 띠고 있다. 송명의 시라고 말하려고 하자마자 다시 성당의 시체로 돌아간다.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너무도 심하건만, 계지의 정원에 있는 까마귀는 홀연히 푸르렀다 홀연히 붉었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미인으로 하여금 재계하는 모습이나 소상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손바닥춤이나 사뿐대는 걸음걸이는 날이 갈수록 경쾌하고 요염해지며 쪽을 감싸 쥐거나 이를 앓는 모습에도 각기 맵시를 갖추고 있으니, 그네들이 날이 갈수록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능양 박종선 시비 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 왼쪽에서 두번 째가 능양의 6대종손 박찬영씨다.
 능양 박종선 시비 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 왼쪽에서 두번 째가 능양의 6대종손 박찬영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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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능양, #박종선, #능양시집, #음성현감,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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