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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봄을 만났다. 먼저 만난 봄은 근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먼발치의 봄이었고, 오늘의 봄은 소박하지만 내 손 안에 들어온 가까운 봄이었다. 

제대로 봄맞이를 간다는 기대에 가슴이 설렜다. 큰 맘 먹고 벚꽃놀이와 더불어 평소 가고 싶었던 남해 독일인 마을을 찾아 나서는 길. 버스는 예정보다 40분이 지나서야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이때부터 오늘의 일정이 험난하리라는 걸 예측했어야 했다.   

이후 여행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착오, 합류하기로 한 친구를 그냥 통과하면서 대형사고의 단초를 만들었다. 친구는 화가 난 마음을 터뜨릴 경황도 없이 전철을 이용하여 수원에서 합류했다.

그 와중에 불참한 신청자가 많아 2대의 차가 1대로 축소되는 상황에 남해 독일인 마을 행선지가 쌍계사로 바뀌었다. 부득이하다는 주최측의 읍소에 그래, 쌍계사 벚꽃도 유명하니까 하고 수용했지만 항의와 반대와 동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예상보다 3시간 가까이 늦어진 상황, 쌍계사를 제대로 갈 수 있으려나?  

사건은 한 가지 이유로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둘 또는 그 이상이 겹칠 때 터지는데 설상가상으로 하필 비전문 관광버스 기사가 투입 되었다. 갈 길은 멀고만 이력이 나지 않아 길도 잘 모르는데 본인의 영역은 사수 하려는지 인솔자의 말을 듣지 않고 고속도로로 갈 길을 구도로로 진입해 갈팡질팡.
 
차창밖으로 보이는 벚꽃 천리길의 만개한 벚꽃
 차창밖으로 보이는 벚꽃 천리길의 만개한 벚꽃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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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어 겨우 도착하나 했더니 쌍계사 전방 13Km 지점부터는 아예 서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쌍계사를 포기하고 화개장터로 가자느니, 올라갈 생각해서 여기서 그냥 돌아가자느니 의견이 분분, 분위기는 험악.

벚꽃철은 언제나 이래서 아예 못 들어가 되돌리는 경우도 많다고 천재지변까지 들먹이며 길이 막히는 건 방법이 없다는 인솔자의 중재에 겨우 화개장터에 내린 것이 오후 5시경. 상상도 못했던 시간이다. 여의도 윤중로만 가도 벚꽃이 넘쳐나는데...  

그래도 한강, 금강, 섬진강을 보고 덕유산 거쳐 지리산 자락에 양 옆으로 늘어선 벚꽃 천리길에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은 멀리서 보아도 장관이다. 종일 버스만 타다 한 시간 남짓 화개장터를 밟아보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반면 오늘의 봄은 바로 손 안에 있다. 집 근처 작은 산에 오르니 어느새 모든 봄꽃이 만발해서 꽃잔치를 벌인다. 봄의 전령사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앙증맞은 제비꽃에 벚꽃까지 봄꽃들이 총집합 했다. 
 
앞산에 흐드러진 봄꽃
 앞산에 흐드러진 봄꽃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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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초록 새순은 어찌보면 꽃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벌과 나비가 날고, 참새와 까치가 지저귀며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여기가 봄동산이다. 코 앞에서 직접 보고, 부드럽게 만져 보고 봄을 느끼니 봄이 내 손 안에 있다. 뭐하러 어제 그 먼거리를 달려갔나?

어릴 적 들은, 누가 행복이 어디 있냐고 묻기에 저 산 너머에 있다해서 찾아갔더니 행복은 다시 또 다시 저 산 너머로 가 있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실은 행복이란 언제나 바로 내 앞에 있는데 늘 막연히 멀리서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나는 봄놀이로 넘치는 기쁨을 만끽하며 서 있자니 마치 이 작은 산이 나에게 봄을 멀리서 찾지 말라고, 바로 내 앞에 더 선명한 봄이 있는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갔느냐고 속삭이는 것 같다.   

어쩌면 행복도 그렇지 싶다. 내 앞에 소중한 일상이 바로 행복인데 자꾸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건 아닌지. 어쩌면 봄도, 행복도 바로 눈 앞에, 아니 눈을 감으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니었을까? 진정한 봄 속의 긴 의자에 앉아 생각해본다.

태그:#독일인 마을, #쌍계사, #화개장터, #섬진강, #벚꽃 천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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