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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사지는 문막과 섬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해 있다.
▲ 흥법사지 삼층석탑 흥법사지는 문막과 섬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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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서남부로 흐르는 섬강에서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일대는 흥원창이라 불리며 이곳을 오가는 수많은 배들로 번성했었다. 하류에 위치한 충주 가흥창과 함께 남한강 일대의 두 개 조창 중 하나였고, 이곳은 특히 원주, 횡성, 평창 등 강원도 내륙의 조세가 모였던 곳이다.

이 일대는 중앙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더 이상 배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동네가 되었지만 강을 따라 번성했던 사찰의 흔적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왜 이런 곳에 절터가 강변을 따라 들어서게 되었던 것일까? 예전 강변은 요즘으로 치면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목이 좋은 곳에 대중들을 교화하기 위한 대형사찰이 들어온 셈이다.

수많은 폐사지 중 우리가 먼저 찾을 곳은 문막에 위치한 흥법사터다. 정확한 위치는 원주시 문막읍이 아니라 지정면이다. 간현관광지에서 섬강만 건너면 접근할 수 있고, 배후에 너른 문막평야를 끼고 있다. 횡성을 지나 원주의 서편을 돌아 들어가며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섬강은 강원도내를 흐르는 수많은 강 중 가장 서정적이다.

본래 이 강의 이름은 달강이었는데 두꺼비가 달에 사는 영물 중 하나라 두꺼비 섬(蟾)을 써서 섬강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섬강의 병풍바위 위에 마치 두꺼비가 올라와 있는 듯해 섬강이라는 명칭이 전해지기도 하는 아름다운 강이다. 물론 이 일대는 소금산 출렁다리, 울렁 다리 관광사업으로 인해 난개발의 아픔을 겪고 있다.     
 
흥법사를 대형사찰로 만든 진공대사의 탑비다. 현재 그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 흥법사터 진공대사 탑비 흥법사를 대형사찰로 만든 진공대사의 탑비다. 현재 그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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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강 일대에는 소금산, 뮤지엄 SAN 등 수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법당도, 스님도 없는 한적한 폐사지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흥법사 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농로를 따라 1km를 들어가야 한다. 마주 오는 차가 비켜가기도 힘든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외로운 석탑 한 기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흥법사 터다. 

섬강과 저 멀리 문막들판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곳은 1만 평에 이르는 대찰이었다 전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물은 흥법사지 삼층석탑을 들 수 있다. 신라의 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전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탑의 비례가 전체적으로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구석에 자리한 진공대사탑비는 비신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자태가 당당하고 비석에 새겨진 조각이 정말 훌륭하다. 그것은 이 비석의 주인공인 진공대사가 당대의 이름난 고승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흥법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작은 사찰이었지만 진공대사에 의해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진공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선종과 교종을 두루 섭렵하고 918년, 30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그는 고려 태조에 의해 극진한 예우를 다하였고, 흥법사를 중건하게 했다. 대사가 72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친히 진공이란 시호를 내리고 비석과 승탑을 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조성케 한 것이다. 그런데 비석이 있지만 그의 유골과 사리가 보관되는 승탑은 여기에 없다. 그 승탑은 1931년 총독부에 의해 서울로 옮겨지면서 현재는 중앙박물관 야외에 다른 석조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원주의 폐사지는 유난히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중 법천사지의 지광국사 현묘탑이 한동한 뜨거운 이슈로 알려졌다. 그곳을 가려면 섬강을 따라가며 남한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가는 길에 펼쳐지는 문막의 너른 벌판은 이곳이 강원도라 생각하기 힘들 만큼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 문막이란 지명은 섬강의 물을 막았다는 '물막이'라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다 보면 왕건, 견훤 등 낯익은 이름들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다. 왕건은 건등산에서, 견훤은 맞은편 견훤산성에서 진검 승부를 겨뤘다고 하는데 원주가 남, 북을 가르는 중요한 요충지였던 만큼 수차례 그 주인이 바뀌었을 것이다.     

흥원창을 지나 부론을 거쳐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제법 거대했던 대찰의 터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곳이 남한강 유역의 최대 사찰인 법천사 터다. 부론면은 강원, 충청, 경기가 접하고 있고, 흥원창을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했기에 이런 대규모의 사찰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법천사는 고려 최고의 황금기였던 문종의 왕사, 국사로 추대되었던 지광국사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임금과 함께 어가를 타고 다니며 부처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우선 법천사지를 가지 전에 최근에 개관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법천사와 관련된 정보와 출토된 유물을 살필 수 있다.     
 
법천사지 주위에는 새롭게 개관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이 자리해 있다.
▲ 새롭게 개관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법천사지 주위에는 새롭게 개관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이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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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으로 들어서면 꽤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데 2024년에 제자리로 돌아 올 지광국사 현모탑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이 탑이 실내보다는 제자리를 찾아 절터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의 박물관, 전시관의 전시기법이 꽤 훌륭해졌다. '법천사 천년의 기억'이란 주제로 미디어 아트를 통해 법천사의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고려시대에 손꼽히는 대규모 사찰이었던 법천사는 임진왜란을 통해 폐사되었지만 수차례 진행된 대규모 발굴을 통해 예전의 화려했던 면모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유물들은 대부분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데 은으로 상감하여 만들어진 <철제 은상감재갈>과 <추정 청동향로>, <공양보살상> 등 수많은 유물들을 통해 법천사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원주 최대의 거찰이었던 법천사지는 고려 최고의 전성기였던 문종의 왕사였던 지광국사가 주석하던 사찰이다.
▲ 법천사지의 전경 원주 최대의 거찰이었던 법천사지는 고려 최고의 전성기였던 문종의 왕사였던 지광국사가 주석하던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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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법천사터를 둘러보기로 하자. 건물들은 오간 데 없고 터만 남아있지만 초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과연 원주 제일의 거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절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끝에는 국보로 지정된 천하의 명작인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탑자리가 그대로 있는데 탑비의 조각은 물론 금석문에서도 그 화려함이 엿보인다. 특히 비석의 측면에는 운룡을 깊게 새겨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우리나라 조각에서 유래 없는 디테일과 정성이다.
 
법천사의 지광국사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한국비석의 명작이다.
▲ 한국 비석의 명작 법천사 지광국사 탑비 법천사의 지광국사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한국비석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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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100년이 넘게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지광국사 현모탑의 자리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승탑 중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지광국사탑은 근현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1912년 오사카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경복궁으로 돌아왔고,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1만2000조각으로 대파되었다.

시멘트로 불안전하게 복원한 이 탑은 보존처리를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사했고, 드디어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 그 출발은 우리 주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다.

덧붙이는 글 | 경기별곡 시리즈 마지막 3권인 <여기새롭게경기도>가 출판되었습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태그:#강원, #원주, #흥법사지, #법천사지,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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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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