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서리 / 구부정하게 커버린 / 골칫거리 outsider
걸음걸이, 옷차림 / 이어폰 너머 playlist / 음악까지 다 minor
 
넌 모르지 / 떨군 고개 위 / 환한 빛 조명이 어딜 비추는지
느려도 좋으니 / 결국 알게 되길 / The one and only / You are my celebrity
 
잊지마 넌 /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 아름다운지 말야 / You are my celebrity"
 
아이유가 부른 노래 < Celebrity >다. 이 노래를 들으니 아이가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난다. 하루는 아이가 어둑해질 무렵에서야 집에 왔다. 한 아이가 따돌림을 당해서 같이 놀아주고 오느라 늦었단다. 왜 따돌림을 당하느냐고 물었더니 말이 어눌하고 옷에서 냄새가 나서란다.
 
주도적으로 따돌리는 아이가 우리 집에도 놀러 오던 아는 아이였다. 따돌리는 아이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햄버거집에 초대했다.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잘 어울렸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한참 지나서 아이에게 잘 어울려 노는지 물었더니 그렇단다.
 
20세기 전반에 세계는 따돌림 문제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큰 전쟁을 치르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따돌림을 당해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다. 철학자들도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하고 머리를 맞대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 해답을 '계몽의 변증법'에서 찾았다. 그들은 '계몽의 변증법'을 <오디세이아>의 '사이렌 신화'를 빌어 쉽게 설명한다.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정 사이렌을 만난다. 다행히 요정 키르케가 사이렌의 위험과 피할 방법을 미리 알려준다. 사이렌의 매혹적인 노래를 들으면 그리로 가게 되고 그 둘레에 있는 소용돌이에 빠져 죽게 된다. 하지만 선원들에게 자신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오디세우스의 몸을 돛대에 묶게 하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 그는 일러준 대로 하여 선원들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선원들은 노래의 위험만을 알 뿐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그를 돛대에 묶인 채로 둔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의 운명으로 묶인, [명령]하는 이와 자신들의 생명을 구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명령]하는 이도 결국 [선원들에게 노래의 아름다움은 무시하고 노래의 위험만 피하라고 명령하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그들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사이렌의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너의 아름다운 유일함'을 찬양하는 노래일 거다. 그게 왜 위험할까?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단일대오'를 깨뜨릴 수 있으니까. 단일대오는 혼자서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맞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나약한 인간은 혼자서 맞설 수 없는 자연이나 신의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홍수나 가뭄이란 자연의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해 더 이상 신에게 기도하지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인간 이성의 힘으로 거대한 댐이란 '바벨탑'을 만들었다. 미신으로부터 깨어난 이성의 승리, 곧 계몽의 승리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대신에 우리는 개인의 다양한 욕망이나 개성을 억누르는 희생을 그 대가로 치러야 했다. 자연이나 신에 맞서 '나'를 해방하기 위한 계몽이 도리어 '나'를 억압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이제 우리는 자연이나 신에 다시 굴복하지 않고 '나'의 욕망과 개성을 다시 해방해야 한다, 이러한 섬(정)-맞섬(반)-넘어섬(합)의 과정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이라 부른다.
 
따돌림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해 개인에게 스스로 자신의 다양한 욕망과 개성을 억누르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사회적 도구다. 하지만 따돌림은 바로 그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이뿐만 아니라 따돌리는 이의 욕망과 개성도 억압하는 사회적 폭력이 된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사이렌 노래의 위험을 피하려면 따돌리는 이도 스스로 밀랍으로 귀를 막거나 스스로 돛대에 몸을 묶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따돌림은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패자인 제로-제로 게임이다.
 
폭력을 다스리는 일을 관장하려는 이가 아들의 학교 폭력을 감싸려 한 일이 들통나 낙마한 일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친구에게 '돼지'니 '빨갱이'니 하는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따돌렸다. 생김새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음을 강요했다. 학교는 전학 결정을 내렸지만, 법을 잘 아는 아이의 부모는 행정집행취소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끌고 가며 시간을 끌었다. 그사이 따돌림을 당한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까지 했다. 결국, 그 지연 작전 덕에 따돌림을 가한 이는 명문대에 '무사히' 입학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거대한 힘에 맞선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일제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 해방을 쟁취했고, 군사독재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했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에 맞서 싸우느라 개인의 욕망과 개성을 억누르는,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같음을 강요하는 태도가 우리도 모르게 몸에 배었다. 그러한 태도가 아이들 따돌림으로, 학교 폭력으로 대물림되었다. 이제 우리는 거대한 폭력에 다시 굴복하지 않으면서 '나'의 욕망과 개성을 다시 해방하는 계몽의 변증법을 노래하자. 밀랍으로 귀를 막지 말고 돛대에 몸을 묶지 말고. 넌 그리고 난 outsider, minor가 아니라 the one and only, celebrity라고.
 
"잊지마 넌 /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 아름다운지 말야 / You are my celebrity"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학지성 IN & OUT>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41
아이유 CELEBRITY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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